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토론토에 찾아든 온기…더디긴해도 ‘봄’은 오고 있다

성우제

성우제의 ‘경계인’

토론토 부동산 시장은 뜨겁다 못해 펄펄 끓는 중이다. 매물이 적어서 집이 나왔다 하면 매물가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업자들은 “오버 에스킹 솔드”라며 자랑을 한다.

토론토 부동산 시장은 뜨겁다 못해 펄펄 끓는 중이다. 매물이 적어서 집이 나왔다 하면 매물가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업자들은 “오버 에스킹 솔드”라며 자랑을 한다.

토론토에 살러 와서 처음 맞이한 겨울을 잊지 못한다. 나로서는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혹독한 겨울이었다. 토론토와 비슷한 위도의 만주 벌판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들이 새삼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체감온도가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잦았고 눈폭풍이 불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얼음비가 내리면 도로가 빙판이 되기 일쑤였다. 토론토에 오래 산 사람들은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살면 살수록 겨울이 점점 더 무서워져.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겨울왕국인 토론토의 날씨도 지구 온난화 탓인지 지난 20년 동안 점점 부드러워졌다. 겨울철이면 주택가에는 눈 담장이 만들어지게 마련이지만 그런 풍경이 보이지 않는 해도 있었다. 그런 겨울이면 눈 치울 일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참 행복했다.

그러나 올겨울에는 그런 행복이 찾아오지 않았다. 실로 오랜만에 토론토의 겨울다운 겨울이 지금도 지속되는 중이다. 지난 1월 중순 어느 날에는 눈이 1m 가까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바람에 도시가 마비되었다. 버스가 눈에 빠져 운행을 못할 정도였다. 자동적으로 임시 공휴일이 되었다. 학교도, 상가도 문을 닫았다. 나도 당연히 가게에 나가지 못했다.

유럽·미국보다 방역 엄격한 캐나다
오미크론 기세 스러질 기미 보여
온타리오주 정부 “내달 규제 해제”

길었던 팬데믹…곳곳에서 ‘후유증’
인플레이션 5.1% 30년만에 최고치
매일 집값 올라 ‘멀티오퍼’도 속출

며칠 뒤 전면 개방은 ‘한 줄기 빛’
혹독한 시련들 ‘이 또한 지나가리’

험한 날씨가 이어지는 한겨울인데도 토론토에는 지금 온기가 돌고 있다. 작년 12월 초에 등장해 기세등등하게 퍼져가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기세가 1월 하순에 꺾인 후 스러질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2월 들어 캐나다 온타리오주 정부는 오는 3월1일 코로나19로 인한 규제를 모두 풀겠다고 발표했다.

오미크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높은 전파력 때문에 위기감이 컸다. 더군다나 조심스럽게 일상회복을 향해 나아갈 즈음이어서 충격과 실망은 더했다. 캐나다 연방정부가 팬데믹 선언 이후 자영업자들에게 계속 지급하던 재난지원금을 중단한 지 한 달 만이었다.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자영업자들은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캐나다 방역당국의 오미크론 대처는 신속하고 효과적이었다. 글로벌 팬데믹 선언 직후 허둥대거나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오미크론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맞춤형’ 관리를 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가장 돋보였던 것은 ‘공포감 줄이기’와 ‘오미크론형 대처’ 두 가지다. 오미크론의 정체를 신속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기에 수립 가능한 방역대책이었다.

식당 같은 곳에서 실내 모임을 못하다 보니, 지인들을 트레일에서 만나 함께 걷는 일이 많아졌다. 여름에는 골프장에서 만났다.

식당 같은 곳에서 실내 모임을 못하다 보니, 지인들을 트레일에서 만나 함께 걷는 일이 많아졌다. 여름에는 골프장에서 만났다.

작년 12월10일께 오미크론이 막 퍼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공무원으로 일하는 어느 후배한테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유명 대학이 있는 K시의 어느 식당에서 식사하던 손님 60여명이 오미크론에 동시에 감염되었다. 감염자 대다수가 대학생이다. 그들이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내일 아침 일찍, 그 문제를 논의하는 긴급 회의가 열린다.”

당시로서는 큰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식이었다. 방역패스를 가진 손님 모두가 감염되었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는 주말에 식당에서 갖기로 했던 송년모임 2개를 바로 취소했다.

그러나 K시 식당 소식은 공식 발표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불안에 떨까 봐, 내가 들었던 정도의 상세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은 것 같다. 오미크론이 감염력은 높지만 치명률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봤자, 일반 사람들은 급증하는 확진자 숫자를 보고 공포감에 떨게 마련이다. 그런 공포감은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의료진을 부담스럽게 만든다.

작년 12월20일쯤에 이르러, 오미크론을 기존 바이러스와 다르게 관리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방역당국은 “고위험군이 아니면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으러 오지 말라”고 발표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중증환자나 의료진, 요양원 종사자가 아니라면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나도 자가격리를 하면서 각자 알아서 회복하라는 얘기였다. 그것은 확진자 집계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다. 오미크론에 감염되어도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PCR 검사도 받지 못할뿐더러 감염 사실을 어디에 알릴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우리 집에서도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왔다. 작년 12월24일이었다. 친구 집을 다녀온 아이가 목이 조금 아프다고 했다. 친구 집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전갈을 받은 직후였다. 마침 하나 구해놓은 자가검사키트로 검사를 했더니 양성이었다. PCR 검사를 받으러 갈 수도 없고 감염 사실을 알릴 데도 없었다. 증상도 감기와 비슷한 경미한 수준이었다. 아이는 자기 방에서만 생활했고 화장실은 따로 사용했다. 음식은 문 앞에 가져다 주었다. 다른 식구들도 집 안에서 마스크를 썼고 잠을 잘 때도 벗지 않았다. 밥도 각자 먹었다.

