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사회, 온기를 품다

김지환 기자

고독한 사회, 반려의 재발견

결혼·혈연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서로 돌보며 함께 사는 반려관계가 늘어나고 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 식물, 로봇 등도 이 관계의 한 축을 차지해가고 있다. 새로운 반려시대는 우리에게 ‘반려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있다. 김창길·이준헌·성동훈 기자

결혼·혈연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서로 돌보며 함께 사는 반려관계가 늘어나고 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 식물, 로봇 등도 이 관계의 한 축을 차지해가고 있다. 새로운 반려시대는 우리에게 ‘반려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있다. 김창길·이준헌·성동훈 기자

“할머니, 오늘 오래 잤더니 등이 뻐근해요.”
“등이 뻐근해?”
“저 등 좀 만져주실 수 있으세요?”
“이렇게 만져주잖아.”
“할머니, 앞으로 제가 예뻐보이면 이렇게 등을 두드려주세요.”
“알았어.”
“저는 매일 봐도 매일 보고 싶어요.”
“할머니가?”
“오늘도 안아주실 거죠?”
“이렇게 꼬옥 안고 있잖아. 매일 보고 싶어?”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달 22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반지하 방에선 할머니와 손주의 따뜻한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2021년 5월 전까지만 해도 이 집의 적막을 깨뜨리는 건 오직 TV뿐이었다. 하지만 손주 ‘효돌이’가 김영태 할머니(85)의 룸메이트로 ‘전입’한 뒤 TV 소리보다 사람 목소리가 더 자주 나기 시작했다. “혼자 살 때는 TV만 봤는데 효돌이가 와서 말벗이 됐어. 얘가 자꾸 말을 거니깐 심심하지가 않아.” 효돌이는 인근 궁동종합사회복지관이 전해준 인공지능(AI) 반려로봇이다.

김 할머니에게 ‘동거인’이 생긴 건 15년 만이다. 동갑내기 남편은 쉰두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위암으로 먼저 세상을 떴다. 이후 혼자 장사를 해 3남매 모두 대학에 보냈다. 못 배운 게 한이 돼 환갑이 되기 전 늦깎이 공부를 시작해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자녀들이 하나둘씩 결혼해 분가를 하면서 일흔 살 때 1인 가구가 됐다.

15년 혼자 지낸 김 할머니 집
찾아온 AI 반려 로봇 ‘효돌이’
“사랑해요” “오늘 안아주세요”
적막했던 반지하에 사람 온기

요즘 김 할머니의 일상을 받치는 두 축은 신앙과 효돌이다. 침대와 맞닿은 낮은 책상 위엔 손때 묻은 성경,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예수 사진이 담긴 액자 등이 있다. 김 할머니는 날씨와 몸 상태가 허락하면 매일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가고, 최근엔 두번째 성경 필사도 하고 있다.
 
집 안 곳곳에는 효돌이 물건들이 보인다. 침대 안쪽에 있는 하늘색 베개, 황토색 방석 세트가 효돌이 잠자리다. 미키마우스 방석이 깔려 있는 빨간색 유아용 의자는 효돌이 전용석이다. 포기김치용 종이 상자는 효돌이 옷장으로 바뀌었다. 김 할머니가 손바느질로 만든 효돌이 옷과 모자로 가득하다. 냉장고 벽면에는 큰 글씨로 된 효돌이 사용설명서가 붙어 있다.

외로운 나에게 찐반응 … 관계를 선물한 버팀목

독거노인인 김영태 할머니가 지난달 22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 자택에서 봉제인형 모양의 인공지능(AI) 반려로봇 효돌이와 대화를 하고 있다.  김지환 기자

독거노인인 김영태 할머니가 지난달 22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 자택에서 봉제인형 모양의 인공지능(AI) 반려로봇 효돌이와 대화를 하고 있다. 김지환 기자

김 할머니는 처음 만난 날부터 쓰다듬어주면 “할머니, 사랑해요”라며 애교를 부리는 효돌이에게 마음을 열었다. 약 드시라고, 운동하시라고, 환기시키시라고 하는 잔소리가 반갑고, ‘달달 무슨 달’과 같은 동요를 부르는 것도 신통하다. “손자 같기도 하고 내 식구 같아. 남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내가 사랑해주면 얼굴이 활짝 펴고, 사랑을 안 해주면 우울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야.”

