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주택 살이 16년이면 맥가이버 흉내라도 낸다

성우제

성우제의 ‘경계인’

언젠가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서울에는 있으나 토론토에는 없는 것 중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아내는 ‘이마트’ 같은 종합쇼핑센터라고 했다. 토론토에도 대형 쇼핑몰과 식품점, 한국식품점이 있지만 서울에서 누리던 ‘종합적인 편의성’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나 또한 한 가지를 쉽게 꼽을 수 있었다. 서울 살 적에 경험했던 아파트 ‘영선반’의 서비스이다. 우리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영선반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사소한 문제라도 연락만 하면 금방 와주었다. 한나절을 넘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직원들은 손재주가 좋았다. 빨리 고치고 수리비도 거의 받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맥가이버’(1980년대 미국 드라마 주인공)를 떠올렸다.

<b>라쿤이 뜯은 지붕쯤은‘셀프 수리’</b> 몇년 전에 라쿤이 지붕을 두 번이나 뜯어내는 바람에 집안으로 빗물이 샜다. 처음에는 업자에게 맡겼으나 두번째는 내가 직접 올라가서 수리를 했다. 토론토의 주택에 살면 나처럼 손재주 없는 사람도 나름 ‘핸디맨’이 될 수밖에 없다.

라쿤이 뜯은 지붕쯤은‘셀프 수리’ 몇년 전에 라쿤이 지붕을 두 번이나 뜯어내는 바람에 집안으로 빗물이 샜다. 처음에는 업자에게 맡겼으나 두번째는 내가 직접 올라가서 수리를 했다. 토론토의 주택에 살면 나처럼 손재주 없는 사람도 나름 ‘핸디맨’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집 마련을 한다고 하면 서울에서는 아파트를 먼저 떠올리지만, 토론토에서는 주로 ‘주택’을 의미한다. 물론 이곳에도 아파트(개인이 소유한 아파트를 ‘콘도’라고 부른다)가 있으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내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 대다수는 주택을 선택한다. 집값 상승률만 따져도 주택이 콘도에 비해 여러모로 유리하다.

서울에서 집을 처음 살 적에 아파트를 선택한 것처럼, 나도 토론토에서는 별 고민 없이 주택을 구입했다. 그런데 내가 주인이 되어 주택에 처음 살고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서울의 아파트에서 영선반 서비스를 받고 살던 나에게는 크고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들이었다. 더 큰 문제는 주택에 사는 한 그런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꼭 해야 할 일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얼마 전에 나는 열흘에 걸쳐 지하 화장실의 막힌 하수구와 말 그대로 씨름을 했다.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리면 바로 옆에 있는 배수구를 통해 오물이 역류해 올라왔다. 변기 물은 잘 빠지니 변기 고장은 아니었다. 하수구 관이 막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부엌 싱크대나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이 잘 내려가지 않을 경우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베이킹파우더와 식초를 섞어 만든 거품을 들이붓고, 이어서 뜨거운 물을 쏟아부으면 잘 뚫린다.

이번에도 그렇게 했더니 처음에는 뚫린 듯하다가 다음날이면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었다. 토론토에서 내가 속한 ‘지인 카톡방’에서 조언을 구했다. 어느 친구가 “드레인 스네이크를 살살 돌려서 넣어보라”고 했다. 드레인 스네이크? 나로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도구였다. 하수구의 막힌 곳을 뚫는 뱀처럼 생긴 긴 스프링줄이다.

