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아란 하늘엔 지옥이 떠 있었네

조해람 기자

“신념을 다하리라 자유를 위해, 싸우며 지키리라 평화를 위해.”

충남 서산 제20전투비행단의 부대가(노래)다. 가사와 달리 제20전투비행단엔 자유도, 평화도 없었다.

성추행 피해를 당하고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이모 중사가 이곳에서 피해를 입었다. 이 비행단은 2018년 최모 일병, 2019년 김모 하사 등 다른 청년들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갔다. 공군에서 군생활을 했던 한 취재원은 “다른 부대의 사고 소식도 얘기가 다 도는데, 제20전투비행단이 유달리 사고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우리의 하늘에 우리가 모르는 지옥이 떠 있었다.

경향신문은 2019년 이 비행단에서 부조리를 견디다가 세상을 떠난 김 하사의 사건 수사기록 1600장 전문을 입수해 분석했다. 수사기록엔 김 하사가 당한 부조리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과도한 질책, 절차를 어긴 휴가 통제, 외모 비하…. 최 일병과 이 중사 관련 자료도 들여다봤다. 공군의 병영 문화는 나름 선진적인 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부조리의 온상이었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건 헌병과 군 검찰의 수사 결론이었다. 디지털포렌식, 학교생활기록부, 30여명에 이르는 참고인 진술 등 모든 정황이 군 복무 중 겪은 스트레스가 김 하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원인이라고 가리켰다. 군 수사기관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군은 “사망이 범죄로 인해 발생하지 않았음이 판명됐다”며 단순 변사사건으로 종결했다. 형사처벌은 물론 경징계조차 없었다. 최 일병 사건에서도 군은 “잦은 질책 및 언어폭력으로 힘들어 한 상태에서 스트레스, 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소위 한 명에게 200만원의 벌금형만 선고했다.

그러는 동안 유족들의 아픈 시간만 켜켜이 쌓였다. 이 중사의 유족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다.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안치실에 잠든 이 중사의 옆자리에는 최 일병이 3년째 누워 있다. 김 하사의 아버지는 지난달 이 중사 유족이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이 중사의 유족과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충청도에서 무턱대고 올라왔다.

“사람들은 ‘내 자식이 군대 가서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잘 못해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니 군대 사고와 군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세요.” 최 일병의 어머니가 독자들에게 꼭 전해달라며 한 말이다. 군대의 면죄부식 수사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제2, 제3의 김 하사, 이 중사가 나올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처한 이 위험을, 정상적인 국가라면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기자메모]파아란 하늘엔 지옥이 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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