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소멸 메타버스(1)

'부캐'로 메타버스 행성을 오가며 돈 버는 크리에이터의 등장

유명종 PD
[경계의 소멸 메타버스①]'부캐'로 메타버스 행성을 오가며 돈 버는 크리에이터의 등장

“이 행성(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작가로 살고 다른 행성에서는 게임 제작자로 사는 거죠. 지구에서는 백수이지만 다른 행성에서는 명성이 높은 사람이 된 나의 아바타가 돈을 벌고 있으니 즐겁게 살 수 있어요. 다양한 자아를 발현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거예요.”

가면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 다양하다는 의미의 ‘멀티(multi)’를 붙여 만든 ‘멀티 페르소나’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쓰듯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 것을 뜻한다. 현실에서 ‘본캐’(본래 캐릭터)로 살아간다면 메타버스 공간에선 자신의 본업과 성격을 변주해 ‘부캐’(부가 캐릭터)로 변신하는 것이다.

아바타는 더 이상 가상 세계의 가상 존재가 아니다. 내가 인격을 부여한 아바타가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 현실의 나를 먹여 살린다. 미국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활동하는 16세 소년 애먼 런저는 친구와 감옥 탈출 게임을 구현해 억대 수익을 창출했다. 국내 네이버Z ‘제페토’에서 아바타 의상을 만드는 크리에이터 ‘렌지’는 월 평균 1500만원 정도의 수익을 낸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제페토 스튜디오에서 아바타 의상 등의 아이템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는 6만명(2020년 5월)에서 현재 7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들이 판매한 아이템 개수는 2500만 개(누적 수치).

인형 리페인터(채색을 통해 인형에게 새로운 표정과 얼굴을 그려주는 일)로 일하던 이소담씨는 제페토 크리에이터가 된 지 3개월 차다. 하던 일과 다른 분야이지만, 인형 옷과 게임 캐릭터 옷이 비슷한 점이 많아 4개월간 3D 모델링 수업을 듣고 도전했다고 한다. “제페토에서 제공하는 템플릿 외에 나만의 디자인을 하려면 3D모델링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샘플 의상을 고르고 2D 이미지를 등록하면 누구나 3D 아이템을 창작해 판매할 수 있다. 1세대 크리에이터인 렌지는 “유튜브도 수익 창출이라는 서비스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제페토도 마찬가지로 수익 창출 사례가 알려지면서 새로운 유저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제페토 월드 속 아바타들이 크리에이터 렌지와 사진을 찍기위해 모여있다. / 제공 제페토 크리에이터 렌지(lenge)

제페토 월드 속 아바타들이 크리에이터 렌지와 사진을 찍기위해 모여있다. / 제공 제페토 크리에이터 렌지(lenge)

팔로워 31만 명의 계정을 운영 중인 렌지는 제페토에서 접속하면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평범한 생활이 불가능하다. 이미 이 세계에서는 너무 유명한 인플루언서이기 때문이다. “제페토 크리에이터는 제페토 안에서 아바타로 활동하는데 게임 안에서 유명해지다 보니 월드에 입장하면 유저들과 대화하고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어요. 월드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비긴즈>의 저자이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이승환 팀장은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 간 경계의 소멸”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도 가상과 가상 생활이 존재했지만 그 경계는 분명했다. 현실에서 열심히 일해 게임 속에 들어가 아이템을 사는 식으로 가상은 소비를 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상 안에 새로운 직업이 생기고, 가상에서 일하고 돈을 벌을 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가상에서 다시 사용하거나 현실의 화폐로 환전해 사용할 수 있다.

이소담씨도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제페토에서 나의 아바타가 나랑 안 닮았다고 하더라고 아바타에 이입해 채팅하고 소통하는 주체는 저예요. 소셜미디어도 나의 일상을 가공해서 보여주긴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일상이 맞는 것처럼요. 인형 리페인터인 ‘나’는 현실이고 제페토의 ‘나’는 가상인가? 그 경계가 와닿지 않아요.”

이승환 팀장은 과거 게임 속 아바타가 소비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현재 메타버스 속 아바타는 수익을 낸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말한다.

“소비로 키운 게임 아바타는 어느 순간 만랩을 찍으면 흥미가 사라져요. 다른 게임을 찾죠. 전형적인 이런 소비 구조는 아바타에 정체성을 잠깐 몰입할 수는 있는데 지속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수익을 가져다주는 메타버스 아바타는 소중한 존재죠.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를 대신해 주는 또 다른 자아인 데다가 생산까지 하는 구조니까 나와 동일하는 정체성이 더 강하게 부여될 수밖에 없죠.”

메타버스 크리에이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런 경향>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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