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축제의 장이자 놀이동산이 된 광장…마스크 벗고 가을 만끽

신혜광·이은혜

신혜광·이은혜의 ‘베를린 육아일기’

기온은 쌀쌀해지고 낙엽이 거리를 뒤덮고 옷차림은 두꺼워지며 해는 짧아졌다. 베를린에도 가을이 왔다.

베를린은 항상 겨울이 오기 전 ‘낙엽 대청소’를 한다. 나뭇잎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냥 뒀다가 겨울이 오기 전 한번에 청소한다. 그래서 10월, 11월 베를린의 길거리는 비에 겹겹이 젖은 두툼한 낙엽들과 낮고 길게 드리운 햇살이 독특한 가을 풍경을 연출한다. 각종 마트에서는 수확의 계절을 알리는 제철 채소와 과일이 많이 판매된다. 그중 낙엽 색을 닮은 여러 모양의 호박은 가을 분위기를 한껏 더한다.

[다른 삶]황금빛 축제의 장이자 놀이동산이 된 광장…마스크 벗고 가을 만끽

긴 여름을 수월하게 넘길 수 있게 했던 서머타임도 종교개혁기념일인 10월31일 즈음 끝난다. 한국도 서머타임을 도입하려다 여러 가지 논란으로 철회됐다고 알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도 실효성을 두고 여러 논란이 있지만, 여름과 겨울의 극적인 일조시간 차이를 느끼며 살다 보니 아직은 서머타임이 절실하다. 특히 밤 10시까지 환한 한여름의 긴 여름밤, 베를린보다 여름 해가 긴 지역을 생각하면 서머타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다만 한국의 가족과 통화할 때마다 시차가 7시간인지, 8시간인지 헷갈릴 뿐이다.

길에 떨어진 낙엽을 보며 낭만적인 생각에 잠겨 보는 게 워낙 오랜만이라 그런지 2022년 가을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기온이 떨어지면 코로나19가 다시 대유행한다는 공식에 전전긍긍했던 때를 생각하면 요즘의 가을은 참 고맙기까지 하다. 아직도 옆옆자리의 직장동료들이 양성 반응으로 집에서 근무한다는 소식은 꾸준히 메일함을 채운다. 한때 ‘죽음의 공포’까지 떠올렸던 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이건 양호하다. 이제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동료들에게 머핀을 권하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어울리기도 하고, 축구를 단체 관람하기도 한다.

코로나 제재 풀리고 맞닿는 이웃
재잘재잘대며 소풍 가는 아이들
“저 꼬맹이가 저런 웃음 짓는구나”
눈인사만 하다 이젠 표정 읽어

길에는 비에 젖은 낙엽이 쌓이고
진열대엔 수확한 제철 과일과 호박
긴 추위 오기 전 붙잡고 싶은 풍경

10월 초에 열린 ‘옥토버 페스트’
전통의상 입은 거리의 사람들
어디에 있든 느껴지는 흥겨움

독일은 축제 치안 유지에 총력
기업·관공서는 긴장하고 대비
이태원에서의 갑작스런 사고로
떠난 이들의 소식 더욱 안타깝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소풍과 같은 야외활동을 시작했다. 형광색 조끼를 하나씩 걸치고 그 작은 손으로 옆 아이들의 손을 붙잡거나 선생님들과 재잘재잘대며 대중교통에 오르기도 하고 마냥 걸어다니기도 한다. 소풍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대중교통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아파트 단지까지 들어오는 샛노란 한국의 유치원 통학버스를 떠올리면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올망졸망 줄지어 다니는 꼬맹이들을 보면 언제라도 웃음이 난다.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보호자의 가르침을 수줍음으로 충실히 실천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인사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는다.

아이들은 각자 싸간 도시락을 먹으며 동물원에 가기도 하고, 숲속 어디 놀이터에 몰려가 한참을 놀기도 한다. 오며 가며 출근길에 마주치는 소풍길 꼬맹이들의 무리를 보고 있으면 우리 꼬맹이도 저렇게 다니겠구나 싶다. 우리 아이는 한국에서 자란 엄마, 아빠와는 다른 유치원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아마도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며 그 차이는 더 커지지 않을까. 10대를 이해하기도 벅찬데, 내가 자란 환경과 전혀 다른 환경과 시간을 사는 아이를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주변에 사춘기 아이들이 있는 한국 가정들이 가진 고민들이 문득 더 공감된다.

