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 없다고…발 225㎜ 인데 235㎜ 신고 일하라고요?

김한솔 기자
사이즈 없다고…발 225㎜ 인데 235㎜ 신고 일하라고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②]
사이즈 없다고…발 225㎜ 인데 235㎜ 신고 일하라고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②]

형틀목수 김명순씨(51)의 안전대에는 여기저기 오래된 바느질 자국이 있다. 양 어깨와 허리춤, 허벅지 부분의 바느질 자국은 다른 부분과 박음질 모양도, 실 색깔도 조금 다르다. 직접 꿰맸기 때문이다. 안전대는 건설 노동자들이 전신에 착용하는 띠 모양의 보호구다. 높이가 2m 이상인 곳에서 작업할 때 추락을 막기 위해 쓴다. 김씨와 같은 건설 노동자들은 특별한 ‘작업복’이 없다. 김씨는 집에서 입던 낡은 긴팔 셔츠, 앉았다 일어났다 하기에 편한 긴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회사가 지급하는 것은 의복이 아니라 안전모와 안전화, 그리고 안전대 같은 보호구다. 어떤 옷을 입든 이 세 가지만큼은 퇴근할 때까지 김씨의 몸에 붙어있다. 건설 노동자에겐 보호구가 옷이나 다름없다.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이어져 있는 베이지색 두꺼운 띠가 그네식 안전대다. 건설 노동자들은 안전대에 달린 고리를 비계 등에 고정해 추락을 방지한다. 암벽 등반가들이 착용하는 하네스와 같은 원리다.  성동훈 기자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이어져 있는 베이지색 두꺼운 띠가 그네식 안전대다. 건설 노동자들은 안전대에 달린 고리를 비계 등에 고정해 추락을 방지한다. 암벽 등반가들이 착용하는 하네스와 같은 원리다. 성동훈 기자

키 151㎝, 발 크기 225㎜의 여성인 김씨는 회사에서 주는 보호구 중 몸에 맞는 것이 거의 없다. 보호구 사이즈가 대부분 ‘남성’을 표준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지금 쓰는 그네식 안전대도 김씨가 직접 자르고 접고 꿰매 몸에 맞춘 것이다. 그는 요즘 경기 수원시 한 대형 아파트 단지를 짓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2019년 안산 건설기능공학교에서 일을 배운 뒤 다섯 번째 일터다. “기능학교에서 안전대는 줬는데, 그때도 안 맞아서 줄여서 썼어요. 이렇게 접고 꿰매서 한 3~4년 쓰다 지금 현장 오면서 버렸어요. 더러워지면 빨아썼어요.” 새 현장에서 받은 안전대 역시 어깨품이 컸다. 벨트 모양의 끈이 어깨와 다리, 가슴 등 전신을 감싸는 그네식 안전대는 치수가 안 맞으면 바로 흘러내린다. ‘신체를 지지해 추락을 방지’하는 기능을 상실하는 것이다.

225㎜인데 235㎜ 지급…깔창 없으면 벗겨져

회사에서 지급한 김명순씨의 안전화. 막 일을 마친 안전화에 먼지와 흙이 잔뜩 묻어있다.

회사에서 지급한 김명순씨의 안전화. 막 일을 마친 안전화에 먼지와 흙이 잔뜩 묻어있다.

안전대는 고쳐 쓸 수라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것도 있다. 안전화다. 건설 현장의 바닥은 위험하다. 고르지 않은 땅 곳곳에 못 같은 뾰족하고 단단한 것들이 널려 있다. 지하에는 물기가 많은 탓에 미끄러지기도 쉽다. 발바닥 부분에 얇은 철판(내답판)이, 발끝 부분에 철로 된 캡(선심)이 있는 안전화를 ‘발 크기에 맞게’ 착용하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사이즈 없다고…발 225㎜ 인데 235㎜ 신고 일하라고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②]
김명순씨가 자신의 안전화가 얼마나 큰 지 설명하기 위해 신발 안에 깔아둔 깔창들을 빼고 있다. (사진 1) 발 사이즈 225mm인 김씨에게 지급된 안전화의 사이즈는 235mm다. (사진 2) 김한솔 기자

