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롱인 줄 알고 꿀꺽…아동 위협하는 슬라임

김태훈 기자

식품 상표와 비슷한 완구 용기 디자인에 ‘혼란’

식음료 제품으로 오인될 수 있는 슬라임 형태 완구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 인터넷 판매 페이지 캡처

식음료 제품으로 오인될 수 있는 슬라임 형태 완구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 인터넷 판매 페이지 캡처

“한 달에 적어도 한두건은 꼭 이런 사고로 어린아이들이 찾아옵니다. 경고문이 쓰여 있긴 해도 글을 못 읽는 유아들에겐 의미가 없죠.”

송명제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전한 응급실 풍경이다. 아동용 완구, 그중에서도 식품으로 혼동할 수 있는 젤리·슬라임 형태의 완구를 삼켜 찾아오는 사례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병원 인근의 인천 청라국제도시는 어린이 인구 비율이 높은 신도시여서 비슷한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눈을 끄는 알록달록한 색깔을 띤 데다 담고 있는 용기마저 시중의 음료·과자 상표를 비슷하게 본떠 만든 상품이기에 어른들도 혼동하기 쉽다.

‘쿨피수’, ‘오란찌’, ‘고고팜’, ‘한나봉’…. 이들 젤리·슬라임 완구의 용기 겉면에는 실제 음료 상표와 흡사한 디자인에 이름만 살짝 바꾼 포장 스티커가 붙어 있다. 용기 모양조차 음료 캔 형태를 그대로 가져왔다. 또 다른 상품은 마카롱 모양의 용기에 내용물을 담아 ‘리얼 치즈’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글자를 읽을 수 있는 학령기의 아동들도 표면 한쪽 구석에 있는 ‘먹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을 읽지 않으면 먹는 것으로 쉽게 오인할 정도다. 송 교수는 “아예 장난감을 입에 넣고 빨면서 노는 경향이 있는 유아들이 특히 위험한데, 슬라임 놀이에 들어가는 부자재 중 금속 등의 이물질을 함께 삼키면 더더욱 심각하다”며 “부모가 유의하는 것만으론 예방이 어려우니 보다 근본적인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 들어간 제품도

문제는 이렇게 식품으로 혼동·오인할 수 있는 완구를 학교 주변 문구점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쇼핑몰과 가격비교 사이트에 젤리 또는 슬라임 등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제품 중 상당수가 식음료 모양의 용기를 사용하고 있다. 제품 홍보문구 역시 ‘단짠단짠’이나 ‘파인애플향’, ‘초코향’ 등 맛과 향을 떠올릴 수 있는 표현을 넣어 혼란을 가중시킨다. 아예 ‘그릭요거트 슬라임’이란 브랜드에 각기 다른 색깔의 용기마다 ‘민트초코’, ‘콘스프’ 등의 음식 이름을 써붙인 제품이 있을 정도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당시 논란을 일으킨 사용금지 방부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들어 있다고 표시한 제품이 버젓이 유통 중인 사실도 주간경향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 제품이 표기한 어린이제품 자율안전 인증번호를 통해 인증정보를 검색하면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조사결과 해당 성분을 함유해 리콜 조치를 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방부제로 쓰인 해당 성분은 “삼킬 시 유독하며, 사용 시 알레르기성 피부 반응 일으킬 수 있음”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어린이제품은 인증 및 유통과정 전반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만 실제로는 허점이 많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해당 제품을 판매 중인 한 소매상은 “도매상을 통해 소량만 들여왔다”며 “품절 조치가 된 줄 알고 있었는데, 바로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제품은 여전히 판매 중이다. 제조국인 중국에서 해당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 유통한 업체들에 여러차례 대표번호로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어린이제품 안전관리 및 인증 정책을 담당하는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리콜 조치를 받은 해당 원재료 사용 제품들을 계속 유통 중이라면 당연히 불법이고, 리콜 이후 새롭게 인증받은 제품들을 유통 중이라고 하더라도 안전인증번호를 잘못 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에 저촉된다”고 말했다.

먹을 수 있는 식품이나 음료가 아닌데도 식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 포장을 사용하는 유행은 비단 어린이제품뿐 아니라 전 연령대가 쓰는 제품에도 흔히 나타난다. 이른바 ‘컬래버’라고 표현하는, 서로 다른 상품 분야의 브랜드 간 협업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는 마케팅이 빗발쳤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말표 구두약’ 브랜드를 달고 나온 맥주나, ‘서울우유’ 우유갑 디자인을 그대로 옮긴 목욕용 세제, ‘모나미 매직’ 문구의 디자인을 음료 용기에 그대로 적용한 탄산음료 등 수두룩하다.

■어린이제품 관련 포장 규제 없어

먹으면 안 되는 제품에 식음료 브랜드 디자인을 입히거나, 반대로 먹는 제품에 식용 불가한 유명 제품 브랜드를 붙여 혼동을 주면 자칫 오인 복용으로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8월 ‘화장품법’과 ‘의약외품 표시에 관한 규정’ 등의 고시를 개정했다. 화장품이나 손소독제 등의 제품을 식품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형태와 포장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을 비롯해 관련 부수 규정 등을 통해 성분과 원료, 함량, 세부적 형태까지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어린이제품에는 식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 형태나 포장을 금한다는 규정이 없다. 음식이나 식재료를 본뜬 완구를 갖고 놀고 싶어하는 어린이들의 놀이 행태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식품을 본뜬 완구류 등에는 ‘먹지 마시오’라는 경고문구를 넣고 사용가능 연령대 또한 함께 표시하도록 해 보호자들이 안전사고 위험을 방지할 수 있게 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이 완구를 입으로 빠는 환경을 상정해 그에 따른 성분 용출 등의 기준을 엄격하게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의 겉모습만 보고 입에 넣어도 되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연령대의 어린이들에게 보호자의 지도는 필수다. 현실적으로 이물질을 삼키는 사고는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4월 펴낸 ‘2020년 어린이 안전사고 동향 분석’을 보면 14세 미만 어린이가 이물질을 삼키거나 냄새 등을 마신 사고는 2016년 1293건에서 2020년 2011건으로 늘어났다. 2020년에는 체내에 위험 이물질이 들어간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10.4%로 높아져 열상과 타박상에 이어 세 번째로 빈도가 높았다. 5년간 이물질을 삼킨 전체 사고 중에서도 ‘완구’를 삼키거나 기체를 흡인한 사고가 3725건(45.1%)으로 가장 많았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을 통해 접수한 안전사고 사례들을 분석해 관련 부처에 규제 방안을 마련하도록 건의하고 있다”며 “현행 규정을 위반한 제품들의 실제 유통 여부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업체에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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