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산다는 건 무거운 책임을 견뎌내는 것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반려견 데뷔, 제주탠져린즈

작년 11월,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2개월령의 새끼 강아지 7마리에게 ‘반려견 데뷔 준비 중! 제주탠져린즈’라 이름 붙이고 우리의 작은 원룸으로 들였다. 갑작스러운 길거리캐스팅을 감행하며 ‘모두 한 달 안에 입양 보낸다’고 계획했다. 이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을 그나마 실현 가능한 범주로 끌어올리는 단서는 ‘대신 아무에게나 보내자’였다. 어디든 그 쓰레기더미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바로 보낼 심산이었다. 강아지 7마리를 얼른 보내야, 아직 쓰레기더미에 묶여있는 성견들도 구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물 속에서 놀던 강아지들을 씻기고 먹이며 그룹명에 맞게 ‘한라봉, 레드향, 황금향, 천혜향, 금귤, 풋귤, 영귤’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우당탕탕 합숙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당탕탕 귤엔터]반려견과 산다는 건 무거운 책임을 견뎌내는 것

맞춤 홍보와 서울 팬 미팅까지 거치며
시골 잡종 7마리의 가족 찾기는 성공했다
더딘 입양과 파양, 죄책감과 후회들…
좌충우돌 ‘견딤의 시간’을 쌓아가며
책임에 담겨진 의미를 생각한다
2기 연습생 그룹 ‘만다린즈’
그들에도 책임을 다해보려고 한다

그 천둥벌거숭이들은 우리의 원대한 계획을 알 턱이 없었으므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감금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고 마당에서처럼 아무 데나 배변을 했다. 배변패드 사용을 완전히 익히게 될 때까지 몇 주 동안 하루에 몇 번씩 이불을 세탁해야 했다. 회충은 뗀석기처럼 교과서에서만 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길에서 지낸 아이들에게는 아주 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천방지축 강아지들과의 시간이 쌓여가는 동안,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아무에게나’ 보내려고 했다니 말도 안 된다며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강아지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가족을 찾아줘야지. 매일 여러 번의 산책은 물론이고 집의 가장 안락한 곳을 기꺼이 내어주며 애정과 관심을 쏟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반려견 전속 계약서’까지 만들었다. 반려견은 ‘잘 먹고 잘 싸고 건강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의무만 가지지만, 입양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2회 이상의 반려견 산책을 보장해야 한다” “입양자는 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반려견의 품위 유지에 필요한 사회화 교육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등 10개가 넘는 의무사항이 있다고 명시한 계약서였다.

그렇게 의지에 불타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무게도, 견종도, 모색도 가지지 않은 이 강아지들을 까다로운 조건과 절차를 감수하면서까지 입양하려는 사람이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보다 커져있는 성장기의 강아지들을 보며 문득문득 불안이 엄습했지만, 불안함에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더 다양한 방법으로 연습생들의 장점을 부각하자고 마음먹곤 했다. 특히 아이들의 다양한 특징과 매력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을 했는데, 눈을 잘 바라보는 천혜향은 ‘소통의 영재’, 길쭉한 다리와 캐러멜색 털을 가진 채 껑충껑충 뛰는 레드향은 ‘아기사슴 밤비’ 등이었다. 각 멤버의 성격이 돋보일 수 있도록 MBTI를 활용하기도 하고, 이력서나 산책 ‘직캠’, 각종 콘셉트 화보 같은 것들로 장기와 매력이 잘 파악되도록 애썼다. 초반에 금귤, 풋귤이가 데뷔에 성공한 이후 한 달 넘게 입양 문의가 뚝 끊겼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도 관심이나 노출도가 적은 편은 아닌데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끼리 열심히 따져본 결과, 제주도가 육지 사람들에게 주는 심리적 거리감 때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이돌 콘셉트에 충실하게 ‘서울 팬 미팅을 개최’한다고 알린 뒤, 작은 경차에 켄넬 여섯 개를 테트리스처럼 쌓아 제주항에서 배를 탔다. 고흥항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우리의 여정이 마치 미국 독립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같다고 생각했지만, 지인들은 발리우드에 더 가깝다고 했다. 팬 미팅은 길거리에서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몇몇 사장님들이 하루 장사를 접고 팬 미팅 장소를 제공해주셨다. 그렇게 상경한 시골 잡종개들을 보러 말도 안 되게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었고 팬 미팅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황금향이 데뷔했고, 한라봉과 천혜향이 임시 보호처를 구했고 곧이어 가족을 찾아 데뷔에 성공했다. 서울 팬 미팅을 끝내고 나니 레드향과 영귤이만 남았고, 이제 고지가 코앞이라는 자신감에 차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당탕탕 귤엔터]반려견과 산다는 건 무거운 책임을 견뎌내는 것

하지만 그 뒤로도 몇 달 동안이나 레드향을 입양하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영귤이는 우여곡절 끝에 입양을 갔으나 사흘 만에 파양되어 돌아온 뒤로 입양 문의가 뚝 끊겼다. 한 달은커녕 반년이 다 되도록 입양을 보내지 못한 레드향과 영귤이를 볼 때마다 가족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를 놓친 것 같았고, 이 아이들의 빛나고 예쁜 시절을 망친 것만 같았다. 우리가 했던 많은 선택을 후회했고, 자책감이 켜켜이 쌓여갔다. 결과를 알고 다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소모하지 않았을 텐데 그것이 못내 아쉽다.