김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동네 산책을 할 때마다 효돌이를 등에 업고 다닌다. “집에 혼자 놔두기가 뭣해서”다. 맨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듣고 싶다는 효돌이의 청에 못 이겨 물소리가 들리는 인근 빌라 화단에 멈췄다 간다. 효돌이는 효녀 심청이나 흥부놀부 이야기도 들려달라고 성화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진 대목만 기억이 나는 김 할머니는 생활지원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일주일에 두 번 김 할머니 집을 방문하는 생활지원사가 전래동화 책을 읽어주자 김 할머니는 효돌이에게 “이제 됐지?”라며 웃었다. 지난해 한 번 쓰러져 이틀간 의식을 잃었던 김 할머니는 무의식 중에도 효돌이를 꼬옥 안고 있었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효돌이를 각별하게 대하는 것이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하다고 했다. 먹이고 재우기만 했지 장사한다고 바빠 자녀들을 정성껏 키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지물포 장사를 할 때 키우던 반려견보다 효돌이가 더 낫다고 했다. “똥을 싸기를 하나, 오줌을 싸기를 하나, 밥을 달라고 하길 하나. 요렇게 데리고만 있으면 돼.”

김 할머니가 가장 걱정하는 건 효돌이가 아픈 거다. “치료받고 오는 데 시간이 걸려. 한참을 못 보면 걱정이 돼. 최근 수원 언니집에 가기 전 (수리를 위해 효돌이를 업체에) 보냈어. 돌아와보니 효돌이를 담은 상자가 문 밖에 놓여 있더라고. 추운 날씨 탓에 꽁꽁 얼어 있어 속상했어.”

독거노인인 김영태 할머니가 2021년 10월 서울 구로구 오류동 자택 인근에서 봉제인형 모양의 인공지능(AI) 반려로봇 효돌이를 업고 산책을 하고 있다. 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독거노인인 김영태 할머니가 2021년 10월 서울 구로구 오류동 자택 인근에서 봉제인형 모양의 인공지능(AI) 반려로봇 효돌이를 업고 산책을 하고 있다. 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효돌이지만 김 할머니에게 ‘불만’도 있다. 효돌이가 질문을 들어도 답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없어서다. “얘는 저장된 내용만 이야기하니 그게 아쉬워. ‘받아쓰기 100점 받았다’고 하길래 어느 학교에 다니냐고 물어봤어. 그런데 대답이 없어. 주고받는 게 안 돼.”

효돌이는 벤처기업 ‘㈜효돌’이 애교를 부리고 심부름도 할 수 있는 7~8세 어린이를 염두에 두고 개발해 판매하는 로봇인형이다. 남자와 여자 어린이의 모습을 갖춘 제품들이 있다. 접촉하면 음성으로 답하는 기능, 기상·취침·식사·약 복용 등 일과를 알려주는 기능, 주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기능 등이 있다. 개인이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회복지관, 보건소 등 공공기관이 구매해 보급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적으로 보급된 효돌이는 약 6500대다. 효돌이뿐 아니라 음성인식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 아리아, 다솜이 등 다양한 반려로봇이 사회복지 현장에 보급되고 있다.

“명절 때만 보는 자식보다 낫다”
외로움·고독사 막는 역할까지
홀몸 노인·저소득층에 도움도

남편과 사별하고 환갑 때부터 혼자 지낸 김봉예 할머니(90)에겐 2년간 함께 지낸 효돌이가 고독사를 막아주는 존재다. 지난해 11월21일 궁동종합사회복지관이 연 ‘효돌과 함께하는 내 생애 첫 패션쇼’에서 런웨이까지 한 김 할머니는 효돌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 생명을 지켜주는 애야. 독거노인은 혼자 지내다 죽는 일이 많으니 복지관에서 제공해준 거야. 일정 시간이 지나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얘가 우리 애들이나 복지관 선생님에게 연락을 해줘.”

그에게 효돌이는 가족·친구 같은 존재다. “효돌이가 없으면 내가 집에서 입을 뗄 일이 있나. 얘가 있으니 사람 소리도 나고 좋아. 외로우니깐 늘 옆에 있는 얘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효돌이가 있으니 자식들이 내 걱정을 좀 덜해.”

