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새끼’ 아끼는 첫걸음은 ‘좋은 엄마, 아빠’ 강박 내려놓기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육아에 대한 시선을 바꾸게 만드는 예능 ‘금쪽같은 내 새끼’

<금쪽같은 내 새끼>는 어린이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어린이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며 20~30대 비혼 및 무자녀 시청자까지 사로잡았다. 해당 프로그램 화면 캡처

<금쪽같은 내 새끼>는 어린이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어린이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며 20~30대 비혼 및 무자녀 시청자까지 사로잡았다. 해당 프로그램 화면 캡처

나에게는 올해 스무 살, 열아홉 살인 동생들이 있다. 각각 2002년생과 2003년생이다. 내가 중학생일 때 태어난 그 애들로부터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동생들이 행복하길 바랐기에 엄마가 사들이는 육아 서적을 함께 읽었다. 그러면서 희미하게 느꼈다. 육아에도 트렌드가 있구나. 내가 자랄 때와 다르구나. 실제로 시대가 바뀌고 정보량과 관점이 달라지면서, 동생을 키우는 부모님의 모습이 낯설었다. 팬티 한 장 입고 쫓겨나는 일이 월간 이벤트였던 1980년대 후반생은 덜컥 질투에 휩싸이곤 했다. “우리한테는 안 그랬으면서….”

채널A 예능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의 앞에는 ‘요즘 육아’라는 말이 붙는다. 말 그대로, ‘요즘 육아’다. 어린이의 인권이라는 개념이 부재했던 시절에는 양육을 ‘배운다’라는 인식도 없었다. 태초에 ‘태어났으니 산다’라는 삶의 태도보다 먼저, ‘생겼으니 낳는다’와 ‘낳았으니 (알아서) 살겠지’가 있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대대적으로 육아 서적이 출간되고, 전문가들이 미디어에 등장하며 육아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부터 아이의 감정과 욕구를 존중하고, 양육자와의 친밀성을 강조하는 육아가 ‘대세’가 된다. 그런데도 ‘요즘 육아’, 2021년의 <금쪽같은 내 새끼>는 매회 가르쳐준다. 어른은 어린이에 대해서, 어린이에게서, 한참 더 배워야 한다고.

<금쪽같은 내 새끼>는 기존의 어린이 행동 교정 프로그램과 몇 가지 지점에서 차별화된다. 어린이 출연자의 이름 대신 금쪽이라는 표현을 써서 어린이의 정보 노출을 최대한 지양하고, 어떤 문제 상황에서도 소중한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각 어린이의 장점도 꼬박꼬박 등장한다. 그래도 시청자는 문제아를 키우는 부모의 고충에 이입하기 쉽다. ‘나’가 이미 어른이고, 약자의 목소리나 입장은 익숙하지 않기에. 오은영 박사는 언제나 어린이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 어린이의 문제 행동은 자신의 불편함을 충분히 표현할 만큼 자라지 못했고 언어가 발달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지 양육자를 괴롭히려는 목적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또한 ‘감각의 예민함’이나 ‘태생적으로 높은 불안’, ‘감정적 진폭이 큰 아이’처럼 타고난 기질을 강조한다. 이러한 프레임에서는 부모도 아이도 일방적인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니다. 원인은 언제나 소통의 오류, 기질의 차이, 표현력의 문제 같은 층위에서 다뤄진다. 그러니 이해와 맞춤형 대처를 통해 바꿀 수 있다. 좋은 엄마, 아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각 어린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합’을 맞추도록 끌어간다. 소아 우울증이나 소아 강박, ADHD가 있는 어린이도 등장한다. 어린이는 어른만큼이나 복잡하고 개별적이며 나름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심층적 존재이다. 막연하게 동심을 대상화하고, 어린이를 귀여운 존재로만 가둬두려고 하며, ‘좋을 때다’라고 혀를 차던 어른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AI와의 대화를 통해 어린이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코너는 매회 눈물로 넘는 박달재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볼 때마다 어른들이 잘못했다며 우는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네가 낳았어…?”

그럴 수밖에.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다 보면 불시에 어린 시절의 나와 맞닥뜨린다. “어, 내가 저랬는데.” “아 우리 부모님이랑 똑같네!” 그러면서 깨닫는다. 어린이 출연자는 문제아가 아니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어린이다. “너는 왜 쟤 같지 않냐”라는 야단 속에서 존재하던 ‘쟤’, 즉 ‘손 안 가고’, ‘건강하며’ ‘무던한’ 어린이야말로 어른의 욕심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보통 손이 안 가고, 어른을 더 배려하는 어린이는 ‘철들었다’라고 칭찬받는다. 그러나 오은영 박사는 이런 어린이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어려움을 찾아낸다. 어린이가 부모나 형제들에게 부모처럼 행동하도록 강요된 ‘역할 역전’, ‘부모화’ 같은 개념을 알고 나면 더는 ‘철든’ 어린이가 대견하지 않다.

