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발묶여 부러워한…도심 속 녹색 오아시스 ‘클라인가르텐’

신혜광·이은혜

신혜광·이은혜의‘ 베를린 육아일기’

4월 중순의 부활절 연휴를 기점으로 베를린의 낮은 무척이나 길어진다. 매년 실행을 하느니 마느니 많은 논란인 ‘서머타임’의 시작이 드디어 본격적인 봄을 알린다. 지난 몇 주 동안 이어진 화창한 날씨는 더더욱 야외활동을 재촉한다. 그리고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약속이나 한 듯 마트들은 마치 계절 과일처럼 ‘야외 그릴’과 관련된 제품들을 가득 진열한다. 먹거리, 야외용 가구, 캠핑용품들과 심지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장난감들까지, 마트에서 장을 보며 두리번거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이 그릴을 쓸 만한 야외 공간을 가지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삶]코로나로 발묶여 부러워한…도심 속 녹색 오아시스 ‘클라인가르텐’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물론 문제가 없다. 햇살 가득한 잔디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한편에 마련된 그늘에서 먹을 준비를 하며, 마당 이곳저곳에 부지런히 심어놓은 제철 과일과 채소를 열심히 즐기면 된다.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니 그들의 진정한 홈그라운드다. 아마도 마트의 주된 고객층은 이분들이리라. 굳이 마당이나 정원이 아니어도 테라스나 발코니만 있어도 된다. 거주 공간이 아닌 야외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바로 공공공원인데, 베를린시에서는 야외 그릴 사용이 허용되는 공원들이 제법 있다. 여름 해가 가장 길어지는 6월 중순부터 여름 내내 심심찮게 공원에서 여러 명이 그릴을 사용하며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심 속 녹색 오아시스인 ‘클라인가르텐’이 있다.

독일어로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은 ‘작은 정원’을 뜻한다. 일정 규모의 대지를 균일한 규격으로 나누어 여러 명의 개인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일종의 ‘개인 농장’이다. 한국의 주말농장과는 다르게 클라인가르텐은 도심 곳곳에 위치해 있어 해가 긴 여름 동안에는 퇴근 후 이곳에서 저녁을 즐기기도 한다. 꽤나 긴 역사를 자랑하는 개인 야외 정원을 뜻하는 이 개념은 독일 전체에 걸쳐 문화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베를린에만 2021년 1월 기준 대략 6만6000개, 736개의 조합이 2900㏊를 사용하고 있다니 그 합계 면적만으로도 큰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동네 산책 중 클라인가르텐을 처음 접하게 됐다. 처음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곳만의 묘한 분위기 때문에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동네 산책로와 입구가 이어져 있어 어느새인가 정원에 둘러싸이게 되는 진입 방식도 독특하고, 식재된 식물들로 가려지는 곳이 있기는 하나 시각적 차단이 일어나지 않아 거의 모든 정원을 산책로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독특하다. 철조망 등으로 가구별 구획이 되어 있어 각 정원들의 색깔들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걸 돌아보는 것이 산책의 또 다른 묘미다. 어떤 정원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멋진 솜씨로 가꿔져 있고, 어떤 정원은 정말 재배만을 위한 곳이다.

일정 규모의 대지를 균분해
여러 명의 개인이 공동 관리
해 긴 여름철 베를린 시민들은
퇴근 후 이곳에서 저녁 즐겨

거리 두기·재택근무 이어질 때
마스크 없이 햇빛 쬐는 영상 보며
가슴 깊이 ‘야외활동 결핍’ 느껴

지난 주 지인 정원에 초대 받아
마음껏 노는 아이들 보며 행복
우리 가족만의 야외공간 소망

적게는 10여가구, 많게는 수백 가구가 하나의 조합으로 운영되는데, 꽤나 섬세한 규칙들이 있다고 한다. 각 가구는 오두막, 정원, 텃밭을 3분의 1씩 골고루 조성해야 한다. 온실이나 연못, 어린이 놀이시설 등을 설치할 수는 있으나 땅을 파서 매입하는 형식은 금지되어 있다. 오두막은 목재로 지은 간이 건물 형식도 있으나 사람이 살아도 무방할 정도로 제대로 된 집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클라인가르텐 초기에는 정원을 가꾸고 잠시 휴식하는 용도로만 허용했기 때문에 오두막은 창고로만 썼다고 한다. 초반엔 상하수도 시설과 화장실, 전기도 없었다고 한다. 요즘은 오두막에 부엌이나 화장실, 작은 거실을 만들 수 있고 전기도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니 사실상 집과 분리된 제대로 된 ‘정원식 생활’을 꾸밀 수 있다.