김명순씨가 자신의 안전화가 얼마나 큰 지 설명하기 위해 신발 안에 깔아둔 깔창들을 빼고 있다. (사진 1) 발 사이즈 225mm인 김씨에게 지급된 안전화의 사이즈는 235mm다. (사진 2) 김한솔 기자

현장에서는 매번 안전화를 지급하기 전 김씨에게 치수를 물어봤다. 하지만 현장을 네 번 옮기는 동안 발에 맞는 신발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현장에는 여성이 소수잖아요. 작은 걸 선택해도 없어요. 225㎜이면 딱 좋을텐데….” 김씨가 이번에 받은 안전화는 235㎜다. 같은 형틀목수인 남한나씨(40) 역시 “현장에서는 ‘남성이 기본’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보통 남성들 사이즈별로 미리 구비해놓죠. 좋은 제품들은 사이즈가 딱 구별되잖아요? 그런데 현장에서 주는 것들은 시장에서 막 파는 이름 없는 것들인 경우가 많아요. 225~230㎜는 따로 주문을 해야 돼요. 현장에서는 이미 이만큼 사놨는데 그렇게 주려고 하지 않죠. 안전벨트도 좋은 것 중에는 사이즈가 있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제일 싼 거를 주기 때문에 막 잘라서 쓰는 거예요.”

김씨가 안전화를 벗자 도톰한 형광 연두색 깔창 두 개가 나왔다. 깔창도 좋은 것은 하나에 2만원 정도 한다. 김씨는 여기에 두꺼운 등산양말을 두 켤레나 신는다. “지금은 더워서 양말을 하나 신었는데, 원래는 이런 양말을 두 개씩 신어요. 겨울에는 두꺼운 버선도 신고요.” 발에 신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신발에 맞춰 깔창과 양말을 활용해 발 크기를 늘리는 셈이다. “불편하죠. 양말은 양말대로 돌아가고, 발은 발대로 돌아가고. 그냥 그렇게 일해요. 신발이 딱 맞지 않으니까 걷다가 자꾸 걸려요. 조심해서 걷기는 하는데 발목이 꺾일 때가 많죠. 아직 다친 적은 없어요. 일단 신발 끈을 꽉 조여요. 좀 아프기는 해요.”

사이즈 없다고…발 225㎜ 인데 235㎜ 신고 일하라고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②]
김명순씨가 자신이 일하는 건설현장 내 남성용 휴게실에서 안전대를 차고 있다. 이 현장에서 여성 형틀목수는 김씨 혼자다. 직종별로 휴게실을 함께 쓰는데,  여성용 휴게실은 없어서 평소엔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몸에 맞게 수선한 안전대에 바느질 자국이 보인다. 김한솔 기자

김명순씨가 자신이 일하는 건설현장 내 남성용 휴게실에서 안전대를 차고 있다. 이 현장에서 여성 형틀목수는 김씨 혼자다. 직종별로 휴게실을 함께 쓰는데, 여성용 휴게실은 없어서 평소엔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몸에 맞게 수선한 안전대에 바느질 자국이 보인다. 김한솔 기자

양말을 여러 겹 신기 어려운 더운 여름에는 225㎜ 안전화가 나오는 브랜드를 찾아 직접 사서 신는다. “여름 거는 보통 5만~6만원 주고 사서 신어요. 지금도 차에 새로 사둔 게 한 켤레 있어요. 한 번 사면 신는 기간이요? 아휴, 안전화 잘 써봐야 석 달이죠.” 겨울에는 추워서 안전화를 산다. “현장에서 주는 건 추워서 못 신어요. 털 있는 걸로 사서 신죠. 털 있는 건 가격이 비싸서 잘 안 줘요. 겨울에는 신발이 눈이랑 물에 젖으면 퍼지거든요. 퍼졌다 마르고, 퍼졌다 마르고 하면서 이음매가 떨어져요. 겨울 안전화는 한 12만원 정도 해요.”

