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와 판타지 사이…요즘 연애 예능

고희진 기자

일반인 연애 예능이 전성기를 맞았다. <나는 솔로> <솔로지옥>, <환승연애>, <돌싱글즈> 등 최근 화제가 된 프로그램만 여러 개다. 방송가에서 연애 예능은 너무 못 만들지만 않으면 ‘평타는 친다’고 말한다. 연애 예능은 타인의 연애를 관찰한다는 시청자의 관음증적 욕구를 충족한다. 영화 <트루먼쇼>의 설정과 비슷하다. 등장인물의 행동과 생각은 내레이션, 제작진의 자막, 패널의 추임새 등으로 해설된다. 시청자는 등장인물의 외모, 학력, 직업 등을 평가한다. 어떤 출연자들은 간혹 연예인 이상의 관심을 받기도 한다. 프로그램의 기본 목적인 ‘연애’가 아닌 홍보를 위해 출연하는 이들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솔로> 방송 화면 캡쳐. SBS PLUS

<나는 솔로> 방송 화면 캡쳐. SBS PLUS

■연애는 질척질척한 ‘다큐’

채널 NQQ와 SBS PLUS,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등을 통해 서비스되는 <나는 솔로>는 과거 SBS 인기 프로그램 <짝>의 제작진이 설립한 독립 제작사에서 만들었다. 다큐 같은 설정으로 <짝>이 날것 그대로의 인간을 보여주는 다큐라는 평을 들었던 것처럼, 이 프로그램도 출연자들의 ‘진정성’에 집중한다. 그래서일까, 프로그램에는 사랑과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출연자들의 질척한 감정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제작진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놓고 연애에 몰두하는 출연자가 아니라면 사전 인터뷰를 통해 “걸러낸다”고 표현했다.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 의도적 장치를 두기도 했다. 여타 프로그램과 달리 <나는 솔로>는 출연자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매회 출연자들은 제작진으로부터 가상의 이름을 부여받는데 ‘영철, 정수, 영숙, 정자’ 등이다. 출연자들이 머무는 장소도 크게 화려하지 않은 펜션 같은 곳이다.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데이트 비용도 제작진이 지급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부 회차가 방영된 뒤엔 시청자들이 출연자들의 데이트 비용을 놓고 ‘남녀 중 누가 내야 하는가’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남규홍 PD는 “홍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실명이 중요하겠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당사자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출연자에게 안 좋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실명을 쓸 생각은 없다”고 했다. 데이트 비용에 대해서는 “경제적 문제는 사람을 만날 때 중요하게 평가되는 부분이다. 제작진이 출연자에게 모든 걸 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라고 말했다.

진정성을 표방하다 보니 출연자들이 방송에서 보인 무례함과 불화가 프로그램 밖까지 문제 되기도 했다. 출연을 마친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출연 당시의 심정과 문제점을 토로하기도 했다. 남 PD는 “촬영 중 정말 위험 수위에 다다른 사건이 있다면 제작진이 관여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일반의 사적인 관계에서도 나타날만한 불화 등은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둔다”며 “실제 연인, 사람 관계에서도 싸우고 서로 멀리하고 그런 일들이 나타나지 않나. 제작진이 과도하게 개입하고 해결하려 하는 것이 결국 출연자들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짝>에 이어 <스트레인저>, <나는 솔로>까지 실제와 비슷한 연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사랑하게 될까’가 궁금해서 연애 프로를 시작했다. 진정성 있는 사례들이 쌓이면, 결국 이 프로그램들이 연애에 대한 ‘킨제이 보고서’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타 연애 예능이나 로맨스 영화 등을 굳이 참고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판타지를 보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지는 않는다. 현실을 볼 뿐”이라고 했다.

■연애는 판타지 ‘쇼’

<솔로지옥> 포스터. 넷플릭스

<솔로지옥> 포스터. 넷플릭스

<나는 솔로>와 대척점에 선 프로그램도 있다. 넷플릭스 <솔로지옥>이다. 프로그램은 한여름 지옥도(인천 사승봉도)라는 곳에서 만난 남녀 솔로들의 ‘솔직하고 화끈한 데이팅 리얼리티쇼’를 표방한다. 화려한 출연자들과 일부 선정적 연출로, 미국에서 만들어졌던 연애 예능 <투핫>의 한국 버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후 올 초 넷플릭스 전 세계 시청 순위 10위권에 들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 등 드라마 장르를 제외한 한국 예능이 넷플릭스 인기 순위 10위 안에 든 것은 처음이다.

인기 요인은 무엇보다 ‘볼거리’에 있다. 연애 예능은 다큐적 성격을 가진 관찰형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버라이어어티쇼 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솔로지옥>은 후자다.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출연자가 크게 부각된다. <솔로지옥>에서는 송지아라는 출연자가 인기다. 송씨는 방송 이전부터 유명한 뷰티 유튜버였다. 이 외에도 춘향 선발 대회에서 수상한 출연자, 피트니스 모델로 활약한 출연자 등 사실상 연예계 주위에서 활동한 이들이 많다. 이들의 장점은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화려한 외모다. 방송이 끝나면 인기 출연자에 관한 기사가 양산되고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다. 프로그램의 목적이 ‘쇼’로 확실한 이상 이는 제작진과 출연자 모두에게 이득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인기 전략에 대해 진정성 없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다큐를 보여주겠다고 한 뒤, 쇼를 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쇼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수많은 연애 예능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고, 거짓말이 아니라면 굳이 진정성으로 비판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형식 외에 출연자 설정을 색다르게 해 프로그램만의 색깔을 찾은 연애 예능도 있다. OTT 티빙에서 방영되는 <환승연애>는 헤어진 연인 여러 쌍을 한집에 살게 하며 새로운 커플의 탄생을 보여준다. MBN <돌싱글즈>는 이혼 남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기존 연애 예능이 흔히 서로 처음 보는 결혼 적령기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한 것과 다르다. 두 프로그램은 다큐형과 판타지형 사이에 있는 연애 예능이다.

각자 설정이 완료됐다면, 연애 예능은 프로그램의 목적에 부합하는 출연자를 찾기만 하면 된다. 진성성이면 진정성을 보여줄 만한, 쇼라면 쇼를 할 수 있을만한 출연자를 구하는 일인데, 크게 어렵지는 않다고 한다. 우선 최근 SNS 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부감이 없는 일반인들이 많다. 대중매체의 각종 경연대회 등이 특별한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과 달리 연애 예능은 어떤 재주가 없어도 출연 가능하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연애 예능만큼 접근하기 좋은 프로그램도 없다. 다만, 과도한 홍보성 출연은 연애 예능의 근간을 흔든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최근 <돌싱글즈> 등 일부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홍보성 출연 의혹이 제기돼 출연자가 직접 사과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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