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음서제, 대입스펙(3)

“엘리트들의 ‘세습’ 한국·미국 닮은꼴"

유경선·강연주 기자

마코비츠 미 예일대 교수 진단

[현대판 음서제, 대입스펙③]“엘리트들의 ‘세습’ 한국·미국 닮은꼴"

대학 입시는 사회적 지위와 자본을 대물림하는 공공연한 수단이 됐다.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다. 계층이동의 주된 통로여야 할 교육 사다리가 일그러져 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저소득층 가구가 평균소득 가구로 이동하는 데 5세대(150년)가 걸린다고 분석한다.

교육이 부와 지위의 대물림 수단이라는 비판이 나올 때마다 한국 사회가 대처하는 패턴이 있다. 대학 입시에서 수시·정시 비중을 조정하거나 수면 위로 불거진 특정 사례를 수사·기소하며 이슈로 소비하는 식이다. 모두 대증요법이다. 경향신문은 [현대판 음서제, 대입스펙] 마지막 회에서 국내외 석학들과 입시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했다.

■‘능력주의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명문대 문턱 낮추고 문 넓혀야”

<엘리트 세습>의 저자인 대니얼 마코비츠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의 대입 현실이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봤다. ‘능력주의의 함정’(Meritocracy Trap)이 원제인 마코비츠 교수의 책은 2019년 미국에서 출간돼 여러 논쟁을 낳았다. 실력대로 경쟁해 결과를 받아들이자는 능력주의는 언뜻 보면 더없이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마코비츠 교수는 엘리트의 능력이 과대 측정돼 근로소득이라는 보상체계를 왜곡한다고 지적한다. 엘리트가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니 자녀의 ‘능력’에도 ‘세습’의 요소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를 회의하고 “민주주의적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일 오전(현지시간 1일 오후) 화상으로 만난 그는 “한국도 (미국처럼) 상당히 계층화된, 대단히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미국의 명문대 입학 경쟁은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2019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형 입시 비리 스캔들이 터졌다.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 출연한 배우 펠레시티 허프먼과 시트콤 <풀하우스>의 배우 로리 로플린 같은 할리우드 스타와 유명 CEO 등 학부모 33명이 자녀를 부정한 방법으로 명문대에 입학시켰다가 무더기로 기소됐다. 축구공 한 번 차본 적 없는 자녀를 예일대에 축구 특기자로 입학시키려고 입시 컨설턴트에게 120만 달러를 건넨 사례, 수만 달러를 주고 대리시험을 보게 한 사례 등이 드러났다.

2013년에는 대입 수험생 수지 리 와이스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이 화제를 모았다. ‘나를 거절한 모든 대학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에서 와이스는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을 위한 ‘스펙 경쟁’에 대해 “대학들은 ‘단지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하지만 리더십 캠프 6개, 과외활동 9개, 교내 스포츠팀 활동 3개를 하면서 SAT 점수도 높고 (이 모두를 도와줄) 엄마도 두 명이 있다면 쓸모 있는 충고일 수도 있겠다”고 꼬집었다. 이후 뉴욕포스트 기자가 된 와이스는 2019년 대입 부정 사건을 기사로 쓰기도 했다.

지난 2일 경향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는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 화상 화면 캡처

지난 2일 경향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는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 화상 화면 캡처