김명순씨가 작업 시 신는 등산양말과 각반. 각반은 이렇게 플라스틱으로 된 것과 벨크로 형태로 된 것이 있는데, 플라스틱이 그나마 덜 헛돈다고 한다. 김한솔 기자

김명순씨가 작업 시 신는 등산양말과 각반. 각반은 이렇게 플라스틱으로 된 것과 벨크로 형태로 된 것이 있는데, 플라스틱이 그나마 덜 헛돈다고 한다. 김한솔 기자

김씨의 남편도 형틀목수다. 같은 일을 하지만, 때마다 치수에 맞게 보호구를 수선하거나 사비를 들여 사는 것은 김씨뿐이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다 맞죠. 여성들은 키가 좀 크다 해도 몸집이 작으니까 조금씩 줄여서 착용할 거예요. 아마 대부분의 현장에서 그럴걸요?”

표준의 기준이 ‘남성’일 때

작업도구가 들어있는 가방을 매달 때 쓰는 허리벨트. 허리 둘레에 맞게 조절이 가능하지만, 끝까지 조이면 길이가 많이 남는다. 성동훈 기자

작업도구가 들어있는 가방을 매달 때 쓰는 허리벨트. 허리 둘레에 맞게 조절이 가능하지만, 끝까지 조이면 길이가 많이 남는다. 성동훈 기자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건설근로자 취업현황과 정책방안’ 보고서에서 여성 건설노동자 5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56.0%가 안전보호장비를 사용하며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는데, 이 중 57.4%는 ‘안전장비의 크기가 잘 맞지 않아 불편했다’고 밝혔다.

면접조사에 응한 인터뷰이들도 김씨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7년차 알폼(알루미늄 거푸집) 작업자는 “안전화 제일 작은게 250㎜이에요. 저는 덩치 큰 편이라도 245㎜밖에 못 신으니까 큰 거 신으면 넘어지더라고요”라고 했다. 27년차 타워크레인 작업자는 “안전벨트도 큰 사람들, 남성 기준 보통 크기로 나오기 때문에 조절이 잘 안 되거든요. 여성용 안전벨트가 좀 있든가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김명순씨가 형틀 작업을 할 때 쓰는 도구들. 안전대, 허리벨트는 쇠와 가죽으로 된 도구들의 무게까지 견딜 수 있도록 몸에 잘 맞아야 한다. 성동훈 기자

김명순씨가 형틀 작업을 할 때 쓰는 도구들. 안전대, 허리벨트는 쇠와 가죽으로 된 도구들의 무게까지 견딜 수 있도록 몸에 잘 맞아야 한다. 성동훈 기자

보고서는 “모든 안전보호장비들이 남성의 신체 기준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여성들의 신체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이러한 장비는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의 업무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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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틀목수 김명순씨의 작업복. 안전모, 안전화, 안전대, 허리벨트, 각반, 장갑, 팔토시, 조끼를 착용했다. 이 중 일부는 김씨가 사비로 구매한 것이고, 일부는 회사에서 지급한 것이다. 성동훈 기자

형틀목수 김명순씨의 작업복. 안전모, 안전화, 안전대, 허리벨트, 각반, 장갑, 팔토시, 조끼를 착용했다. 이 중 일부는 김씨가 사비로 구매한 것이고, 일부는 회사에서 지급한 것이다. 성동훈 기자

보호구 안전인증에 관한 고용노동부 고시(제2020-35호)는 안전대, 안전화, 안전모 등 12개 품목의 성능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업체가 이 기준에 따라 보호구를 만들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이를 검토해 안전인증을 한다. 산업안전보건인증원 보호구 인증부의 채승수 차장은 “업체에서 보내오는 사이즈를 보면 키 170㎝, 몸무게 70~80㎏ 정도의 중간 체격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든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안전화의 구조.  신발 안에 발가락과 발바닥 보호를 위한 철로 된 선심, 내답판이 들어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한 보호구 착용 길라잡이’ 갈무리.