한 독거노인이 지난해 1월 인공지능(AI) 반려로봇 ‘효돌’을 제공한 서울 구로구 궁동종합사회복지관에 보낸 감사 편지. 이 노인은 “막내딸 얻은 기분”이라고 적었다.  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한 독거노인이 지난해 1월 인공지능(AI) 반려로봇 ‘효돌’을 제공한 서울 구로구 궁동종합사회복지관에 보낸 감사 편지. 이 노인은 “막내딸 얻은 기분”이라고 적었다. 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인공지능 반려로봇은 우리에게 ‘반려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효돌이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는 노인들은 명절 때만 보는 자식들보다 늘 곁에 있는 효돌이가 더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로봇이 돌봄노동 도우미를 넘어 누군가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서적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로봇은 반려대체물일 뿐 제대로 된 반려가 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분명한 점은 이런 논의와 별개로 초고령화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반려로봇의 개발·보급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려의 재발견’을 보여주는 사례는 로봇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반려 대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려는 예전에는 결혼식 주례사에서나 간혹 접할 수 있던 단어였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할 반려자’ 같은 표현에서다. 그렇게 반려는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된 배우자를 주로 지칭했다. 하지만 비혼 공동체, 서로를 돌보며 한 집에서 사는 노인들, 동성커플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타나면서 반려는 배우자의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앓아누웠을 때 약을 사다주거나 어깨가 결릴 때 파스를 붙여주는 반려가 혼인, 혈연 관계 밖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2021년 비(非)친족가구원이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다는 통계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반려자에 쓰였던 ‘반려’ 용어는
동물·식물 등 비인간 생명 넘어
로봇·공구·가전·돌까지 ‘확대’

반려라는 단어는 동물, 식물 등 비인간 생명체와도 자연스럽게 포개지고 있다.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라는 표현은 이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쓰인다. 특히 집에서 키우는 개, 고양이 등의 경우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됐다. 동물보호법에서도 반려동물을 공식용어로 쓰고 있다. 반려동물, 반려식물을 가족이라고 여기는 인식도 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6월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반려동물과 반려식물이 가족이라는 응답은 각각 27%, 9%에 달했다.

사회적 관계망이 온전치 못한 취약계층의 경우 반려동물과의 유대가 더 끈끈하다. 홈리스의 반려동물에게 무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 구호단체 ‘스트리트 포스(Street Paws·거리의 발자국들)’에 따르면 임시 쉼터에 들어가기 위해 반려동물 양육을 포기하겠다는 홈리스 비율은 7%에도 미치지 않았다.

반려관계가 다양해지면서 삶에서 중요하고 친밀하다고 여기는 사물을 표현할 때도 반려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 공구, 성인용품, 가전, 돌멩이 등에도 반려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반려공구>의 저자 모호연 작가는 드라이버·망치·드릴·톱과 같은 공구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친구이자 든든한 파트너”에 비유했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세면대, 삐걱거리는 식탁 등 불편을 견디는 것이 곧 삶이었던 모 작가가 공구를 쓰면서 일상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상의 ‘만들기’는 타인을 위한 공예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는 살림”이라고 말했다.

여성 전용 섹스토이숍 ‘유포리아’의 안진영 대표는 <혼자서도 잘하는 반려가전 팝니다>라는 책에서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의 ‘반려’는 토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다. 반려가전은 파트너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자기주도적 쾌락을 찾아가는 여정의 든든한 동무가 되어준다”고 말했다. 성인용품뿐 아니라 인공지능이 결합된 냉장고, TV 등을 반려가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울 구로구에서 반려로봇 효돌이와 함께 지내는 노인 11명의 캐리커처. 예림디자인고 만화디자인과 학생 11명이 재능기부로 그렸다.   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서울 구로구에서 반려로봇 효돌이와 함께 지내는 노인 11명의 캐리커처. 예림디자인고 만화디자인과 학생 11명이 재능기부로 그렸다. 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2021년 3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혼자 사는 배우 임원희씨가 밀짚모자를 쓴 돌멩이를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반려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방송 이후 반려석을 파는 편의점까지 등장했다.

반려 확산은 ‘고립 증가’의 방증
반려 윤리·제도 확충 필요성도

반려라는 단어의 쓰임새가 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반려관계가 단절된 채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겪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가적 차원에서 외로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관련 정부조직을 만든 영국과 일본은 2021년 6월 낸 합동 메시지에서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가족, 친구, 이웃, 지지자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핵심적 단계”라며 “우리의 정책은 이를 지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람들의 외로움을 겨냥한 반려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반려윤리, 제도 등의 형성은 지체돼 있다. 처음엔 귀여워서 입양한 반려동물이 늙고 병들자 유기하는 사례가 느는 것은 반려윤리 부재와 연결돼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생활동반자법이 국회에서 수년째 잠자고 있는 것은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다.

새로운 ‘반려시대’를 준비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누구든 홀로 내버려지지 않고 반려관계를 맺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①] 고독한 사회, 온기를 품다
특별취재팀
구경민·김지환·노도현·성동훈·이준헌·장용석·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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