1월3일까지 우리 가족은 집에서만 지냈다. 연말 대목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은 만큼 (옷)가게 문을 열지 않아도 별로 아쉬울 게 없었다. 어느 약국에서 자가검사키트를 판매한다는 정보를 듣고 비싼 가격(1개당 33캐나다달러, 약 3만1000원)에 4개를 사왔으나 더 이상 사용할 일은 없었다.

1월 들어서는 오미크론이 더 급속하게 번져나가는 듯이 보였다. 내 주변에서도 속속 등장했다. 어느 날 방역당국은 확진자가 1만6000명 나왔다고 발표했다. 가장 많은 숫자이기는 했으나 PCR 검사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나온 것이니, 실제 감염자는 10만명일지 20만명일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확진자 숫자가 아니었다. 방역당국은 시민들의 공포감만 불러일으키는 확진자 수 집계를 포기하는 대신, 위중증 환자 관리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사망자, 입원환자, 중환자 숫자와 더불어 확진자 숫자도 매일 발표하기는 했으나 사람들은 확진자 수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미크론이 급속하게 퍼지자 온타리오주 정부는 1월 들어 록다운 카드를 다시금 꺼내들었다. 이번에는 전면 봉쇄가 아닌 부분 봉쇄였다. 식당과 헬스클럽, 극장 등은 문을 닫았다(식당은 테이크아웃만 허용). 옷가게 같은 비필수 업종은 매장에 손님 50%만 입장하도록 했다. 이 같은 규제가 시작되자 2021년 말 중단되었던 연방정부의 재난지원금 프로그램이 다시 가동되었다. 연방정부는 전면이든 부분이든 록다운으로 규제를 받는 모든 자영업자와 실업자들에게 지원금을 주었다. 일상을 회복하기 전까지 나 같은 자영업자들은 일주일에 1인당 270캐나다달러(약 25만3000원)를 계속 받는다. 한 집에서 두 사람이 받으면 작지 않은 금액이다.

연방정부와는 별개로 온타리오주 정부는 아예 문을 닫게 한 식당과 헬스클럽 등에 업장의 규모에 따라 1만~2만캐나다달러(약 930만~1860만원)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2021년 두 차례에 이어 세 번째로 지급하는 주정부 지원금이다.

1월 말쯤 되자 바이러스는 퍼지는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예상보다는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방역당국의 적절한 ‘공포감 관리’ 덕에 오미크론이 아무리 확산해도 시민들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정작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올해 1월 들어 가파르게 상승한 물가였다.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자동차 가스비와 생필품 가격. 자동차 가스비는 전년 대비 31.7%나 올랐고 대형 슈퍼마켓에 가면 오르지 않은 것을 찾기가 어려웠다. 자동차 엔진오일을 교환하러 갔더니 10캐나다달러를 더 내라고 했다. 강아지 미용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월 인플레이션은 5.1%로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캐나다 통계청은 발표했다.

올 1월 들어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1월 인플레이션은 5.1%로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동차 가스비는 작년 대비 31.7%가 올랐다. 팬데믹 기간에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올 1월 들어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1월 인플레이션은 5.1%로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동차 가스비는 작년 대비 31.7%가 올랐다. 팬데믹 기간에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2020년 가을부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 주택시장은 올해 들어서는 ‘펄펄 끓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르는 추세여서 매물은 자취를 감추었다. 매물이 하나 나왔다 하면 ‘멀티 오퍼’(구입을 원하는 여러 사람이 각자 제시하는 가격 제안서)가 몰린다. 최근에는 토론토 북쪽 지역 작은 콘도(한국으로 말하자면 아파트)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64만9000캐나다달러에 나온 1베드룸 작은 콘도에 무려 35개나 되는 오퍼가 붙었다. 뜨거운 가격 경쟁을 통해 이 콘도는 90만캐나다달러에 거래되었다. ‘멀티 오퍼’와 시장에 나올 때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3월1일 캐나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예고했으나 그 조치가 부동산 열기를 냉각시킬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미크론으로 인한 사망자와 중증환자가 급속하게 줄어들자(토론토 옆 작은 도시 브램튼에서는 중환자 숫자가 팬데믹 이전보다 더 적다고 발표했다) 온타리오주 정부는 2월 초 방역 수준을 한 단계 낮춘 데 이어 3월1일 전면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방역패스도 사라진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하나만 빼고 모든 것이 팬데믹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다.

캐나다 연방정부도 최근 의미 있는 결정을 하나 내렸다. 캐나다에 입국하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했던 PCR 검사를 2월28일부터 면제하기로 했다. 이 결정은 캐나다가 일상을 회복했다는 것을 천명하는 가장 상징적인 조치다.

캐나다는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면 코로나19와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조처를 엄격하게 해온 편이다. 동시에 방역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 및 실업자에 대한 보상과 지원도 꾸준히 진행해왔다. 부스터샷 접종률도 서둘러 높였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도 엄격하게 적용했다. 시민들은 방역당국의 이런 지시를 잘 따랐다.

그 결과 3월1일 전면 개방이라는 봄 선물을 받게 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불거진 상처도 작지 않다. 백신 접종 의무화를 거부한 트럭 운전사들이 안티백서들과 손을 잡고 거칠게 항의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캐나다 수도 오타와가 한 달 동안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시위를 빨리 진압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연방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월19일 시위대를 진압했으나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우선 한 달 이상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온타리오주 정부는 오타와 자영업자들에게 1만~2만캐나다달러를 따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어렵고 더디기는 해도, 토론토에는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다. 이제 일주일만 기다리면 된다.



[다른 삶]‘겨울왕국’ 토론토에 찾아든 온기…더디긴해도 ‘봄’은 오고 있다

▶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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