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법’ 제정 일등공신 김지환씨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팀장 맡아
미혼부 사망·아이 아사 상태 접한 뒤
도움 주려 공개 활동 나서기로 결심
월 평균 11명 베이비박스 인연 맺어
임시 거처 마련 및 양육 물품 지원
미혼부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김지환씨는(43)는 딸 사랑이의 출생신고 방법을 수소문 하던 끝에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를 찾았다. “베이비 박스라고. 여기는 아이 출생신고를 어떻게 하는 거지. 무슨 방법이 있는 걸까 싶어 전화를 걸었어요. 그랬더니 일단 와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들이 방법을 한번 찾아보겠다고. 왔더니 방법이 없다고 했죠.” 김씨와 이 단체의 첫 만남이었다. 김씨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아기를 기르려고 마음 먹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 혼자서 어떻게 딸을 키우냐는 소리만 줄곧 듣던 시절에 처음으로 내 편이 생긴 것이다.
김씨는 미혼부도 아이의 출생등록을 가능하도록 한 사랑이법(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57조 제2항) 제정을 이끌어냈다. 유모차를 끌고 1인 시위를 하던 그의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부모 가정을 돕는 ‘아빠의 품’ 활동을 하는 김씨는 최근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 박스 총괄 팀장이란 새로운 자리를 맡게 됐다. 여태까지 아빠의 품에 가장 많은 미혼부를 연결해 준 단체이기도 하다.
‘베이비 박스’는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보루다. 박스 문을 여는 손잡이 위엔 “당신이 이 아이의 생명을 지켰습니다” “끝까지 기도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주세요”란 문구가 쓰여있다.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이에게 제일 좋겠지만 피치 못할 사정도 생기기 마련이다. 애초에 단순히 아이를 포기하기 위해서라면 대전,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이곳까지 올 이유도 없다. 간혹 부모가 남기고 간 편지엔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이 가득하다.
어느 시간에 누가 어떻게 올지 모르다 보니, 베이비 박스는 24시간 운영된다. 베이비 박스 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보육사와 상담사들이 맡겨진 아이들 곁에서 밤을 지킨다. 벨이 울리면 보육사와 상담사 모두 뛰어나간다. 보육사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상담사는 아이 부모에게 상담을 권유한다. 이들이 응한다면 차 한 잔 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사정을 듣고, 아이의 엄마 혹은 아빠의 마음에 아이를 맡기는 일이 계속되는 죄책감으로 남지 않도록 위로한다. 이 과정을 통해 다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하는 부모는 17% 정도 된다. 필요하다면 임시 거처, 경제적 지원, 베이비케어 키트를 통한 양육 물품을 지원한다. 월 평균 11명의 아이들이 이곳을 거쳐 다시 부모의 품으로, 보육원으로, 아니면 새로운 가정을 찾아간다.
김씨가 처음부터 아이들과 미혼부모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흔히들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아빠를 훌륭하게 보고 자랑스럽게 여기겠어요”라고 하지만 아빠인 김씨 생각은 다르다. 김씨는 “이 일이 딸의 아픔을 되새기는 일이 될까 조심스럽고, 딸이 좋은 일을 하는 나를 이해할 거란 생각도 섣불리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20대 미혼부가 지병으로 사망하고 아이는 아사 상태로 발견된 사건을 접한 후 ‘저 분이 나랑 한 번만 연락이 닿았어도’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그는 공개 활동에 나서게 됐다. “우선은 미혼부모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널리 알리고 싶다”는 김씨의 소박한 꿈은 더 이상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지 않아 남들처럼 생계활동을 하며 사랑이랑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