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한 여군 하사 사망현장 뒤진 가해자에 감형?···유족 반발

이홍근 기자

50대 이 준위, 항소심서 집유

법원, 강제추행 혐의만 인정

유족 측 “군 특수성 이해 부족”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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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하사를 두 차례 성추행한 뒤, 하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방범창을 뜯고 들어가 현장을 뒤진 50대 준위(현재는 전역)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재물손괴, 주거침입, 주거수색, 강제추행 모두를 인정한 원심과 달리 강제추행 혐의만 인정해 1심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유족 등은 “이해할 수 없는 결과”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이재희)는 지난 9일 공동재물손괴, 공동주거침입, 주거수색,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 전 준위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과 3년간의 아동·청소년 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이 전 준위와 함께 방범창을 뜯은 박모 원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성추행한 여군 하사 사망현장 뒤진 가해자에 감형?···유족 반발

공군 제8전투비행단 소속 A하사는 2021년 3월과 4월 이 전 준위로부터 두 차례 성추행을 당했다. 이 준위는 부대 단체 회식이 끝난 뒤 A하사를 따로 부르고 개별 티타임을 가지며 집에 태워다주겠다고 요구하는 등 A하사에게 자주 접근했다고 한다.

포렌식 결과 등에 따르면 이 전 준위는 5월7일에도 A하사를 불렀다. 당시 A하사와 이 전 준위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대화 직후 이 전 준위는 A하사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여러 차례 사과했다. A하사가 퇴근해 집으로 가려 하자 “일요일에 전화할게. 해도 돼?”라며 붙잡기도 했다. 이날 퇴근 직후 A하사는 극단적 선택 방법을 구체적으로 검색했고 나흘 뒤인 5월11일 사망했다.

사망 당일, A하사가 출근하지 않자 이 전 준위는 영외에 거주하는 A하사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후 119나 112를 부르지 않고 박 원사와 방범창을 뜯고 집에 들어갔다. 이 전 준위가 시신이 있는 문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거실을 가로지른 뒤, 침대를 밟고 처음 만진 물건은 A4용지였다. 유족은 군 수사 단계에서부터 이 전 준위가 A하사의 유서를 찾기 위해 주거에 침입했다고 주장했다.

공군 제8전투비행단 사망 사건 가해자 이모 준위가 피해자인 A하사의 집 창문(우측 화살표)을 넘어 들어온 뒤 집안에 있던 A4 용지(좌측 동그라미)를 만지기까지의 동선.

공군 제8전투비행단 사망 사건 가해자 이모 준위가 피해자인 A하사의 집 창문(우측 화살표)을 넘어 들어온 뒤 집안에 있던 A4 용지(좌측 동그라미)를 만지기까지의 동선.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주거수색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A하사를 발견한 후 너무나 충격을 받아 무의식적으로 거실로 이동해 A4용지를 짧은 시간 만진 것으로 보일 뿐 수색의 고의를 가지고 있다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주거침입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므로 위난이나 긴급성이 있지 않았다”면서도 “착오로 인한 오상피난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오상피난은 현존하는 위난이 없음에도 있다고 착각해 피난하는 행위를 말한다.

재판부는 이 준위가 “현장에서 소리를 질렀는데도 반응이 없어 A하사가 의식이 불명확할 정도라 생각해 방범창을 뜯었다”고 말한 점, “피해자가 지각이나 출근을 못 한 문제로 피해를 볼 수 있어 112나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한 점 등을 인정하며 이같이 판단했다. 복도에서는 A하사의 상태를 알 수 없어 부득이하게 집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A하사가 사망한 옷방 창문을 복도에서 찍은 사진(왼쪽). 오른쪽 창문을 열고 방 안쪽을 보면 A씨가 사망한 장소가 보인다(오른쪽).

A하사가 사망한 옷방 창문을 복도에서 찍은 사진(왼쪽). 오른쪽 창문을 열고 방 안쪽을 보면 A씨가 사망한 장소가 보인다(오른쪽).

그러나 현장 감식반 등이 찍은 사진을 보면 아파트 복도에서도 창문을 통해 시신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방범창을 뜯거나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오른쪽 창문만 열면 A하사의 시신이 매달린 곳이 보였다.

A하사 유족 측 법률대리인 강석민 변호사는 16일 “민간 법원에서 군 관련 판결을 내리다 보니 군 조직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거 같다”면서 “사건을 잘 아는 군 판사 이야기를 들어봐도 군에서 하급자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는 이유로 집에 찾아간 뒤 방범창을 뜯고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앞서 발생한 이예람 중사 사건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군이 이 준위의 성추행 사실을 감추려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군은 A하사 사망 열흘 뒤 이 전 준위로부터 성추행 사실을 자백받고도 주거침입, 주거수색, 공동재물손괴 혐의로만 기소했다. 이후 유족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수사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한 뒤에야 같은 해 8월3일 이 전 준위를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했다.

유족 측은 항소심이 끝난 뒤 “성추행 사실을 초기 수사부터 인지하고도 은폐하려 했던 합동수사본부를 고소하려 한다”고 했다. 검사와 이 준위 측 모두 지난 14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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