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엔 초록 잔디서 아이스크림 맘 편히 즐길 수 있을까

신혜광·이은혜

신혜광·이은혜의 ‘베를린 육아일기’

아침 7시. 어김없이 아이가 잠에서 깬다. 뒤척뒤척, 일부러 들리라는 듯 크게 하품을 하고는 조용한 침실의 정적을 깬다. “아빠, 일어났어?”

[다른 삶]올봄엔 초록 잔디서 아이스크림 맘 편히 즐길 수 있을까

아이와 사부작사부작 노는 동안 아내가 일어나 세 살 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하면 나는 아이와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아이를 배웅하고 집에서 아내와 아침식사를 한 뒤 재택근무를 시작한다. 아내는 온라인 어학수업을 위해 옆방으로 커피 한잔을 들고 들어간다. 점심시간이 지나 집으로 오는 아이를 아내가 데리러 간다. 아내는 남은 오후 시간 동안 아이와 놀아주며 저녁 준비를 한다. 나의 재택근무가 끝난 뒤 두 시간쯤 지나면 아이는 꿈나라로 가고 우리 부부는 ‘육퇴(육아퇴근)’를 한다.

우린 매일 베를린에서 산다는 것을 느낀다. 어린이집에서, 마트에서, 공원에서, 길거리에서 익숙해질 듯 계속 어색한 독일어 문자들과 마주치는 사람들이 이곳이 베를린임을 느끼게 한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바뀌기 전, 가끔씩 집 밖에서 밥을 먹는 순간들이 베를린과 가장 가깝게 느껴졌었다. 최근에는 그저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하는 시간들이 그렇다. 설렁설렁, 두리번두리번, 때로는 아이의 킥보드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없이, 매일 보지만 새로운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새롭다. 2~3층짜리 개인 주택부터 4~5층 규모의 빌라 형식 건물들, 길고 긴 집합 주거들, 답답하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띄우고 들어선 건물들은 동네의 분위기를 더 차분하게 만들곤 한다.

우리 가족이 사는 첼렌도르프(Zehlendorf)는 베를린의 남서쪽에 위치한 곳이다. 도심과는 10㎞ 정도 떨어져 있고, 작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새로운 베를린 공항이 위치한 남동쪽과는 정반대다. 한국사람이 제법 많이 사는 편이지만 젊은층에게 ‘힙’하게 유명한 지역은 아니다. 우리처럼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더 어울리는 곳이다. 인구밀도가 높지 않고 다양한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이 있으며 무엇보다 차분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다. 누군가의 ‘지루하다’는 표현도 맞다. 저녁 시간의 어둠을 밝히는 현란한 불빛들이 없다. 출퇴근 시간의 버스나 에스반(지역 전철) 내부의 풍경도,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대체로 균일하다. 시내로 출퇴근하기 위해 저마다 음악에, 책에 몰두한 사람들의 모습은 세상 다른 곳과 같다.

100% 재택근무·온라인 어학수업
세 살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
베를린 남서쪽 ‘지루한’ 동네의 일상

야외선 유난히 마스크 안 쓰는 이곳
불안한 현실에 나름 적응해온 2년
카드 결제·배달 등 변화 반기며
일단은 좋은 날씨에 감사해본다

가족 중 내가 베를린에 처음 살기 시작했다. 그 후로 줄곧 8년째 같은 건축설계사무소에 다니고 있다. 세상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라 믿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같은 조직에서 일하게 될 줄 몰랐다. 일 년에 여러 번 조직생활에서 벗어나 사무소를 차려 나만의 작업을 하는 것을 꿈꾼다.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오늘도 중얼거리며 재택근무 중이다. 베를린에 오기 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살았었다. 스페인어가 익숙해질 즈음 개인적인 사정으로 베를린에 위치한 현재 회사로 이직했다. 아내와는 바르셀로나에서부터 알고 지냈고 본격적인 연애는 수년이 흐른 뒤에 시작했다.

아내는 4년 전에 베를린으로 왔다. 원래 바르셀로나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했다. 20대를 오롯이 그곳에서 보내고 한국으로 들어가 20대보다 더 신나는 30대를 보냈다는 아내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나를 만나 한국에서 베를린으로 오자마자 임신을 했다. 결혼 후 바로 시작된 육아로 인해 독일어를 배울 시간조차 없었던 아내는 코로나19로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 후에야 어학수업을 온라인으로 듣기 시작했다. 결혼 전, 아내는 스페인어가 본인 인생의 마지막 외국어라고 생각했다. 집돌이인 나와 달리 아내는 야외 활동을 좋아하고 SNS를 통해서도 바깥세상과 활발히 소통한다.

