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손맛 물씬’ 빈티지 하우스 입주…팔자에 없던 천천히를 배웁니다

이숙명

이숙명의 ‘유유자적’

공사를 시작한 지 16개월 만에 본체만 완료한 채로, 수영장과 덱과 옥외공간은 미완인 상태에서 입주를 했다. 아직 지을 것도, 고칠 것도 많다.

공사를 시작한 지 16개월 만에 본체만 완료한 채로, 수영장과 덱과 옥외공간은 미완인 상태에서 입주를 했다. 아직 지을 것도, 고칠 것도 많다.

3주 전 이 칼럼에 스위치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을 토로했다. 스위치 얘기로 칼럼 하나를 채울 수 있다니, 그것만도 충분히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은 프로야구뿐 아니라 건축에도 해당되었다.

나의 값비싼 스위치를 설치하던 공사감독 겸 전기 기술자는 양방향 스위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등 하나를 두 군데서 켜고 끌 수 있도록 하는 스위치 말이다. 몇 가지 원인이 짐작되었다. 첫째, 배선이 잘못되었다. 하지만 공사감독이 시험용 스위치를 부착했을 때는 정상 작동을 했기 때문에 이 의심은 즉각 폐기했다. 둘째, 공사감독이 이 모델에 익숙지 않아 부착을 잘못했다. 그가 3주 동안 온갖 방법을 궁리했다니 이 의심은 보류하기로 했다. 셋째, 스위치가 고장이다. 하지만 미사용 스위치 아홉 개가 한꺼번에 고장일 리가? 넷째, 스위치를 잘못 샀다. 조명을 계획한 나의 동거인은 양방향 스위치를 샀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1년이나 지났으니 기억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영수증이 암호처럼 적혀있어 확실치 않다. 다섯째, 판매자가 물건을 잘못 주었다.

프랑스인 시공업자는 자신이 고용한 인력의 솜씨보다는 구매 착오 탓이기를 바랐다. 공사감독을 판매자에게 보내 스위치 교환을 부탁해보겠다고 했다. 판매자를 만나고 온 공사감독은 ‘구매한 지 오래되어서’ 교환을 거절당했다며 스위치를 다시 구매하라고 권했다. 공사기한을 어긴 시공업자에게 다시 원망이 피어올랐다. 이 프로젝트의 상황이 이렇다. 뭔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고, 모두가 자기 탓일 가능성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서로 남 탓을 하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결국은 내가 돈을 쓰게 된다.

문제의 스위치 부착은 마감 처리도 엉망이었지만 그 모습이 ‘이 집의 운명’이라고 마음먹기로 했다
이제 소동이 끝나나 했는데 이번엔 시공업자가 도망…똥손에 똥고집인 공사감독만 덩그러니 남아
우리는 “그땐 미안했어” “잘해봐요” 평화협정을 맺었고…건물 본체만 겨우 완성된 집에 일단 이사했다
어쩌겠나 30년 동안 살아갈 집인걸…안되는 일에 맘 졸일 시간에 대책을 찾고 열심히 벌어야지

공사감독은 이번에도 스위치를 ‘잘못 구매하면’ 안 되니까 자신이 함께 가게를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 동거인, 공사감독이 일제히 휴가를 내고 배를 타고 차를 빌려 발리의 전기용품 가게를 향한 1박2일짜리 여정에 올랐다. 절대 구매 착오일 리 없다고 확신하는 동거인은 먼저 산 스위치들도 몽땅 들고 나갔다.

사정이 이만저만해서 스위치를 새로 사러 왔다고 하자 전기용품 가게 주인은 노발대발했다. 그는 우리가 가져간 스위치를 들고 설명했다.

발리에서는 완제품을 받기 전에 비용을 전액 지불해선 안 된다는 게 불문율. 70%를 선지불했더니 70%만 만든 가구가 도착해버렸다.

발리에서는 완제품을 받기 전에 비용을 전액 지불해선 안 된다는 게 불문율. 70%를 선지불했더니 70%만 만든 가구가 도착해버렸다.

