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부족했던 선의, ‘다문화’ 가족을 넘어서

김원진 기자
한국에서 창조된 ‘다문화가정’ 개념은 ‘다르다’에 초점이 맞춰져 쓰인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한국에서 창조된 ‘다문화가정’ 개념은 ‘다르다’에 초점이 맞춰져 쓰인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혼혈아에서 다문화가정 2세로.

2004년 4월 27일, 건강가정시민연대(이하 건강연대)가 선정한 ‘개선해야 할 가정용어’ 목록 중 하나다. 편견을 걷어낸 용어를 쓰자는 취지에서 나온 순화어였다. 2003년 12월에도 건강연대에 참여한 종교단체 대표가 비슷한 주장을 했다. 당시 가치 지향의 측면에서 다문화주의, 문화적 다양성 개념은 교과서에서도 많이 쓰였지만, ‘다문화가정’은 학계나 언론에서 사용하지 않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종교계 중심의 시민사회단체가 낸 아이디어를 정부가 받았다. 2006년 4월 28일, 교육인적자원부는 ‘다문화가정 품어 안는 교육 지원 대책’을 담은 보도자료를 냈다. 교육부는 “말씨, 피부색, 문화, 인종의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교육 지원이 강화된다”고 했다. ‘다문화가정’을 “우리와 다른 민족·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가정을 통칭”한다고 소개하면서 “※04.4월 건강가정시민연대가 가정용어 개선 위해 사용 권장”이라고 설명을 달았다. “입법·사법·행정부가 별다른 고민 없이 말만 부드럽게 만든”(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 결과물임을 추론해볼 수 있다.

이때부터 언론, 학계, 정부 모든 영역에서 ‘다문화가정’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2006년 10월 여성가족부에 제출된 연구용역 이름도 ‘다문화가족지원법 마련을 위한 연구’였다. 2017년 1월 ‘다문화가족지원법 제정을 위한 입법 공청회’ 자료집에서도 ‘다문화가족’ 용어를 둘러싼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이 2008년 9월 시행되면서 ‘다문화가족’ 내지는 ‘다문화가정’은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편견 담은 용어가 된 ‘다문화’

다문화가정은 다문화주의라는 가치 지향에 가정을 더한 일종의 합성어다. 한국 외에는 용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2018년 출간된 책 <차별의 언어>는 “확인한 바로 국제결혼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다문화주의는 다양성을 강조하는데, 한국에서 창조된 ‘다문화가정’ 개념은 ‘다르다’에 초점이 맞춰져 쓰인다.

선의로 만들어진 용어였다고 해도 다름과 차이에 방점이 찍힌 다문화가정을 향한 편견은 굳어졌다. “택시기사도 승객에게 ‘다문화세요?’라고 묻거나,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쟤는 다문화야’라고 부르는 사례는 흔히 목격된다”(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야기처럼 편견이 담긴 ‘다문화’의 쓰임은 일상 전반으로 퍼졌다. 교육현장에서는 “선생님들끼리 ‘그 반에는 다문화 몇명 있어요?’ 행정 업무를 처리할 때”(서울 초등학교 교사 A씨) 쓰이기도 한다. 박이대승 소장은 “용어의 쓰임을 넘어 이민자 차별의 문제”라고 했다.

‘다문화’ 용어만으로 편견이 쌓인 것은 아니다. 다문화가정이 편견을 담은 단어가 된 데에는 정부 정책도 한몫했다. 다문화가족을 국제결혼가정과 귀화자로만 좁게 해석해 “다문화는 저개발국 여성 이주민들이 한국 농촌·저소득 출신 남성과 결혼해 낳은 자녀들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범주화”됐고, 정부가 이들을 상대로 동화주의를 가장한 정책을 펼쳤다는 비판(책 <한국 다문화주의 비판>)은 꾸준히 나왔다.

언론보도도 ‘다문화가정’을 향한 편견 고착화에 역할을 했다. 올해 초 한국언론학보에 실린 논문 ‘한국의 일상적 인종주의에 대한 고찰’은 “여전히 한국 뉴스가 ‘우리 한국인’과 ‘다문화’라는 틀 속에서 그들을 대상화하고 있다”며 “‘다문화’라는 용어가 인종차별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논문은 언론보도가 “다문화가정 아이인 희망이: 필리핀인 엄마 배 속에서 (후략)”처럼 특정 출신 지역을 자주 강조했고, ‘가정파탄·가난에 버려지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라는 제목을 통해 대표적인 약자 이미지를 고착화시켰다고 비판한다.

‘다문화’는 쓰지 말아야?

‘다문화’의 쓰임이 많은 교육현장에서 학생의 다양성은 더 커지는 추세다. 교육부는 ‘2021년 교육 기본통계’를 내면서 전체 학생수와 ‘다문화 학생수’를 분류했다. 전체 초·중·고 학생수는 2011년 760만1000명에서 올해 595만7000명으로 줄었다. 교육부가 ‘다문화 학생’으로 분류한 학생들은 같은 기간 4만7000명에서 16만명으로 늘었다.

더 이상 ‘구별짓기’의 행정편의적 이유마저 줄어든 상황이다. 당사자들도 ‘다문화’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2010년 국립국어원의 ‘소수자 구별언어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보고서’를 보면 ‘다문화가정’ 당사자로 분류된 이들 중 다수가 ‘단어로 분류하지 않기’를 원했다. 경기 안산시는 2019년 다문화지원본부를 외국인주민지원본부로 바꾸기도 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B씨는 “아이들 상당수는 ‘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자라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다문화’로 불리는 것에 혼란을 느낄까봐 걱정스럽다”고 했다.

‘다문화가정’을 대체할 용어를 만들자는 주장을 둘러싼 입장은 다소 엇갈린다. 김현미 교수는 “다문화가 지닌 다양성의 가치는 오히려 더 추구해야 한다. 다만 ‘다문화가정’이 쓰이는 맥락에서의 ‘다문화’ 낙인이 아이들에게도 상속되는 현실에서 ‘다문화가정’은 안 쓰는 게 맞다”고 했다. 이미 왜곡돼 쓰이는 개념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은 “처음에는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용어를 ‘글로벌 가족’ 이런 식으로 바꾼다고 인식이 달라질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를 없애면 다문화가족지원법에서 규정한 각종 지원체계나 정책이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각각 판단은 다르지만 지향점은 같다. “사실 다문화 사회를 받아들이는 첫 번째 방향은 기존 법체계에서 이민자를 정의해 모든 법에 집어넣는 것이다. 다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일 뿐”(이자스민 전 의원)이라는 주장은 기존 법체계에 녹아들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다문화가정 한국어 교육’이 아니라 이민정책의 틀에서 한국어 기초교육을 하면 된다. ‘다문화’를 명명한 별도의 법이 아니라 기존 복지체계에서 지원을 강화하는 게 맞다”(김현미 교수)는 견해 또한 기존 법체계도 ‘다문화가정’이 들어가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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