안전화의 구조. 신발 안에 발가락과 발바닥 보호를 위한 철로 된 선심, 내답판이 들어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한 보호구 착용 길라잡이’ 갈무리.

안전화의 경우 ‘안전화를 몇㎜ 이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기준은 없다. 다만 성능기준표상 발끝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화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선심의 길이는 ‘최소~225㎜’ 사이즈 기준 34㎜로 해야 한다. 230㎜ 이하 크기가 있는 것을 가정해 그 치수에 들어가는 부품의 크기도 규정돼 있는 것이다. 채 차장은 “안전화의 크기별 안전인증은 다 되어있다. 220㎜ 소형까지 인증을 해준다. 그 수요가 적어서 제조사가 만들지 않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김명순씨가 일터에서 형틀 작업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김명순씨가 일터에서 형틀 작업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안전대나 안전모 같은 보호구의 성능기준에는 ‘길이 조절이 가능해야 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있다. 그네식 안전대에는 “골반 부분과 어깨에 위치하는 띠를 가져야 하고, 사용자에게 잘 맞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돼있다. 김씨의 안전대도 어깨와 허리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 사이즈 자체가 크게 나오기 때문에 조절을 해도 여전히 품이 크고, 조절한 만큼 끈 길이가 길게 남기 때문에 자르고 꿰맬 수밖에 없다. 채 차장은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안전대다. 안전대의 경우 제조업체에 이야기해서 여성이 착용해도 안전한 소형 안전대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소형 보호구’ 수요는 정말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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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건설, 용접 등 특정 현장의 사업주에게 “작업조건에 맞는 보호구를 작업하는 근로자 수 이상으로 지급,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보호구에 이상이 있으면 수리하거나 다른 것으로 교환해주는 등 늘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도 해야 한다. 다만 지급되는 보호구가 ‘몸에 잘 맞아야 한다’는 내용까지는 없다. 일단 지급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영국은 ‘업무상 개인보호구 규정(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at Work Regulations·PPE)’에서 사업주가 제공해야 하는 안전보호장비에 관해 밝히고 있다. PPE 규정은 “사이즈와 핏, 호환성, 장비의 무게, 그리고 쓰는 사람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해 작업자에게 맞는 장비를 선택해야 한다. 몸에 맞추기 위해 장비를 고치는 것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하네스(안전벨트)와 구명조끼 같은 일부 PPE의 경우, 몸에 잘 맞는 정확한 사이즈를 선택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고,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돼있다. 우리 기준보다 훨씬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업계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착용하는 소형 보호구가 많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수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안전보호구협회의 이병훈 국장은 “건설 현장은 남성보다는 여성 비중이 작다보니, 제조업체에서 소형 제품을 만들면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보호구 제조업체들 대부분 소규모 사업장이다보니 그런 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명순씨가 여름마다 사이즈에 맞게 직접 구입해서 신고 있는 안전화.  성동훈 기자

김명순씨가 여름마다 사이즈에 맞게 직접 구입해서 신고 있는 안전화. 성동훈 기자

바지 끝을 다른 물체에 걸리지 않도록 조여주기 위해 착용하는 각반. 여성 노동자들은 각반조차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 발목에서 겉돌때가 많다. 플라스틱으로 된 각반은 벨크로 형태보다는 덜 겉돈다. 성동훈 기자

바지 끝을 다른 물체에 걸리지 않도록 조여주기 위해 착용하는 각반. 여성 노동자들은 각반조차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 발목에서 겉돌때가 많다. 플라스틱으로 된 각반은 벨크로 형태보다는 덜 겉돈다. 성동훈 기자

여성 노동자들은 안전화가 발에 맞지 않으면 새것을 요구하는 대신 끈을 꽉 조이거나 사비로 구입한다. 안전대가 안 맞아도 직접 수선해 쓴다. 이걸 정말 수요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수요가 없어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 쓰는 건데 좀 몸에 맞게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기존에 남자만 있던 현장이라,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는다는 거 알고는 있었어요.” 김 위원 말대로 작업복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해 온 김명순씨가 말했다. “개인적으로 쓰는 돈은 내가 일하기 편하게 하려고 하는 거니까 아끼진 않아요. 말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 말하지도 않아요. 회사에 이야기하면 눈 밖에 날 수도 있으니까요.”