“여기 구멍이 한 개면 일방향, 두 개면 양방향 스위치입니다. 이건 분명 양방향 스위치고, 이 모델은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으며, 발리에서도 수백 개 리조트와 호텔들이 우리에게서 이 스위치를 구매해서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건을 잘못 건네지 않았어요! 저 사람이 교환해달라고 들렀을 때 나는 이 점을 충분히 설명했어요. 그런데 여전히 가게 탓을 하면서 당신들까지 끌고 오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이 스위치를 보세요. 저 사람이 엉뚱하게 이어놓은 선과 말도 안 되게 뚫어 놓은 구멍을 보라고요. 스위치를 새로 살 돈이면 전기 기술자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그냥 사람을 바꾸세요.”

나는 ‘스위치를 다시 사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공사가 거의 끝났고, 사람을 새로 사서 일정 잡고 기다릴 수가 없다, 이 공사감독과 다른 일도 남았다, 그에게 이 모델의 사용법을 설명해주시라’ 부탁했다. 하지만 전기용품 가게 주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저 멍청한 인간에겐 한마디도 안 할 겁니다. 그는 구제불능이에요. 차라리 내가 기술자를 소개해줄게요.”

멀쩡하게 구매한 스위치를 잘못 샀다고 의심받으면서 몇 주 동안 벽창호들을 상대한 동거인은 주인의 반응에 오히려 마음이 풀린 듯했다. 나는 좌불안석이었다. 나도 공사감독이 똥손과 똥고집을 겸비한 곤란한 인물인 건 안다. 최근에 나도 공사감독과 싸웠다. 하지만 뒤에 설명할 모종의 이유로 그와 평화롭게 지내기로 작정을 한 터다. 나는 공사감독이 듣건 말건 비난을 쏟아내는 가게 주인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사이 이 상황이 불편한 또 한 사람, 전기 가게의 젊은 직원이 공사감독을 구석으로 데려가 그 모델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3주를 끈 스위치 부착 작업은 끝이 났다. 아직 배선 몇 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고, 공사 초반 인부들이 고장난 수평계를 썼던 터라 모든 스위치와 플러그가 비뚤게 달렸고, 몇몇 플러그와 벽체 사이에 큰 틈이 있어서 개미들이 드나들지만 괜찮다. 한국 아파트 수준의 매끈한 마감은 포기한 지 오래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손맛 물씬 나는 빈티지 하우스’가 이 집의 운명이었다고 믿는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프랑스인 시공업자는 마침내 도망을 갔다. 그는 작년 12월에 프랑스로 휴가를 가려고 비행기를 예약해두었다가 맡아둔 공사들이 안 끝나서 4월로 연기를 한 터였다. 하지만 4월까지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내 집은 공사를 시작한 지 16개월째다. 규모 대비 놀라울 정도로 오래 걸린 공사다. 휴가를 가고 싶어 안달이 나있던 업자는 비용이 초과되어 자기 돈을 쓰고 있다며 계약에 포함되어 있던 일들을 “더 이상 공짜로 도와줄 수 없다”면서 거부했다. 나는 처음부터 “나도 건축업자의 딸로서 네가 손해보는 건 싫다. 후회하지 않을 견적을 달라”는 말을 했고, 그가 청구한 모든 비용을 초과금까지 지체 없이 지불했으며, 공사기간이 4배로 늘어나고 ‘유럽 수준’을 약속한 집이 ‘손맛 물씬 빈티지 하우스’가 되어도 항의하지 않았고, 원가 절감을 위한 시장조사와 자재 교체를 직접 수행하고 결정했으며, 그는 자기 돈을 썼다는 증거를 하나도 대지 못했다. 그러니 그 갑작스러운 누명에 화가 났다. 하지만 ‘이 행동이 앞으로 네 사업에 좋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 거’라는 경고만 하고 보냈다. 그가 생각보다 오래 버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발리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말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발리는 그럴듯한 명함과 예쁜 인스타그램만 있으면 뭐든 될 수 있는 곳이지.” 건축 쪽도 마찬가지다. 별 경험 없이 인도네시아에 와서 현란한 엑셀 함수가 가미된 견적서와 어학 능력으로 손쉽게 건축업자 타이틀을 획득한 그는 이번에 크게 데었다. 인부들만 잘 골라잡으면 저절로 일이 굴러갈 줄 알았는데 믿었던 공사감독이 돈을 들고 도망친 게 컸다. 막상 그 자신은 건축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그때부터는 속수무책이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그가 무능을 자각하고 좌절에 빠지는 대신 백인 남성다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버티면서 집을 80%까지는 지은 것이다. 자신의 일처리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고 모든 문제는 멍청한 인부들과 코로나19와 물류 대란 때문에 발생했으니 곧 상황이 나아질 것이고 건축주들도 자신을 은인으로 여길 거라는 믿음이 그를 버티게 했다. 어쩌면 전망과 디자인이 예뻐서 보는 손님마다 욕심 내는 내 집을 향후 모델하우스로 써먹겠다는 야심 때문에 버틴 걸 수도 있겠다. 그는 내게 디자인비 한 푼 주지 않고 벌써 같은 모델을 한 건 팔았고, 공사를 중단하고 프랑스로 떠난 후로도 무슨 양심인지 몰래 고객을 보내서 나도 아직 입주하지 않은 내 집 옥상에서 맥주 파티를 벌이게 했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뻔뻔함이지만 그 정도나 되니까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지 싶어 웃어넘겼다. 이제 나는 그가 비용을 다 받고 내팽개친 배관과 수영장 설비와 인력에 다시 돈을 쓰면서 값비싼 화장실 휴지를 사는 거라 생각한다. 누가 배설한 분뇨이건 간에 내 집에 묻어 있으면 휴지로 닦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공사 중단이 상호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소문을 내면 합의가 아닌 일방적 통보였다고 바로잡고, 그가 동업자나 고객으로 만들려고 작업 중이던 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리는 정도로만 속풀이를 하고 있다.