그간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며 마스크를 쓰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는데 그게 없어지며 서로의 표정을 바라보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옷차림이 본격적으로 두꺼워지는 요즘, 마스크 없이 시원한 얼굴 표정이 도리어 따뜻함을 준다. 아이들 표정은 물론 다른 이들의 얼굴 표정을 보니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들을 표정으로 나타낼 수 있으니 말이다. 저 꼬맹이가 저런 표정을 지었구나, 저 아이는 웃는 게 엄청 이쁘네 등 우리 아이와 주변의 아이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도 새삼 중요하다 싶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스크 뒤에 얼굴 표정을 읽는 건 매한가지 힘들었다. 복도에서 잠깐 마주치는 직장동료와 눈이 마주쳐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매번 볼 때마다 눈인사를 하던 동료들 얼굴을 보면서 ‘맞아, 저 표정이었지’라며 느낀다. 여러 명이 동시에 둘러앉아 마스크를 단체로 쓰고 회의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크가 없어도 알아듣기 힘든 독일말을 마스크까지 끼고 제스처까지 섞어가며 <가족오락관>을 찍었으니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그럴 바엔 차라리 화상회의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당장 옆에 없는 게 답답할까, 얼굴 표정을 읽지 못하는 게 더 답답할까 상상하곤 했다.

코로나19 관련 제재가 해제되면서 축제들이 속속 재개되고 있다. 독일의 가을 행사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옥토버 페스트’다.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라는 이 맥주축제는 원래 독일 남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 2주 정도 도심지의 빈 광장이 순식간에 놀이동산, 그릴, 맥주가 가득한 거대한 텐트촌으로 변한다.

이 기간 동안은 내가 어디에 있든 축제와 함께하는 기분이다. 독일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주말의 대중교통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독일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도 옥토버 페스트와 관련된 메뉴와 음료를 만날 수 있다. 평소 생맥주를 파는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마트에서도 ‘옥토버 페스트 에디션’이라 불리는 기존 알코올 함량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축제용’ 맥주를 판매한다. 그러니 그냥 ‘이 시기’ 자체가 축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축제의 규모가 크다 보니 이를 위한 준비도 철저하다. ‘인산인해’라는 사자성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는 행사인 만큼 방문객은 물론 지역 행정기관, 그곳에서 영업을 하는 회사들 모두 긴장하고 대비에 나선다. 옥토버 페스트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바이에른주의 뮌헨시는 2016년 이 축제를 위해 경찰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물론 치안 유지를 위해 30억원 정도의 별도 예산을 마련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현장의 풍경은 더욱 인상적이다. 단시간 많은 사람이 몰리는 점을 감안해 테이블과 텐트 사이 간격은 여유있게 배치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며 평소보다 높은 도수의 맥주를 ℓ(리터) 단위로 즐기다 보니 테이블 사이도 평소보다 더 널찍하게 두는 것이다. 서빙하는 분들의 순발력과 조직력도 이 축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일조한다. 건장한 체격의 경찰들이 곳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술이 깰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이토록 큰 행사가 매년 같은 장소에서 일정하게 열릴 수 있는 것은 민간 기업과 관공서의 적절한 협업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아쉬움이 컸다. 안타까운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긴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따스한 날씨를 즐기고픈 마음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조금은 차분하게, 1년 전에 어딘가 넣어둔 멋진 코트로 멋을 내봐야겠다.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황금빛 풍경을 배경 삼아 기억에 남을 사진도 남겨야겠다. 눈이 내리면 타려 했던 썰매도 괜스레 꺼내본다. 아이와 함께 눈이 하얗게 덮인 동네 언덕에서 뛰어놀 생각을 하며.



[다른 삶]황금빛 축제의 장이자 놀이동산이 된 광장…마스크 벗고 가을 만끽

▲신혜광·이은혜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인 3인 가족이다. 닭띠 아빠는 건축설계사무실에 다니고, 돼지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돼지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스페인, 버틸 수밖에 없었다>와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를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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