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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숨겨온 ‘난민지침’ 비공개대상 아니었다

김기범 기자

콩고 출신의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은 2018년 12월28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다. 그러나 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입국을 허가하지 않았고,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280일 넘게 공항에서 노숙했던 루렌도 가족은 최근에서야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공항에서 장기간 노숙을 하며 콩고로 추방될 두려움에 떨어야 했지만, 그동안 출입국외국인청이 ‘난민인정 심사·체류 지침(난민지침)’상 어떤 내용을 근거로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법무부가 이 지침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현지 박해를 피해 앙골라에서 국내로 온 루렌도 가족은 법무부의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으로 인천국제공항 환승구역에서 287일 간 머물러야 했다. 루렌도 가족이 2019년 2월21일 임시로 머물렀던 공간의 모습. 이하늬 기자

2018년 12월 현지 박해를 피해 앙골라에서 국내로 온 루렌도 가족은 법무부의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으로 인천국제공항 환승구역에서 287일 간 머물러야 했다. 루렌도 가족이 2019년 2월21일 임시로 머물렀던 공간의 모습. 이하늬 기자

루렌도 가족을 포함해 난민 신청자들을 절망에 빠뜨렸던 법무부의 난민지침 비공개가 아무런 법적근거 없는 자의적 처분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난민지침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법무부가 더이상 난민지침 공개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법무부 내규(훈령 및 예규) 중 비공개 규정’을 보면, 비공개 목록에는 ‘난민인정 심사·체류 지침’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공개법 9조에 의한 법무부 비공개 내규는 총 14개다. 여기에 해당되는 내규는 ‘검찰인사위원회 규정 운영 세칙’, ‘대공 전문검사 선발 및 운용에 관한 규정’, ‘수용구분 및 이송,기록 등에 관한 지침’, ‘가석방 업무지침 중 가석방 적격심사신청 기준’ 등이다.

법무부는 그동안 난민지침이 정보공개법에서 정한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면서 비공개 처분이 합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난민지침이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에 해당된다”는 주장이었다.

김 의원은 “법무부는 관련 질의에 대해 비공개 훈령과 예규 외에도 각 부서의 내부 지침이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며 비공개 과정과 사유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법무부 스스로도 법적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난민지침을 비공개해왔음을 인정한 것이다.

인권단체 등은 그동안 법무부의 밀실 행정으로 인해 한국에 온 난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 지침에는 난민 신청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심사에 관한 절차, 난민이 보장받는 처우와 행정 절차, 체류 자격 연장 등에 관한 절차와 기준 등을 담겨 있기 때문에 법무부가 이를 비공개하는 상황에서 난민들은 체류 자격을 제한 받거나 불리한 처분을 받더라도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법무부는 2015년 4월 16일 지침을 일부 개정한 이후 현재까지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국내 난민신청자 허가율이 떨어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로 풀이된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난민신청 허가율은 평균 2.02%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올해 들어서는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올해 난민 심사를 받은 이들 중 난민으로 인정 받은 이는 지난달 현재 0.6%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4.8%에 비해 매우 저조한 수치다.

국내의 난민 신청 심사결과. 김영배 의원 제공.

국내의 난민 신청 심사결과. 김영배 의원 제공.

법원도 법무부가 난민 지침을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리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5일 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를 상대로 일부 난민심사 행정지침을 공개하라고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난민지침 가운데 ‘난민 신청자 등 체류관리 및 사범심사 등’ 정보를 공개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1일에도 서울행정법원은 난민인권센터와 난민 신청자가 낸 난민지침 공개 소송에 대해 해당 지침이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안전한 제3국’ ‘안전한 국가’ ‘신원검증 특례대상 국가’ ‘결핵 고위험 19개 국가’ ‘거짓 서류 제출 판단 기준’ 등 일부 특정국가와 관련된 정보를 제외하고 공개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 지침의 나머지 부분은 공개되더라도 난민인정심사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 만한 내용이거나 그 공개로 인하여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거나 난민인정심사 업무의 공정한 수행을 저해할 만한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대한 법무부의 항소 마감 기일은 오는 26일이다. 이때까지 항소하지 않는다면 원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돼 법무부는 난민지침을 공개하게 된다. 김 의원은 “비공개할 근거가 없음에도 이제껏 법무부가 난민지침을 비공개해왔다는 사실이 재판을 통해서도 확인됐다”며 “사법부가 이번 기회를 통해 밀실관행을 없애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번에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를 포용한 한국이 여전히 외부인 유입에 소극적인 모습은 모순적”이라며 “인권국가로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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