친구에게 그것을 빌려서 ‘드레인 스네이킹’을 했다. 몇 시간 동안 작업했으나 유튜브에서 본 것과는 달리 스프링줄에 딸려 나오는 것이 없었다. 관이 막혔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영선반이나 전문가를 불러 신속하게 해결할 문제를 열흘씩이나 붙들고 끙끙거린 이유가 있다. 사람을 부르면 일단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이 아니라 진단하는 것만으로 적잖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겁나는 것은 비용뿐만이 아니다. 사람을 잘못 만나면 돈만 들고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겨날 수도 있다. 토론토 이민자라면 이런 유의 문제로 한두 번씩은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결국 내 손으로 해결할 수가 없으니, 이번에는 전문가를 수소문해야 했다. 평판이 중요하고, 누구의 소개를 받았다는 ‘레퍼런스’도 꼭 필요하다. 두 가지가 충족되면 마음고생할 확률은 크게 줄어든다. 지인 한 사람이 말했다. “어떤 회사에 의뢰했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돈을 많이 들였는데, 1년 만에 같은 문제가 또 생겨났다.” 그이는 다시 만난 다른 전문가 연락처를 주었다. “나한테 소개받았다고 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연락했더니 전문가는 사흘 뒤에나 올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면 빠른 편이다. 약속한 날짜에 건장한 백인 청년이 왔다. 전문가는 전문가였다. 그는 내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30분 만에 작업을 끝냈다. 일 처리 하나만큼은 서울의 영선반 같았다. 비용은 350캐나다달러(약 36만3000원)였다. 비용도 비교적 적게 들었지만 그보다 문제를 단번에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토론토의 주택에 살다 보면 서울 아파트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문제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꽤 많다. 사람을 부르기가 여러모로 어려우니, 집주인이라면 누구나 맥가이버 흉내라도 내게 되어 있다. 물론 수리뿐만 아니라 집을 꾸미고 관리하는 재주꾼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창고 같은 지하실을 직접 생활공간으로 만들고 뒷마당에 덱과 수영장을 만든 사람도 보았다). 그러나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서울 아파트처럼 ‘영선반’ 없는
토론토선 골치 아픈 일들이 많다
이를테면 배수구 역류·변기 고장…

문제 진단 비용만해도 적지 않아
손수 해결 시도해보다가 안 될 땐
‘지인 인증’ 받은 전문가 찾기 필수

이젠 1년에 한 두번씩 지붕 오르며
난방기 수리·환풍기 교체도 ‘거뜬’
하수구 위협하는 나무도 직접 제거

예상 못한 문제들 처리해 나가며
‘뒷마당 바베큐’ 로망은 사그라들고
해야할 일들의 괴로움이 남았다

<b>낙엽, 볼때는 참 예쁜데… </b>주택에 살면 해마다 늦가을에 월동준비를 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치우는 일이다.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치워야 하는데, 눈 치우기와 더불어 가장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다.

낙엽, 볼때는 참 예쁜데… 주택에 살면 해마다 늦가을에 월동준비를 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치우는 일이다.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치워야 하는데, 눈 치우기와 더불어 가장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다.

16년 넘게 주택에 사는 동안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익혀가며 내가 직접 해결한 일도 적지 않다. 화장실 변기 고장쯤은 이제 문제 축에도 끼지 못한다. 몇 년 전에는 지붕 위에 올라간 적도 있다. 지붕에 구멍이 뚫려 집안으로 빗물이 떨어져 내렸다. 한국 돈으로 500만원쯤 들여 지붕을 교체한 지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지붕 공사를 했던 업자를 불렀더니 “라쿤이 지붕을 뜯어내는 바람에 생긴 문제여서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했다. 별수 없이 그에게 수리를 맡겼다. 또 300달러가 들었다. 그것도 저렴하게 해준 것이라며 생색을 냈다.

6개월쯤 지나서 같은 문제가 또 생겨났다. 지난번에 업자가 수리하는 것을 눈여겨본 터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라쿤이 지붕으로 올라가는 길부터 차단했다. 사다리를 대고 높이 올라가 지붕 곁에 있는 나뭇가지를 모두 잘라냈다. 그러고는 지붕을 때우는 재료를 사다가 라쿤이 뜯어낸 곳을 찾아 봉합했다. 들인 비용이라고는 재료비 30달러가 전부였다. 지난번 업자에게 지불했던 것의 딱 10분의 1이었다. 처음 지붕에 올라갈 때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이후에는 지붕 상태도 살피고 홈통에 쌓인 낙엽을 걷어내느라 1년에 한두 번씩은 지붕에 올라간다. 지붕 올라가는 일도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제법 익숙해졌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도, 나 같은 사람이 주택에 살면서 겪는 괴로움은 부지기수이다. 어릴 적부터 집수리와 관리하는 방법을 아버지한테서 배우며 자랐거나 이런 일을 취미로 여기는 사람들이야 괜찮겠지만,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나로서는 주택을 관리하며 사는 일이 고역에 가깝다.