‘여성은 일을 못한다’ 편견은 어떻게 생길까

김명순씨가 경기 안산시 건설기능공학교 안에 세워진 임시 구조물을 살펴보고 있다. 김씨는 이 학교에서 처음 형틀 일을 배웠다. 성동훈 기자

김명순씨가 경기 안산시 건설기능공학교 안에 세워진 임시 구조물을 살펴보고 있다. 김씨는 이 학교에서 처음 형틀 일을 배웠다. 성동훈 기자

몸에 맞지 않는 작업복은 개인의 안전에 큰 위협이다. 김 위원은 이 문제가 개인의 안위를 넘어 ‘여성은 일을 못한다’는 편견을 재생산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가 좋은 운동화를 신으면 달리기도 잘할 수 있잖아요. 적합한 장비를 받으면 일의 능률도 오르죠. 일당 받으면서 내 발에 맞는 신발을 개인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내가 여기서 얼마나 일할지도 모르는데. 그럼 그 여성은 안 맞는 신발을 신고 일 하다가 일을 잘 못해요. 그럼 ‘여자들 일 못하네, 이래서 여자는 안 돼’라고 하겠죠.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그 개인도 아니고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한 책임으로 돌아가요. 발에 맞지 않는 안전화는 안전에도 위협이 되지만,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거죠.”

형틀목수는 ‘건물의 시작’을 짓는 일을 한다. 자신이 작업한 건물의 뼈대에 서 있는 김명순씨. 본인 제공

형틀목수는 ‘건물의 시작’을 짓는 일을 한다. 자신이 작업한 건물의 뼈대에 서 있는 김명순씨. 본인 제공

김명순씨는 계절마다 맞는 안전화를 사고, 안전대도 몸에 맞게 꿰매 입어야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일이 좋다고 말했다. “몸이 아프지 않고, 이렇게 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본인 제공

김명순씨는 계절마다 맞는 안전화를 사고, 안전대도 몸에 맞게 꿰매 입어야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일이 좋다고 말했다. “몸이 아프지 않고, 이렇게 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본인 제공

김씨는 형틀목수가 되기 전 오랫동안 식당 일을 했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도 별로 남는 게 없던 때였다. 지금은 일하는 게 재미있다. “처음엔 ‘남자들만 있는 데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했어요. 막상 해보곤 ‘2~3년 더 빨리 시작할걸’ 했어요. 실력으로 인정받으니까 좋아요. 제가 건설현장에서 일한다는 거 숨기고 싶지 않아요.”

‘몸에 맞는 작업복’은 김씨 같은 여성 노동자가 건설현장에 더 많이 진입하게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김 위원이 말했다.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여성이 많이 하는 돌봄 관련 직종의 임금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에 남성이 주로 해왔던 직종에 여성이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원해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 사회는 아직 그 부분이 약한 것 같아요. 여성도 변하잖아요. 과거에는 ‘남자들이 하는 일 어떻게 해’ 했지만 지금은 ‘못할 게 뭐 있어’라고 하죠. ‘안전장비를 성별 특성을 고려해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고용노동부 지침에라도 들어가면 조금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작업복 기획팀
김한솔·김정화·박하얀(스포트라이트부), 성동훈· 권도현(사진부), 최유진· 모진수(뉴콘텐츠팀), 박채움·이수민(데이터저널리즘팀)


▶ 다른 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작업복은 어떨까요? 여수 산단에서 일하는 여성 용접공, 용접공이 되려 준비 중인 예비 용접공의 이야기도 만나보세요.


▶ 지하의 하수처리장, 소각장, 재활용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할까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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