클라인가르텐의 진가는 코로나19 초반에 빛났다. 모든 활동이 집 내부로 제한되었을 때, 야외활동에 대한 욕구를 어딘가로 분출하지 못해 그저 창밖만 바라보던 때, 우연히 접한 어느 유튜버의 영상에서 봤다. 클라인가르텐에 앉아 ‘마스크 없이’ 햇빛을 쬐는 한가로운 모습을.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부러움과 결핍이 느껴졌다. ‘하아, 좋겠다.’ 그 전까진 클라인가르텐을 그저 하나의 ‘취미 생활’로 인식했다. 시간 날 때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과 가까워지는 시간에 대한 만족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야외활동에 대한 욕구가 출구를 찾지 못하며 일어나는 갈등을 배경으로 자연스레 클라인가르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2년 전 봄, 사람들은 산책에 대해서도 첨예하게 의견을 달리했다. 심지어 스페인에서는 록다운 중 ‘동물’과 함께하는 산책을 허용하는 바람에 동물 모양의 풍선을 가지고 규정을 조롱하듯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누가 알았을까. 야외활동을 하는 것에 제한이 생기게 될 줄, 늘 하는 산책에 대해 다른 의견이 생기게 될 줄.

몇몇 직장 동료들은 코로나 초반에 베를린시 외곽,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로 이사하기도 했다(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서울을 감싸고 있는 경기도로 이동한 셈이다). 하염없이 재택근무와 거리 두기가 이어지는 탓도 있었지만, 이 기회에 아예 삶의 방식을 바꾼다며 대중교통도 잘 닿지 않는 외곽 지역의 허름한 집을 고쳐 쓰는 이들이 있었다.

도심 내에서는 일반 주택보다 건물의 0층(한국식으로 1층)에 위치해, 건물과 맞닿은 조그마한 외부 공간을 함께 쓸 수 있는 가르텐보눙(Gartenwohnung, 정원을 뜻하는 Garten과 집을 뜻하는 Wohnung의 합성어)에 대한 수요가 늘기도 했다. 이런 현상들을 시대를 특징하는 시간의 산물로 이해해야 할지,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 바꿔버린 새로운 삶의 형식에 대한 욕구로 이해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큰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 부족 탓에 클라인가르텐을 임차하기 위한 대기 시간은 수년을 상회한다고 한다. 하긴 도시 개발에 대한 압력이 점점 강해져만 가는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은 땅에 무언가를 짓는 것이 쉽지, 무언가 이미 지어진 땅을 아무것도 없는 ‘정원’으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클라인가르텐 신청에 특별한 제한이 없어 누구나 신청은 할 수 있으나 언제 답변이 올지는 모르는 모양새다. 물론 대부분의 복지제도가 그렇듯 장애인, 연금 수급자 등에게는 혜택이 있다고 한다. 또한 임차 기간에 제한이 없어 임차인 스스로 계약을 포기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개인 매매나 양도를 할 수는 없지만 임차인이 노령으로 정원을 가꾸지 못하게 되면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 누구라도 정원을 임차하면, 부득이한 상황이 되지 않는 한 놓지 않을 것 같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지인의 클라인가르텐으로 초대를 받았다. 다른 가족들도 초대되어 세 가정, 4명의 아이가 정원에서 아주 야무지게 놀았다. 매번 겉만 둘러보던 ‘오두막’에서 식사하고, 정원에서 아이들이 까르르 뛰어노는 소리를 들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초대해준 가족은 베를린 다른 지역의 정원을 이용하다가 재개발로 현재 위치로 왔다고 한다. 정원을 임차하는 과정이 집을 임차하는 과정과 많이 흡사하다고 했다. 최초 임차 당시의 정원과 밭, 오두막 상태 등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코로나 초반에 대대적으로 수리했다는 오두막의 고즈넉한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아이의 생일에 초대할 어린이집 친구들이 함께 놀 공간까지 생각했다는 꼼꼼함이 참 부러웠다. 다락처럼 생긴 공간은 아이들에게 딱이다. 아이들은 다락에서 엉켜 놀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실제 들여다보니, 우리 가족만의 클라인가르텐을 향한 소망이 더욱 커졌다.

지난달 아이의 생일날이 떠오른다. 막연하게 아이의 생일을 야외정원에서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야외 공간’. 그 공간 어딘가의 그늘에서 함께 앉아 떠드는 장면을 상상한다. 텃밭 한편에 야외 바비큐에 필요한 깻잎, 명이, 상추, 토마토 등을 키우는 것도 필수다. 가끔 담벼락에 사과나 배 등을 넣은 조그마한 바구니를 걸어두고 ‘가져가셔도 됩니다’라고 써둔 가구가 있다. 그분들처럼 스스로 소비하고 남은 열매를 나누는 것도, 그리고 그곳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것도 상상해본다.



[다른 삶]코로나로 발묶여 부러워한…도심 속 녹색 오아시스 ‘클라인가르텐’

▶신혜광·이은혜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인 3인 가족이다. 닭띠 아빠는 건축설계사무실에 다니고, 돼지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돼지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스페인, 버틸 수밖에 없었다>와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를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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