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47일 만에 영정 놓인 분향소…“이제야 ‘잘 가라’ 말해”

김송이 기자

녹사평역 앞 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

아들 영정 품고 오열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배우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가 14일 서울 용산 녹사평역 광장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오열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아들 영정 품고 오열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배우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가 14일 서울 용산 녹사평역 광장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오열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76개 액자엔 사진과 이름, 나머지 액자엔 국화꽃 사진
시민들도 나서 도와…“제대로 된 추모하기 위해 왔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이 놓인 시민분향소가 1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3번 출구 앞 광장에 차려졌다. 검은 천이 덮인 제단 위에는 액자 158개가 놓였다. 유가족이 공개에 동의한 액자 76개에는 희생자 사진과 이름이 담겼고, 나머지 액자에는 국화꽃 사진이 끼워졌다.

유족 등의 헌화와 참배는 분향소가 다 차려진 이날 오후 5시10분쯤 시작됐다. 영정을 품에 안은 이들은 자녀의 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가슴에 품은 영정을 쉽사리 제단에 올려놓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드디어 저희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잘 가라, 미안하다’라고 할 수 있게 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의 체감온도가 올 들어 가장 낮은 영하 17도까지 떨어진 날 설치된 분향소는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오열로 가득찼다.

분향소는 온전히 유가족과 이들을 도우러 나온 시민들 힘으로 차려졌다. “각목 좀 더 꽉 밀어줘.” 청년 10여명과 목공 기술자들이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합판과 각목을 이어 붙이며 제단을 만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자원봉사자 강희주씨(21)는 “참사에 국가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서 추모행동에 동참하다 유가족협의회의 분향소 설치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며 “아침에는 근처에서 영정 액자에 리본을 달았고, 이제 제단 설치와 영정 올리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각목을 자르는 톱 소리와 망치 두들기는 소리가 오전 11시부터 4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렇게 완성된 제단은 해 질 무렵에야 천막 안으로 옮겨졌다. 조문객 홍예린씨(22)는 “이 자리에 정부가 만들었던 합동분향소를 찾았을 때는 위패도 없어서 제대로 추모를 못한 기분이었다”며 “시민분향소 설치 소식을 듣고 제대로 된 추모를 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정부는 참사 이튿날인 지난 10월30일부터 11월5일 밤 12시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서울시청 광장을 포함해 서울 시내에는 30여곳의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의사 확인 없이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차려놓은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의 영정이나 위패가 없었다.

합동분향소 명칭도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였다가 공식 애도기간 마지막 날에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로 바뀌었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각 시·도에 공문을 보내 합동분향소 명칭을 ‘참사’ 대신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로 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정부가 추모 분위기를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188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유가족협의회가 요구하는 참사 진상규명 활동 등을 돕고 있다. 심규협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참사 직후 유족들과 소통 없이 분향소를 설치해 영정도 없이 진행됐고 유가족끼리 제대로 연결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래서 직접 분향소를 차리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지난 10일 출범한 유가족협의회는 창립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참사 피해자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통로와 희생자 추모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았고, 이에 유가족협의회가 자체적으로 분향소 설치에 나선 것이다.

유가족협의회는 희생자들의 49재가 치러지는 16일 오후 6시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는 이름의 추모제를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연다. 49재 이후 분향소 운영은 유가족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고 이지한씨의 모친은 “윤석열 대통령이 금요일(16일)까지 와서 158명의 영정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하라”며 “오지 않으면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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