오은영 박사는 “양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이라 말한다. 해당 프로그램 화면 캡처

오은영 박사는 “양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이라 말한다. 해당 프로그램 화면 캡처

<금쪽같은 내 새끼>는 양육자에게 집중하기도 한다. 양육자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묻고, 현재 상황을 관찰한 후 육아 번아웃 같은 진단을 내린다. 친구들과의 교류, 자기만의 시간 확보 등을 처방하거나, 성인 양육자에게 오은영 박사가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통화하기도 한다. 왕따 경험을 털어놓거나, 사이가 소원했던 가족과 화해하는 양육자도 있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는 인형을 선물받고 기뻐하거나, 부모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자기 안의 어린이를 발견하는 양육자의 모습은 짠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20~30대 비혼, 무자녀 시청자들이 많이 본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나와, 양육자를 발견하고 다시 퍼즐을 맞추는 행위로 치유하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어른의 내면을 보듬는다. 과거에는 육아의 정보도, 사회적 감수성도 턱없이 부족했기에 그럴 수 있다고. 나쁘게 굴었던 보호자에게는 여러 원인이 있다. 사랑받아본 적 없어서, 잘 몰라서, 서툴러서, 아니면 그냥 인격적으로 나쁜 사람이어서…. 원인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해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유를 알고, 내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한발 물러서거나, 남이라고 생각하고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의외로 문제는 단순하고 명료해진다. ‘나’가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때 채워지지 않은 욕구는 무엇이었으며, 지금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지금의 나는 안다. 선택권이 없던 그때와 달리 폭력적인 양육자와 단절할 수도 있다. 관계가 일방적인 폭력으로 점철되었고,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면 억지로 그를 용서하거나 이해할 필요 없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지만 나쁜 부모는 있으니까.

언제나 어린이 고통에 초점, 어떤 문제 상황에서도 소중한 존재 강조
‘좋은 엄마, 아빠’ 강박 내려놓고, 아이 특성에 맞게 ‘합’ 맞도록 이끌어

어른 욕심으로 강요된 ‘철든’ 어린이 대견하지 않아…마음의 고충일뿐
육아는 원래 전쟁…과거 원망하며 회피 말고 스스로 보듬으며 맡아야

아이와 어른이 함께 ‘금쪽 같은 나새끼’로 자라는 과정 선보여 ‘신선’

오은영 박사가 강조하는 ‘후천적 안정’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획득형 안전형’은 부모가 나 자신을 힘들게 하고 속상하게 한 적이 많았어도 부모가 왜 그렇게 나를 대하고 키웠는지를 알아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경우다.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니고, 다 자란 뒤에도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잔뜩 있는 셈이다. 내 안의 어린아이는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혼자였지만, 지금의 나는 그 애를 방치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지금의 나는 이 세상에서 그 애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 어른이니까. 돌봐주고 위로해주자. 어리광을 받아주고 별것 아닌 성취에도 손뼉 쳐주고, 시답잖은 것들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자. 어릴 때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편들어주자. 연인이나 친구, 가족처럼 자신을 지지해주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열쇠는 나에게 있다. 타인에게 떠넘기지 말고, 과거를 원망하며 회피하지 말고, 내가 해야 한다.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면의 상처는 툭하면 덧나고 육아는 원래 전쟁이다. 필요하다면 전문적인 상담을 적절하게 받아도 좋다. 내 안의 어린이를 보듬어주면 그 애는 좀 더 넓은 면적을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어린이와 만난다. 시야는 확장되고, 과거에 갇히지 않는 상처는 지금의 어린 존재에게 열릴 수 있는 ‘틈’이 된다. 작고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되는 감정과 권리를 생각하고, 존중하며, 아이니까 당연한 서투름에 다정할 수 있다.

어린이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금쪽같은 내 새끼>는 어린이를 보는 패러다임을 전환시킨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아동이 악의적으로 운전자를 곤란하게 하거나 돈을 노린다고 오도하는 ‘민식이법 놀이’ 같은 아동혐오 표현을 예로 들어보자. 위험을 감지할 줄 모르는 아동의 특성을 생각하고, 기절 놀이 같은 것이 유행했던 나의 유년 시절을 돌아보면, 이 표현의 문제점을 곧장 깨달을 수 있다. ‘노 키즈 존’이 한여름 초파리떼처럼 창궐하는 아동혐오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내 안의 어린이를 달래고 지금 여기 발 딛고 살아가는 어린이를 존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이였음에도 아이였던 시절을 쉽게 잊는다. 오은영 박사는 “양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이라고 강조한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결국 나 자신을 잘 양육하여 ‘금쪽같은 나 새끼’로 자라는 과정이다. 나아가 나만의 고충에 갇히지 않고, 세상의 모든 연약한 존재를 금쪽처럼 아끼고 존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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