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계 “생업까지 멈추고 애도하라 하나”…학교·요식업 ‘애도 강요 공문’에 불만

이유진·권정혁 기자

행사 취소 등 일괄 지침에 “공연도 애도 방식일 수 있어” 지적

윤 대통령 출근길 문답 중단에 “애도 핑계로 책임 회피하나”

정부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오는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지자체·공기업 등이 각종 지침에 따라 일괄적인 행동양식을 권고하고 나서자 “애도 방식까지 강요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나 관공서는 이 기간 예정됐던 행사와 공연 등을 일괄 취소했고, 행정안전부는 ‘글씨 없는 검은색 리본을 착용하라’는 공문을 각 기관에 하달했다.

정부 주도의 ‘애도기간’ 운영 방식에 가장 먼저 비판이 나온 곳은 공연예술계다. 싱어송라이터 ‘생각의 여름’(본명 박종현)은 지난달 31일 트위터에서 “공연이 업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며 “이번주에 하기로 한 두 공연의 기획자들께서 공연을 진행할지, 연기할지에 대하여 정중히 여쭈어 오셨다. 고민을 나눈 끝에 예정대로 진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기관이 보기에는 예술일이 유흥, 여흥의 동의어인가 보다”며 “관에서 예술 관련 행사들(만)을 애도라는 이름으로 일괄적으로 닫는 것을 보고, 주어진 연행을 더더욱 예정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작곡가 겸 DJ 래피도 1일 페이스북에 이번 참사 피해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궁금하다. 왜 유독 공연예술가들만 일상을 멈추고 애도를 해야 할까. 셀 수 없이 많은 직업이 있는데 오직 하나의 직종에만 ‘생업 포기 강제 애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어떤 보상도, 약속도 없이 생계를 접고 애도를 해야 하는 단 하나의 직종. 공연예술가는 최소한 생계라도 이어가며 애도를 하면 안 될까”라고 썼다.

요식업계와 교육계에서도 행정당국의 지침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시가 강남구청, 용산구청, 영등포구청 등을 통해 배포한 ‘이태원 핼러윈데이 사고 관련 식품접객업소 안전관리 강화 요청’ 공문이 논란이 됐다. 이 공문에는 참사 발생에 따라 국가애도기간 내 행사, 회의를 모두 취소하고 참사 대응에 행정력을 집중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핼러윈 기간까지 자발적 영업 중단 및 특별행사 자제를 권고드린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강남구에서 식당을 하는 최모씨(54)는 “책임질 사람들은 나몰라라 하고 애먼 사람들에게 애도를 강요한다”고 말했다. 일부 교육청이 교직원을 대상으로 검은 리본을 패용하라는 공지문을 내린 것에 대해서도 “학생들에게 참사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등을 먼저 논의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실이 국가애도기간 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직장인 최모씨(31)는 “추모는 추모이고,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책임 규명에 적극 나서는 건 다른 문제 아니냐”며 “애도를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행안부가 지난달 30일 합동분향소를 마련한 각 지자체에 ‘피해자’ 대신 ‘사고 사망자’라는 표현을 쓰도록 권고한 데 대해선 “참사에 대해 정부가 얼마만큼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관리 책임을 묻는 걸 차단하려는 목적이 있다”며 “최대한 정치적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라고 봐야 한다. 추모를 엄숙하게 하면 비판도 못할 것이란 생각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박순철 생명안전 시민넷 활동가는 “재난참사가 발생했을 때 국가나 지자체가 할 일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애도할 수 있게 편의를 제공하는 일”이라며 “그와 함께 피해자 지원, 실질적 원인 규명, 제도 개선 등에 대한 점검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현재 정부가 취하는 방식을 보면 추모에 있어 우선순위가 바뀐 듯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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