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만 숨은 게 아니다

김서영 기자
<은둔형 외톨이의 방구석 표류일기> 속 일러스트. 조제 그림

<은둔형 외톨이의 방구석 표류일기> 속 일러스트. 조제 그림

리버티(필명)씨에게 약 4년 전 아들의 등교 거부 선언은 난데없는 충격이었다. 별문제 없이 중학교에 다니던 아들은 한두 번 학교를 빠지기 시작하더니 장기결석자가 됐다. 아들은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방에 들어갔고, 리버티씨는 엄마로서 도저히 이유를 알아내기 힘들었다. “(당시엔) 이해가 안 갔어요. 정말 왜 안 간다고 하는 건지.” 아들의 자퇴 이후 은둔생활이 시작되며 눈물의 세월이 이어졌다. “아침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애들, 나다니는 애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고 할 정도였다.

‘은둔형 외톨이’라는 현상을 알게 되며 아들을 이해할 실마리가 생겼다. 모임에 나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다른 부모, 또 누군가의 자녀인 다른 은둔형 외톨이들과의 만남으로 “우리 애 같은 애들”을 알게 됐다. 그는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 활동가, 단체와도 수차례 만나 “우리 애만 이런 것이 아니구나”를 확인했고, 올해 아들을 다시 바깥세상에 내보냈다.

■내 아이가 은둔형 외톨이?

그런 경험을 나누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책 <은둔형 외톨이의 방구석 표류일기>가 최근 출간됐다.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들의 경험담과 전문가의 조언을 담은 여러편의 에세이를 묶었으며,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가이드북’을 표방한다. “국내에서 은둔형 외톨이와 관련된 자료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출판 기획은 ‘은둔형 외톨이 가족모임’이 했다. 리버티씨가 만든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부모와 당사자들이다.

리버티씨는 지난 10월 18일 인터뷰에서 부모로서 자녀의 ‘은둔생활’을 마주하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막막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청소년, 청년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또래엔 이런 유형(은둔)의 아이들이 없었지 않았나.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하는 것이었고 학교에 가지 않는 건 비정상적이라는 것이 당시 우리 부모 세대의 사고였다.” 또 ‘은둔형 외톨이’란 단어가 가진 일종의 낙인 같은 부정적 이미지도 거부감을 부채질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의 은둔을 받아들이는 부모들은 큰 충격을 받곤 한다. 리버티씨는 특히 ‘아이에게 어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은둔이 평생 가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가 컸다. 언제 방에서 나올지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워낙 쉬쉬하고 다 숨기다 보니 말도 못 했다. 방 밖에서 울곤 했고, 거의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의 방구석 표류일기>(은둔형 외톨이 가족 모임 지음)표지.  행복한책읽기

<은둔형 외톨이의 방구석 표류일기>(은둔형 외톨이 가족 모임 지음)표지. 행복한책읽기

■“부모까지 숨으면 안 돼”

그는 부모부터라도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대신해 전문가를 만난다는 의미도 있지만, 부모부터 자신의 아이를 대하는 방법 자체를 배워야 한다는 취지다. 부모 상담은 한국보다 일찍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문제가 부각된 일본에서 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리버티씨 역시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부모가 상담을 받아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기술을 배우는 거죠.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왜냐하면 부모랑 애랑 몇년씩 생활을 하다 보면 부모가 이 생활에 익숙해지기 쉽거든요. 이 생활을 합리화하면서 익숙해지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자꾸 외부인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부모라도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리버티씨는 “부모와 아이가 같이 고립되는 상황이 가장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식의 성패를 부모의 평판으로 곧장 연결짓는 한국 풍토상 부모까지도 숨어버리기가 쉽다고 했다. 아이가 장기결석자가 될 경우 ‘동네 창피하다’며 이사를 하는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는 “모이면 다 자식 얘기를 하니까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임에 안 나가버리게 된다. 부모가 이 상황을 부끄러워해서 친척에게도 알리지 않고 남들도 집에 못 오게 하는 식으로 교류를 끊어버리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가 본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부모가 자녀를 강제입원시키는 대처였다. 그는 이 같은 방법은 자녀를 극단적으로 몰아넣기 때문에 ‘최악’이라고 했다. 그는 ‘당장 이 아이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고 3~4개월 정도는 하고 싶은 대로 놔두라’는 전문가 조언에 따라 “어느 정도 본인 스스로 나올 아이도 있으니, 그 정도 유예기간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부모가 죄인이다’, ‘내가 잘못 키워서 저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시간 싸움이기 때문에 부모는 부모 자신의 삶을 살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물론 부모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부모가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살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까지 약해지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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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마음 번역기’ 되길

