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만든 제조업 인력 공백…외국인 노동자의 ‘어촌 탈출’ 부채질했다

윤지원 기자

바다 떠나는 외국인들

그래픽 | 성덕환 기자 thekhan@kyunghyang.com

그래픽 | 성덕환 기자 thekhan@kyunghyang.com

“아침마다 올해 여든다섯인 모친 방보다 외국인 노동자 방문을 먼저 열어본다. 간밤에 도망을 갔는가, 안 갔는가.”

외국인 노동자가 고용주 허락을 받지 않고 결근하거나 소재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을 ‘이탈’이라고 부른다. 어업으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이 비합법 체류자로 전환한 ‘이탈 비율’은 기존에도 높았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사업장을 이탈한 뒤 비합법으로 국내 체류한 외국인 비율은 어업이 46.5%로 농축산업(27.5%)이나 제조업(18.4%)을 크게 웃돈다. 최근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코로나19로 비행길이 차단되고 신규 인력 공급이 끊기며 전국적으로 기간산업에 일자리가 쏟아지자 더 많은 외국인들이 어촌을 미련 없이 떠나고 있다. 지난달 부산 연안배 선주를 인터뷰하던 중 그에게 걸려온 동료 어민의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다급했다. “간밤에 3명이 또 도망갔어요.”

■외국인 노동자의 어촌 엑소더스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바다②]코로나가 만든 제조업 인력 공백…외국인 노동자의 ‘어촌 탈출’ 부채질했다

코로나로 기간산업 일자리 늘어나자
미련 없이 내륙으로 ‘야반도주’ 선택
울진 죽변항 외국인 선원 절반 ‘이탈’

임기봉씨(65)는 울진 죽변에서 7t급 선박으로 철마다 잡어와 대게를 잡는다. 배를 탄 지 50년이 넘었지만 올해처럼 매일 밤낮을 불안과 초조함으로 보낸 적은 없었다. 지난달 15일 자신이 고용한 동티모르 국적 외국인 선원 2명이 야반도주했다. 내년 4월이면 6년째 뱃일을 함께한 베테랑 선원들이었다. 불안한 조짐은 있었다. “앞서 수협에서 이들이 점포를 방문해 통장 정리를 한다고 귀띔을 하더라. 곧 떠날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거였다.” 임씨는 선원들을 붙잡으려 월급을 10만원씩 올려줬다. 이미 지난 8월에도 동네 다른 배 외국인들이 도망가자 불안한 마음에 한 차례 월급을 올려준 터였다. 한 달 만에 두 차례 임금 인상에도 외국인 선원은 말없이 떠났다. 사람을 구하지 못한 임씨는 최근 부인과 둘이 조업에 나가는데 올 12월 대게잡이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임씨는 “한국 선원이라도 구해야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죽변항의 연안배는 60척인데 외국인 선원 절반이 도망을 갔다. 울진 후포항 쪽도 인도네시아 출신 외국인 80명 중 절반이 나갔다고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어촌 엑소더스는 업종을 불문하고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 임씨 외에도 취재차 연락하거나 직접 만난 부산 통발 선주 박형준씨(이하 가명), 개야도 김양식업자 김종길씨와 송성문씨는 모두 코로나19 이후 데리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장을 이탈했다. 통영의 굴양식장과 박신(굴가공)업체, 전라도 김 가공업체 등에서도 외국인 이탈 사례가 확인됐다.

9월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올해 신규로 발생한 등록 불법체류자 3만9873명 중 19%(7649명)가 농어업과 제조업에 종사하기 위해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였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5% 증가한 것이다. E9은 입국 때 정해진 업종이 아닌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면 미등록 신분이 되는데, 이를 감수하고라도 지정 근무지를 떠난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는 얘기다. 선원 비자(E10)로 입국한 외국인 이탈자도 올 1~8월에만 1186명이었는데 이는 2019년 한 해 이탈자(874명)를 훌쩍 넘긴 것이다.