마코비츠 교수는 입시에서 부모의 능력에 기대는 ‘부모 찬스’는 명백한 부정이라고 했다. 그는 대입 부정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2019년 미국에서 벌어진 스캔들처럼 돈으로 스펙을 위조하는 범죄 유형, 동문 자녀 우대나 기여입학 유형, 부유층이 고가의 입시컨설팅이나 사립학교를 통해 자녀를 입학시키는 ‘능력주의’ 유형이 그것이다. 마코비츠 교수는 “한국도 대입을 위해 개인 교습을 시키고 있고 아주 고가이지만 (대입에) 효과적이라고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부정’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복잡한 질문”이라면서도 “부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부패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입시 스캔들 이후 미국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마코비츠 교수는 “미국에서는 대학들을 중심으로 동문 자녀 우대를 줄이거나 사립학교 졸업생들을 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폭넓게 벌어졌고, 장기적으로는 입학생 (출신) 구성과 교과과정을 다양화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고 소개했다.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도 그 일환이다. 마코비츠 교수는 이를 두고 “옳은 방향으로의 변화”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궁극적으로는 명문대가 ‘명문성’을 바탕으로 각종 자원을 독식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코비츠 교수는 “한국도 미국처럼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명문대의 정원이 너무 적은데, 이 경우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문대 입학정원을 늘려 나머지 대학과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버드·프린스턴·예일대의 입학 정원은 1950년대와 큰 차이가 없다”며 “국가 규모가 성장한만큼 정원이 늘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재직 중인 예일대를 예로 들었다. “미국은 부자 대학이 극도로 소수의 학생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투자합니다. 예일대 로스쿨은 학생이 600명인데 교수가 60명이에요. 방문교수까지 모두 합하면 교수 1명이 5명의 학생을 맡는 셈인데, 극도로 집적된 방식이에요. 대학이 더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마코비츠 교수는 “부유층이 자녀 교육에 일정 수준 이상 지출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독일 베를린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비를 내지 못하게 규제했는데, 뉴욕에서 4살 아이를 일년에 수만 달러가 드는 학교에 보내는 것과 대비된다”고 했다. 이어 “개방성과 평등이 아주 중요하다”며 “교육을 경쟁적으로 만들지 말고, 사람들을 배제하지 말고, 가능한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입 전수조사·입시비리조사팀 현실성 ‘의문’…“대학 입시계획 사전검증을”

한국에서는 ‘대입 전수조사’가 뜨거운 이슈였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가 대입에서 ‘부모 찬스’를 쓴 사실이 알려진 뒤 고위공직자 자녀의 입시를 전수 조사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입시 전수조사’ 주장은 지난달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 인사청문 정국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의 호화 스펙쌓기 논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아빠 찬스’ 의혹이 계기가 됐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전국 대학 교수 미성년 자녀 공저자 논문, 교수 부모가 제공한 인턴과 체험활동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수조사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교육부는 지난 4월 ‘미성년 공저자 연구물 검증결과’를 통해 2007~2018년 발표된 논문을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지만 대부분 대학 자체 조사에 의존해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정이 확인된 연구물 저자가 해외대학에 진학한 경우에는 부정 사실을 해당 대학에 알리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입시비리 암행어사제’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교육부는 입시비리조사팀을 신설해 이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교육부가 행정안전부에 요청한 입시비리조사팀 정원은 6명 규모로 알려졌다. 이 정도 인원으로 전국 381개 대학과 2375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고도로 발달한 입시 비리를 사후적으로 적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명박·문재인 정부에서 정부의 교육정책을 심의·자문한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입시 전수조사’와 입시비리전담팀 신설 모두 사후적인 대처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5일 “대학이 입시비리를 저지르겠다고 작정을 하면 감사관들이 나중에 가서도 절대 찾을 수가 없다”며 “입시비리는 기술적인 영역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서류상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는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신 ‘대입공정성위원회’ 모델을 제안했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공약한 모델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수시와 정시 중 어떤 것이 더 공정한지 싸워봤자 생산적이지도 않고 해답도 나오지 않는다”며 “대입 전문가들을 참여시킨 독립기구를 만들어 대입 기본계획과 각 대학 모집요강이 학생을 공정하게 선발할 수 있게 설계되었는지 검증하고, 매년 입시 이후 대입 백서를 발간하는 예방적 조처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년 입시철에는 ‘어느 대학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이 소문을 검증하고, 각 대학의 모집요강을 검증해 불공정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집어내고 개정을 권고하는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다”며 “대학의 자율권이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국가의 눈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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