시공업자가 떠나던 날, 현장에는 스위치 때문에 서로 싸우고 서먹하던 나와 공사감독이 남았다. 나는 그에게 “불쌍한 니코. 당신도 버림받았네요”라고 말을 걸었다. 똥손에 똥고집이라 골치 아프지만 마음은 순한 공사감독은 갑자기 하소연을 시작했다. “사실 시공업자가 임금을 2주나 밀린 데다 스위치도 자기가 작업하라고 해놓고는 내 마음대로 저지른 척 거짓말을 하고 물품 조달도 제때 안 하면서 공사 늦는다고 내 탓하고 그래서 나도 화가 나 있는 상태였어. 걔가 자기 돈을 쓰긴 뭘 써. 우리 임금을 얼마나 후려쳤는데. 너한테는 그때 화내서 진심으로 미안해.” “괜찮아요. 어쨌든 당신은 이 엉망진창이 된 프로젝트에서 도망치지 않고 마무리를 하려고 애쓰고 있잖아요. 그 책임감을 존중해요. 이제 우리끼리 잘해봐요.” 우리 사이의 평화협정은 그렇게 체결되었다.

독자들이 오해는 말았으면 한다. 프랑스인과 일을 해서, 인도네시아여서, 외국에서 집을 짓느라 공사가 힘든 게 아니다. 며칠 전 나는 한국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는 상가를 꾸미려는 지인과 인테리어 업자를 연결해줬다가 일이 틀어지는 바람에 양쪽에서 욕을 먹었다며 속상해했다. 어디서나 공사는 힘들고 타인은 내 맘 같지 않다.

스위치를 끝으로 건물 본체 공사는 완료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내일 이사를 한다. 오늘 종일 이삿짐을 싸다가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주변이 어수선한 걸 못 참아서 이사를 하면 미리 가구와 소품까지 쇼핑을 해놓고, 첫날 밤을 새워서라도 짐을 정리하는 부류다. 하지만 이번엔 가구도 없고, 수영장과 덱과 옥외공간은 미완인 채로 이사를 해야 한다.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자니 재작년 누사프니다에서 나무 집을 지은 슬로바키아 친구가 말했다.

“집은 어차피 평생에 걸쳐 가꿔가는 거잖아. 나도 이제야 거실 타일을 까는걸.”

그러고 보니 그렇다. 이건 2년 계약 월세집이 아니라 30년 동안 내 집이다. ‘천천히 오랫동안’이라는 건 내 인생에 없던 방식이지만 이 집을 통해 배워보려 한다.

안 되는 일에 마음 졸일 시간에 대책을 모색하고, 돈을 아끼려 분쟁을 감수하는 대신 쓴 만큼 열심히 일해서 벌자고 다짐하면서.



[다른 삶]미완의 ‘손맛 물씬’ 빈티지 하우스 입주…팔자에 없던 천천히를 배웁니다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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