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풀브라이트 코리아’ 한미교육위원단, 단장 일가의 ’종합비리세트’였다

김희진·정환보 기자
2017년 2월 남북하나재단과 한미교육위원단 관계자들이 ‘탈북 청년을 위한 풀브라이트 대학원 장학 프로그램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당시 한미교육위원단 단장이던 심모씨(왼쪽에서 네 번째)와 위원단에 장학관으로 근무 중이던 장남 전모씨가 이 협약식에 함께 참가했다. /남북하나재단 제공

2017년 2월 남북하나재단과 한미교육위원단 관계자들이 ‘탈북 청년을 위한 풀브라이트 대학원 장학 프로그램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당시 한미교육위원단 단장이던 심모씨(왼쪽에서 네 번째)와 위원단에 장학관으로 근무 중이던 장남 전모씨가 이 협약식에 함께 참가했다. /남북하나재단 제공

풀브라이트 장학생 선발과 프로그램 운영 등을 맡고 있는 한미교육위원단이 전직 단장 일가의 전횡과 비리로 얼룩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15년간 한미교육위원단장을 지낸 심모씨(84)가 아들인 사실을 숨기고 장남을 ‘장학관’으로 채용한 뒤 후임 단장직에 내정하는가 하면, 차남 소유의 건물을 ‘풀브라이트 장학생’ 숙소로 쓴다며 시세보다 높은 임대료를 위원단으로부터 받아온 사실이 확인됐다. 비리가 발각되자 장남은 관련 증거를 없애려다 적발돼 해고됐고, 심씨는 1977년부터 42년 동안 근무해 온 위원단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4인 가족 모두가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돼 선발 과정에 의혹이 제기되자 “1960년부터 운영 중인 공신력 있는 국제교육·교류 사업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며 “160여개 국가에서 운영 중인 장학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장학금 선발 등을 담당하는 한미교육위원단이 감시·관리의 사각지대에서 사실상 사유화되어 운영됐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29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이상훈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 심씨의 장남 전모씨(59)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한미교육위원단에서 2019년 7월 해고된 전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지만 잇따라 기각됐고, 이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지난 2월 2심도 1심과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1심 판결문에는 심씨와 전씨 등 한미교육위원단 단장 일가가 저지른 비위와 관련된 사실들이 낱낱이 적혀 있다. 1977년 행정처장으로 한미교육위원단에 입사한 심씨는 2004년 ‘44년 만의 한국인 단장’으로 주목받으며 취임한 뒤 단장직을 계속해서 맡아왔다. 그러던 중 미국 방위산업체 H사 대표 경력이 있는 아들을 2013년 장학관(Fulbright Grant Program Officer)으로 위원단에 채용했다. 장남 전씨는 입사 5년 만인 2018년 6월 이사회에서 차기 단장으로 내정됐는데 이때까지 이들의 모자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연히 이 관계를 알게 된 위원단의 한 이사는 곧바로 이 사실을 이사회에 통보했고 차기 단장 선임은 곧바로 취소됐다. 미국 국무부는 관계기관에 ‘친족등용금지’ 규정을 두고 있는데, 미 국무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는 한미교육위원단에도 이 조항이 적용된 것이다. 다만 전씨의 해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미교육위원단 등이 입주해 있는 서울 마포구 소재 풀브라이트 빌딩. /이홍근 기자

한미교육위원단 등이 입주해 있는 서울 마포구 소재 풀브라이트 빌딩. /이홍근 기자

1년 뒤인 2019년 7월에는 심씨의 횡령이 의심되는 정황이 이사회에 보고돼 실사가 이뤄졌다. 위원단이 한국에 유학오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에게 숙소를 제공하기 위해 임차한 건물이 알고 보니 심씨 차남 소유였고, 시세에 ‘웃돈’을 얹은 임대료를 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심씨가 본인 소유 아파트의 관련 경비를 위원단에서 처리하라고 한 사실 등도 추가로 발견됐다. 비위에 대한 진상조사가 필요했던 이사회는 단장 직무를 즉시 정지시키고 임직원의 사무실 출입을 금지한 뒤 출입문 열쇠를 교체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장남 전씨는 열쇠수리공을 불러 사무실에 무단침입한 뒤 모친의 업무용 컴퓨터 하드디스크 데이터를 복구 불가능하게 만드는 등 컴퓨터를 사실상 ‘바꿔치기’ 했다. 시설 담당 직원에게 미리 폐쇄회로(CC)TV를 꺼놓도록 하는 등 직원 다수를 ‘증거인멸’ 과정에 동원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모두 적발됐고 전씨는 무단침입 사흘 뒤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 통지 사유에는 주거침입·특수절도죄가 언급됐으며, 앞서 미 국무부 규정 위반 채용과 단장직 내정 취소 이후에도 단장급 연봉을 챙겨온 사실도 포함됐다. 전씨가 단장급으로 받은 연봉 추가분 5000여만원에 대해서는 현재 전씨 소유의 아파트에 가압류가 걸려 있는 상태다. 심 단장은 2019년 7월 직무가 정지됐다. 현재 한미교육위원단장은 심씨의 단장 직무정지 2개월 전 선임돼 2019년 8월 취임한 권모씨가 맡고 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 출신인 한 관계자는 “한미교육위원단 내부는 물론 유관 단체나 동문들 사이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이 알려졌지만 외교적인 문제로 커질 것을 우려했는지 다들 쉬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풀브라이트 동문회장 재직 시 두 자녀가 장학생으로 선정돼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김 후보자 측은 지난 27일 보도 해명자료를 통해 한미교육위원단과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에 대해 “미국 정부의 공신력 있는 국제교육·교류 사업”이라며 “160여개국에서 운영 중인 장학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신뢰”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러면서 “장학생 선발 과정은 외부 영향력이 철저히 차단된 구조로 후보자 가족은 절차와 기준에 따라 매우 공정하게 선발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의 부인과 두 자녀가 장학 혜택을 받았을 때 한미교육위원단장은 심씨였다. 2012년부터 4년간 풀브라이트 동문회장직을 연임한 김 후보자는 심 전 단장과 공동으로 2014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교육개혁 심포지엄’을, 2015년 외대 글로벌캠퍼스에서 ‘풀브라이트 동문인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 등 관계를 이어왔다. 김 후보자의 딸은 석사학위 논문에 “풀브라이트 장학을 받게 해 준 심○○ 단장에게 특히 감사드린다”고 적기도 했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