■육지와 바다의 ‘제로섬 게임’

지정 사업장을 이탈한 외국인들이 택할 수 있는 첫 행선지는 같은 수산업 안이다. 동료 외국인들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전국 사업장의 임금 및 처우를 공유하거나 전문 브로커를 동원하는 식으로 이탈이 시작된다. 부산 수협 관계자는 “전라도 어선에서 월 400~500씩 임금을 세게 부르니까 입소문을 타고 그쪽으로 이동하는 부산 쪽 외국인 선원들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업에서 제조업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고 어민들은 말한다. 부산 통발 선주 박씨는 “하루아침에 떠난 외국인 선원들이 모두 경기도 공장으로 간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제조업에 매년 신규로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는 통상 어업보다 10배 이상 많은 연 4만명에 달하는데 코로나19로 수급이 막히자 기존에 어업으로 들어온 노동력을 흡수하고 있다. E9 비자로 들어온 제조업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해 4806명, 올 8월 기준 3496명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4만명)의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제조업 내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신분이 불안정한 만큼 고용 조건이 좋지 않았으나, 코로나19로 일손이 부족해지며 처우도 달라졌다고 현장에선 말한다. 수도권 소재 이주노동자 인권센터 관계자 A씨는 “이전에는 미등록 노동자들을 고용주가 쉽게 착취했는데 지금은 국내에 이미 들어와 살면서 한국어를 익힌 외국인들이 임금이나 처우를 놓고 협상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임금을 올려도 그들은 바다를 떠난다

내국인과 임금차 줄고 처우 개선에도
“다수가 20~30대, 화려한 도시 선호”

노동자 선발 때 한국어 성적만 고려
직무 경험·선호 직종 도외시 ‘문제’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촌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선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농어업 외국인 노동자는 근로시간에 따른 휴게나 휴무가 적용되지 않아 8시간 일하면 1시간 휴게를 지키지 않고 근로기준법 자체를 안 지켜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제조업은 시간당 임금이 정확하고 추가근무는 임금의 1.5배를 쳐준다”고 말했다. 특히 20t 이상 근해어선에 타는 E10 비자 외국인 선원들의 처우는 내국인과 격차가 크다. E10 비자 외국인 선원의 지난해 최저임금(월 209시간)은 172만3498원이었는데 이는 내국인 선원 최저임금(221만5960원)에 크게 못 미쳤다. 내외국인 모두 최저임금이 같은 E9과 대조된다. 김 연구위원은 “배에서 육체적으로 힘쓰는 일을 도맡는 외국인들이 오히려 임금은 내국인 선원보다 크게 낮기 때문에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한국인 선원은 기본 임금 외 보합제에 따라 생산수당도 받지만 외국인 선원은 여기서도 배제된다”고 밝혔다.

반면 E9으로 입국한 외국인을 고용한 선주와 양식업자들은 외국인 노동자 임금이 평균적으로 국내 최저임금을 훨씬 웃도는 점을 강조한다. 군산 개야도에서 김양식장을 하는 김씨는 “도망간 3명 모두 매년 20만원씩 임금을 올려줘 월 300만원씩 받았다”고 말했다. 김대성 한국어업연안회 회장은 “동해안의 경우 겨울에는 월 10~12일, 여름에는 월 15~20일 정도밖에 조업을 안 한다. 거기에 숙소와 식사를 별도 제공하면서 월급에서 공제하는 일도 별로 없다”며 “노동시간에 비례한 선원 임금은 낮은 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어민들은 외국인들이 어촌을 떠나는 것은 임금이나 처우 문제보다 육지에 대한 선호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은 20~30대가 많기 때문에 화려한 도시 생활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김씨도 “어촌은 저녁에 즐길 만한 곳이 없어 동티모르, 베트남 국적 외국인들이 숙소에 모여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선발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부경대 ‘연안어업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태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어업 쪽 외국인 노동자는 직무 경험이나 선호 직종에 대한 고려보다 한국어능력시험 기준 낮은 점수대가 배치 기준이 된다. 어촌은 바다에서 일한 직무 경험이나 선호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런 고려 없이 시험 점수로 입국하다보니 높은 이탈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A씨는 “애초에 멀미 등으로 배를 탈 수 없는 사람이 어업 쪽으로 입국하는 경우가 있다. 폭행이나 욕설은 농촌이든 제조업이든 어디나 있을 수 있지만 어업의 이탈률이 특히 높은 것은 복합적 이유”라고 말했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