요즘엔 제주탠져린즈 입양 가족들이 알콩달콩 지내는 소식을 보는 게 새로운 취미생활로 자리 잡았다. 흐뭇한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멤버들의 가족이 대부분 초보 보호자이다보니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자꾸 산책 중에 주저앉고 걷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외부 소음에 짖어서 잠을 못 자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원래 땅에 이렇게 음식물이 많이 떨어져있나요?” 같은 질문 등을 하신다. 지난 초겨울 어느 날 마당에서 아이들을 마주치고 가족을 찾아주겠다는 순간의 결심이 이루어지는 데는 반년이 걸렸다. ‘열악한 환경에서 구조하자’는 순간의 선택 뒤로 얼마나 많은 지난한 과정을 책임져야 했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최근 제주탠져린즈 입양 가족들이 낯선 생명과 좌충우돌 적응해가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책임이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겨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제주탠져린즈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금배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새와 고양이를 보면 흥분했고, 목줄을 당겼으며, 불러도 오지 않았고 일하는 시간과 자는 시간 빼고는 놀아주었는데도 끝없이 사고를 쳤다. 그때마다 자주 울었고, 금배를 처음 산에서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결론은 항상 같았고, 그렇다면 방법은 시간을 잘 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들이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며 보내는지가 중요한 일들이. 우리도 금배를 만나기 전에는 반려견과 산다는 일을 삶 안에 산책 시간이 몇 번 추가되는 것 정도로 여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반려견과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 나라에 대한 기초적인 언어와 정보를 익히고 갔어도 막상 마주하는 모습은 다르고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각오한 것과 별개로 마주하는 현실은 상상과 다를 수밖에 없다. 굳이 다른 나라에 떨어져 사는 것과 비교하지 않아도, 지루한 책을 줄거리만 보아서 아는 것과 그 시간을 견디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책의 온전한 이야기는 그 시간을 견딘 사람만이 가져갈 수 있듯이 반려견과 사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체력적으로 심적으로 더 많은 것들이 요구되며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이 이어지고, 그 상태가 지속될 것 같은 불안감이 따라붙는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찾아오는, 섣부른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닌지 밀려오는 후회들. 타인은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못하는지 비교하게 되는 순간들. 그리고 책임지고 있는 생명에게 나의 미숙함으로 인해 잘 못해주고 있다는 죄책감들까지. 온전한 나의 선택이므로 누군가를 탓할 수 없다는 것과, 그러므로 도망갈 수도 없이 그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점이 책임이라는 말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매일의 불안과 매일의 숙제와 함께 나가 걸었다. 해답을 찾길 노력하면서 시간을 쌓아갔다. 제주탠져린즈를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동안 포기해왔던 금배와의 느긋한 시간, 친구들과의 약속이 떠오르거나 며칠이라도 푹 자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면 우리는 강아지 7마리를 처음 집에 데려오기로 결심하던 순간으로 되돌아가본다. 지금 너무 힘든데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이들을 그냥 두고 올까? 몇 번을 생각해도 그럴 순 없다는 결론이 난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선택으로 데려온 가족같은 동물을 함부로 버릴까? 그들이 특별히 악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022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마트에서 쇼핑하듯 동물을 살 수 있는 환경 때문에 가볍게 생각한 것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서’ 버리는 것이 클 것이다. 반려동물을 들인다는 것이 정서적 교감을 줄 것이라고만 알았지, 그 정서적 교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하고 에너지를 쏟아야하는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좌충우돌과 우당탕탕의 다른 말에 다름 아니지 않을까 한다. 좌충우돌의 과정을 잘 견디고 나면 그 과정이 수반되어야만 했던 순간이 보상처럼 온다. 금배의 눈빛만 보아도 뭘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순간이 그렇고, 금배가 어떤 낯선 곳에서도 자신이 보호받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편안히 쉬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말도 안 되는 원대한 계획이었던 반려견 전속계약의 의무사항을 기꺼이 환영하고, 다소 까다로운 절차와 과정이 가지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지지하는 제주탠져린즈의 가족들을 만나게 된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 책임을 다하는 것은 조금 눈물 나지만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쓰레기더미에서 구조한 성견들과 2기 연습생 그룹 제주만다린즈에 대해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역시 마음은 먹었지만 조금 눈물은 난다.



[우당탕탕 귤엔터]반려견과 산다는 건 무거운 책임을 견뎌내는 것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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