법원조직법 개정안 부결, 이제 '좋은 판사' 고민할 때

전현진 기자

법원조직법 개정은 최근 대법원이 공들여온 숙원사업이었다. 지난 5~6월 비슷한 개정안 4건이 발의됐고, 약 3개월만에 이 법들을 통합한 대안이 8월31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그리고 4표차로 부결됐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2017년까지는 3년 이상, 2021년까지는 5년 이상, 2026년까지는 7년 이상, 그 이후부터는 10년 이상 법조 경력이 있어야 판사에 임용할 수 있게 돼 있다. 법원의 순혈주의·관료주의를 깨고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은 이들을 판사로 뽑기 위한 법조일원화 일환으로, 시행에 따른 혼란을 줄이기 위해 경력기준을 단계적으로 높였다.

대법원은 가뜩이나 법관 지원자가 적고 법관이 부족한 터에 내년부터 최소 경력기준이 7년으로 높아지면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법 개정을 추진했다. 개정안은 판사 임용을 위한 최소 경력기준을 5년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달 24일 경향신문은 ‘판사 부족’ 우려의 이면을 짚었다. 올해 신임 법관 임용 예정자 157명 중 20명이 김·장법률사무소(김앤장) 출신이고, 법원 소속인 재판연구원 경력자도 67명(42.6%)에 달했다. 법조일원화의 취지가 무색하다. 최소 경력기준을 올해처럼 5년에 묶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면 이런 식의 법관 임용이 계속됐을 것이다.

재판연구원, 대형로펌 출신이라고 좋은 법관이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의 능력과 노력을 폄하해선 안 된다. 경력 많은 법조인이 훌륭한 법관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현행법이 최소 10년의 법조 경력을 정한 근본 이유는 잊지 말아야 한다. 법의 판단이 필요한 이들은 대체로 법관과는 다른 삶을 산다. 그런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본 이들이 좀 더 좋은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바탕에 깔려 있다.

개정안은 여당의 지원 속에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 처리한 것이다. 그런데도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이변이 연출된 것은 법원개혁의 본질인 ‘좋은 재판’과 ‘좋은 판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결여되었다고 다수 의원이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법원의 주장은 ‘판사가 부족해서’ ‘젊고 손 빠른 판사가 필요해서’ 경력기준을 줄여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 식이라면 차라리 법조일원화는 불가능하니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게 솔직한 태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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