아이는 3년 전 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사실 아내와 나는 딱히 가족계획이 없었다. 막연하게 ‘생기면 낳아야지’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이다. 베를린에 살기 시작하며 임신한 아내의 10개월은 그래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의사소통을 위해 아빠는 출산 전이나 후나 병원 등에 항상 함께 간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생김새나 타고난 기질은 아빠를 많이 닮았지만 식성이나 언어 습관은 엄마를 많이 닮았다. 생후 18개월 즈음부터 집 근처의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으나 코로나 시대가 시작된 이후 못 가는 날도 꽤 많다. 이제껏 한국에는 두 번밖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한국어를 아주 잘 구사하며, 최근 독일어와 한국어의 언어적 차이로 조금 혼란을 겪고 있다.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 아이에게 ‘할로’하며 인사하고 싶지만 아직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베를린의 여름은 참 아름답다. 사계절의 주기는 한국과 비슷한 편이지만 한국보다 높은 위도 때문에 전반적으로 더 쌀쌀하다. 해는 따갑지만 그늘은 시원하고 화창한 이곳의 여름은 살랑살랑 선선하다. 35도를 웃도는, 극단적으로 더운 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열심히 밖으로 나갔다. 여름이 아름답지만 짧기에 즐길 수 있을 때 열정적으로 나가 놀아야 한다. 아이와 함께 나가면 보통 공원이나 호숫가, 숲 등 자연과 가까운 장소를 선호한다. 대부분의 부모들 생각이 비슷해서인지, 그런 장소들에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방문이 많다. 왁자지껄 떠들고 울고 웃어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들이 좋다.

그래서 코로나19 팬데믹 초반 집에만 머무르는 시간들이 더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야외에서 놀던 아이가 자꾸 나가자며 보챌 땐 난감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열심히 밖으로 다니던 아내도 힘들어했다. 독일은 야외에서 유난히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 편이라,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좀 높았다.

개인의 자유를 지독히도 억압했던 아픈 기억도 존중하고, 그로 인해 일정한 선을 지키는 통제의 범위도 존중하지만, 그래도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두 살 아이부터 모두 마스크를 열심히 쓰는 한국이 심적으로 더 안심은 된다. 그래도 현실이 그런 걸 나름 적응해야지 별수 있나. 팬데믹은 이렇게 일상의 자잘한 것들까지 세심하게도 모든 것을 지진처럼 흔들어댔다.

지난 2년 동안 긍정적으로 바뀐 부분도 있다. 유난히 현금 지불을 좋아하던 상점들에 카드 결제기가 등장하고, 배달문화도 전에 비해 많이 성장했다. 없어지거나 새로 여는 등 상점들의 순환은 빨라졌고, 소규모 상점들이 생겨나곤 한다. 느린 속도지만 분명 모두들 열심히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팬데믹이 시작되자 재빠르게 재택근무에 들어간 IT 관련 업종 종사자들과 달리, 끝까지 고집스레 주 5일 출근을 고집하던 내가 일하는 사무실도 100% 재택근무로 바뀌었다. 아내의 어학수업은 ‘이대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은’ 희망을 품던 작년 가을에 현장수업으로 시작해 이제는 몇 달째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장수업이 없었다면 선생님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과는 인사도 못할 뻔했다. 아이의 어린이집은 여전히 들쑥날쑥이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10대 이하 아이들이 확진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아져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도 이래저래 답답한 상황이긴 마찬가지다.

2월이 되며 해가 빠르게 길어진다. 특히 이번주 주말은 정말 날씨가 좋았다. 좋은 날씨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 근처에 정말 맛있는 아이스크림 집이 있다. 가끔씩 점심 후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사 먹곤 했다. 그 맛을 혼자 즐기기 아까워 작년 여름에는 아내와 아이를 굳이 데려가기도 했다. 시내 지역은 확진자가 워낙 많아 갈 때마다 긴장을 더하게 돼서 그런지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답답한 것만 생각하면 답답해지고 속상한 것만 생각하면 더 속상해진다. 팬데믹 이후 벌써 세 번째인 이번 봄은 좀 더 화창하길 바랄 뿐이다. 부디 맘 편히 초록 잔디에 대자로 누워 맛난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까르르 웃을 수 있길 바라본다.



[다른 삶]올봄엔 초록 잔디서 아이스크림 맘 편히 즐길 수 있을까

▶신혜광·이은혜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인 3인 가족이다. 닭띠 아빠는 건축설계사무실에 다니고, 돼지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돼지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스페인, 버틸 수밖에 없었다>와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를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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