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차’가 쏘아올린 정치 풍자 논쟁 “풍자의 정치적 의도가 문제? 말이 안 된다”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고교부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고교부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문화체육관광부가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 만화 ‘윤석열차’에 금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경고 조처를 내리면서 작품을 둘러싼 논란이 ‘표현의 자유 탄압’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권력을 비판하는 ‘풍자’와 약자성을 비난의 소재로 삼는 ‘비하’는 구분돼야 한다면서 풍자는 폭넓게 용인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석열차’는 부천시 소속 재단법인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문 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고등학생이 그린 이 그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한 기차를 부인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여성이 기관차에서 조종하는 모습과 뒤이은 열차에 법복을 입고 칼을 든 사람들이 탄 모습이 담겨 있다. 열차 앞 선로에서 달리는 기차에 놀라 달아나는 시민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작품은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3일까지 한국만화박물관 2층 도서관 로비에 전시됐으며, 지난 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논란은 문체부가 주최 측에 엄중 경고를 비롯해 선정 과정 조사에 나서겠다 밝히면서 촉발됐다. 사단법인 웹툰협회는 성명을 내고 “문체부는 ‘사회적 물의’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를 핑계 삼아 노골적으로 정부 예산 102억원 운운하며 헌법의 기본권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0년 대학강사 박모씨가 G20 정상회의 홍보물에 그린 쥐 그림.

2010년 대학강사 박모씨가 G20 정상회의 홍보물에 그린 쥐 그림.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를 소재로 삼은 그림이 논란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당시 대학강사 박모씨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홍보물에 쥐를 그려넣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풍자했다.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검거된 박씨에게 경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과잉 수사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에는 표창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전시회에 박근혜 대통령의 나체 풍자 그림인 ‘더러운 잠’이 전시돼 논란이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기에도 풍자 포스터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대학생 김모씨는 2019년 문재인 정부를 북한에 빗대고, 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절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포스터를 충남 단국대학교 내에 부착했다. 김씨는 건조물침입죄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지난 대선 국면 때도 풍자 그림은 ‘뜨거운 감자’였다.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 한 서점 벽화에 김건희 여사를 비방한 이른바 ‘쥴리 벽화’가 그려져 논란이 됐다.

‘쥴리 벽화’ 논란이 있었던 서울 종로구 한 중고서점 외벽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벽화가 등장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쥴리 벽화’ 논란이 있었던 서울 종로구 한 중고서점 외벽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벽화가 등장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 논쟁에 앞서 풍자와 비하를 구분하는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5일 “풍자는 기본적으로 강자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비하는 상대의 약자성을 대상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풍자는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으로 사람들의 사고의 폭을 확장하는 여지를 주는 행위”라고 말했다.

권창호 웹툰협회 사무국장도 “박근혜 대통령 나체 그림은 성별, 인종 등 태생적 정체성을 가지고 수치스러움을 주는 비난에 가까웠다”면서 “반대로 ‘윤석열차’의 경우엔 명확한 패러디이자 풍자라고 할 수 있다. 열차 앞에 놀라서 뛰어가는 4명의 시민을 자세히 보면 노인, 청소년, 군인, 여성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예산 삭감 등으로 피해를 본 집단을 대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사무국장은 ‘카툰’ 장르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카툰의 사전적 정의에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한 컷짜리 만화’라는 뜻이 담겨 있다”며 “문체부가 ‘정치적 의도’를 문제 삼고 있지만 카툰 장르를 논하면서 정치적 내용을 배제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소년의 정치 표현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문체부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치 풍자 경연대회를 후원하고 있었다”며 “문제는 이로 인해 논란이 일자 역으로 (창작자를) 공격한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 문제를 떠나 정부 실패, 즉 문체부의 문제”라고 했다.

풍자물을 정쟁거리로 삼는 정치권의 행태가 건강한 시사 풍자 문화를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사회가 정치 풍자 콘텐츠에 특히 더 민감한 특성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문제는 정치권이다. 진영 논리가 강화되면서 정치권에서 풍자를 놓고 싸움을 반복하고 있고, 이런 이유로 어느 순간 한국 사회에서 시사 풍자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풍자는 기본권에 대한 문제로 진영 논리를 초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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