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이상 머물러도 “괜찮다”…발암물질 오염토양 인근엔 푸드트럭

이홍근·강연주 기자

‘졸속 개방 논란’ 용산공원 가보니

서울 용산공원의 잔디밭이 지난 12일 곳곳이 벗겨져 오염된 토양이 드러나 있다. 바로 옆에는 푸드트럭이 설치돼 있다. 이홍근 기자

서울 용산공원의 잔디밭이 지난 12일 곳곳이 벗겨져 오염된 토양이 드러나 있다. 바로 옆에는 푸드트럭이 설치돼 있다. 이홍근 기자

직원들 “안전 문제 얘기 못 들어” 이용객 체류 관리 손 놔
정부 약속과 달리 ‘오염토양 피복’ 안 돼 곳곳 노출 ‘불안’

지난 12일 오전 10시36분쯤 기자가 주한미군 반환부지에 조성된 서울 용산공원에 입장하면서 ‘2시간 안에 나와야 하느냐’고 묻자 직원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입구 앞 종합안내소에 근무하는 다른 직원도 “오후 5시 전에만 나오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통 2시간 안에 관광이 끝나는데, 설혹 2시간을 넘겨도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덧붙였다. ‘주 3회, 하루 2시간 이용’으로 체류시간을 제한하겠다고 밝힌 정부 방침과 어긋난다.

정부가 지난 10일부터 용산공원을 시범 개방하면서 약속한 ‘위해성 저감조치’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용객들의 체류시간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았다. 환경부 조사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토양은 제대로 피복되지 않은 채 노출돼 있었다. 오염된 토양 바로 옆에선 푸드트럭과 수돗물 음용 체험 부스를 운용 중이었다.

공원 측은 입장 시 출입증에 달린 바코드로 입장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나 공원을 나갈 때는 바코드를 찍는 절차가 생략됐다. 이용객들의 체류시간을 별도로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 2시간으로 체류시간을 제한한다는 안내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체류시간 제한은 발암물질 검출 논란이 일자 정부가 내세운 대표적인 안전조치다. 정부는 용산공원이 공원 조성에 필요한 안전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체류시간만 지키면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반박해왔다. 뒤집어 말하면, 체류시간을 초과하면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의 설명이 그랬다.

용산공원에서 일하는 관리자들도 체류시간 제한과 관련해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공원 내 시설물을 관리하는 한 직원은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고 시간 제한은 보안 문제 때문으로 들었다”며 “2시간을 넘어서 체류해도 검사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공원 내부를 안내하는 직원들은 보통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일한다. 직무에 따라 오후 7시까지 머무르는 직원도 있다. 그럼에도 기자가 만난 다수의 직원들은 하루 2시간 넘게 체류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정부는 토양을 정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니 일단은 오염된 토양을 잔디와 보도블록, 아스팔트 등으로 덮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잔디 곳곳이 벗겨져 토양이 드러난 상태였고, 바람이 불면 토양 일부가 흩날렸다. 기자와 동행한 최영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피복을 위해 새로 잔디나 아스팔트를 깐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면서 “일부 새로 깐 잔디판도 판과 판 사이에 틈이 있다. 햇빛이 내리쬐는 구간이 많은데, 땅 속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오염물질이 기화돼 (땅 위로) 오염물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범 개방 중인 부지는 장군숙소 일대(사우스포스트 A4b·A4f 구역)와 그 주변(A4c 구역), 야구장(A4d 구역), 스포츠필드(A1·A2 구역)인데, 이 지역 전체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야구장에서는 발암물질인 비소가 234.86㎎/㎏으로 공원 조성 기준치의 9.4배 검출됐다. 석유계 총탄화수소도 4436㎎/㎏으로 기준치의 8.9배나 나왔다. 장군숙소 일대와 그 주변에서도 석유계 총탄화수소와 크실렌이 검출됐고, 스포츠필드에서는 납과 수은이 각각 기준치의 5.2배와 3배 검출됐다.

이렇게 오염된 토양이 노출된 곳 인근에 이용객들이 자주 찾는 시설이 설치돼 있다. 푸드트럭은 야구장 건너편에, 물 맛 블라인드 테스트 부스는 장군숙소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최 활동가는 “국민 안전을 우선했다면 시범 개방을 결정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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