은둔형 외톨이를 돕는 데 있어서 부모를 비롯한 주변인의 도움과 관심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문제가 된다. 일본에서는 이미 한 세대의 히키코모리가 부모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8050문제’가 도래했다. 80대 부모가 50대 히키코모리 자녀를 부양하는 것으로, 청년이었던 히키코모리가 그 상태 그대로 중장년층이 되며 벌어지고 있다. 노년기에 접어든 부모로서 가장 큰 걱정은 ‘내가 죽으면 이 아이는 이제 어떻게 될까’다. 부모의 연금에 의존해 생활하는 히키코모리에게 부모의 사망은 곧 생계 중단을 뜻하기 때문이다.

리버티씨는 일본의 현 세태가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우려했다. 그는 지난 4년간 은둔형 외톨이 가족모임 카페를 운영하면서 이미 한국에도 은둔 기간이 10년을 훌쩍 넘겨 부모 나이가 70대인 경우가 생기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은둔형 외톨이가 집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밖에 없다. <은둔형 외톨이의 방구석 표류일기> 속 사례를 보면 은둔 사유는 다양하지만 학업과 취업에서의 과도한 경쟁, 가정불화, 직장생활 등 사회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상처를 덜어주거나 달래주는 것이 닫힌 문을 열 유일한 방법이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물어보니 ‘심리상담’이라는 답이 많았다. 최근엔 당사자끼리 크고 작은 모임을 만들고 있는데, 이런 모임을 지원해 주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버티씨는 <은둔형 외톨이의 방구석 표류일기>가 “저 같은 부모들에게 자녀의 ‘마음 번역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가 자신의 아이에게 쉽게 물어보지 못하는 것을 책 속의 당사자 사례를 접하며 알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자기 아이의 마음을 못 읽는 분들, 소통이 안 되는 부모들에게 이 책을 권유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은둔을 경험해본 이들의 속마음이 솔직하게 담겼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와 부모에게 먼저 내민 손이다.

<은둔형 외톨이의 방구석 표류일기> 속에서

“자녀들은 너무 아프다. 남들이 쉽게 하는 그것들이 너무나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패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파하는 부모님들의 자녀 중 단 한명도 포기한 사람은 없다. 자살을 하는 순간에도 포기가 되지 않는다.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긴 시간은 하나의 표현이며 노력이다. 결과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본인도 노력하고 있다. 고민을 안 하면서도 고민을 한다.”-서자

“저는 은둔형 외톨이 생활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제 나름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방법을 잘 몰라요.”-ing

“방 안으로 도피해 혼자 있는 게 안전하게 느껴지면서도 답답하고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두렵기만 했습니다.”-조제

“남다른 삶을 살았고 그것을 이겨낸 경험은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스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직도 은둔 중인 은톨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님의 명언처럼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의 우울함을 에너지로 바꾼다면 우리 개개인의 삶은 스펙이 안 될 수가 없다.”-유승규

“나를 넘어서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면 내 삶에서 오는 괴로움이 덜 느껴지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에게는 나를 넘어서 남 걱정, 세상 걱정 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돌솥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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