재작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뒷마당 나무들이 크게 자라는 바람에 문제가 생겨났다. 무엇보다 가을이면 낙엽이 너무 많았다. 나무뿌리가 하수도를 뚫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무들이 더 자라기 전에 잘라내야 했다(지름이 30㎝가 넘으면 자를 때 시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람을 부르면 감당하기 어려운 큰돈이 들었다. 톱질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내가 전동 톱을 구입하고 뒷마당의 나무를 두 그루만 남기고 모두 잘랐다. 잘라낸 나무는 모두 여섯 그루였다. 마침 토론토는 코로나19로 인해 록다운 중이어서 시간이 많았다.

토론토의 주택에 살기 시작하면서 나로서는 처음으로 했던 일은 이 밖에도 많다. 물이 새는 난방기를 내 손으로 수리했고 고장 난 환풍기도 여럿 교체했다. 그래도 이런 일은 어쩌다 생겨나는 작은 일에 속한다. 주택에 살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더 괴로운 일은 따로 있다. 물론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취미활동이나 놀이가 될 수 있겠으나, 봄부터 가을까지 앞뒤 마당 잔디를 관리하는 일은 나 같은 사람에게 노동에 속한다. 1년에 두세 차례 비료를 뿌려야 하고, 물도 자주 줘야 한다. 잔디가 자라면 사람 이발하듯이 정기적으로 깎아줘야 한다. 민들레나 토끼풀 같은 질긴 잡초는 눈에 보이는 대로 뽑아야 한다. 두어 달만 관리하지 않으면 잔디 마당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어버린다. 이쯤 되면 이웃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눈총을 넘어서면 시청에 민원을 넣는 일이 생겨날 수도 있다.

늦가을이 되면 가장 어렵고 힘겨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낙엽을 치우는 일이다. 눈이 오기 전에 낙엽을 쓸어 대형 종이봉투에 담아 버리는 일을 적어도 두 번 이상은 해야 한다. 낙엽을 치우고, 자동차 타이어를 겨울용으로 바꾸는 것은 토론토살이를 하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월동준비이다. 월동준비를 단단히 한다고 해서 겨울이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토론토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온다. 마당에 쌓인 눈을 자주 치워야 하는데, 이 또한 중노동이다. 눈 치우는 일은 낙엽 치우기와 더불어 가장 고되고 힘든 일에 속한다. 눈과 낙엽을 치우는 일만큼은 온 가족이 달라붙어야 한다. 혼자 했다가는 앓아눕기 십상이다. 돈을 들여 업자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으나, 힘이 빠진 다음에야 생각해볼 일이다.

주택에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주택에 사는 삶이 참 근사해 보였다. 여름이면 뒷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맥주잔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부러운 풍경이었다. 주택에 살기 전에는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꿈을 꾸게 마련이다.

그런데 막상 주택에 살아보니, 괴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택에서 해야 할 일들이 힘에 부치기 시작하면 콘도로 이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 사정이 이러하니, 토론토에 살면서 서울 아파트의 영선반이 가장 아쉽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서비스로 말하자면, 서울은 토론토에 비해 천국이다. 그런 신속·저렴·정확한 서비스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말이다. 캐나다살이는 나 같은 한국 남자를 억지춘향 맥가이버로 만든다.



[다른 삶]캐나다 주택 살이 16년이면 맥가이버 흉내라도 낸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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