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급식실에 이론적 매뉴얼만···“현장에 답이 있어요”

김한솔 기자
위험한 급식실에 이론적 매뉴얼만···“현장에 답이 있어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④]
위험한 급식실에 이론적 매뉴얼만···“현장에 답이 있어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④]

‘내 몸은 내가 지킨다.’ 김수정 학교비정규직노조 수석부위원장(52)은 급식실에서 일했던 첫 10년간 이런 생각을 했다. 김 위원장뿐 아니라 급식실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작업복 대신 위생복. 안전화 대신 위생장화. 안전모 대신 위생모. 급식실에서는 언제나 ‘위생’이 앞섰다.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조리하는 공간에서 위생이 1순위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리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1973년 학교급식이 시작된 이래, 급식에 관한 주요 논의들은 늘 깨끗하고 건강한 밥을 제공하기 위한 고민의 과정이었다. 그동안 밥 짓는 사람들은 계속 다치거나 아팠다. 대부분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았다. 크고 작은 화상, 미끄러짐, 베임이 발생했다. 아무 이상이 없는 줄 알았다가 암 진단을 받은 이들도 있다. 그래도 밥은 계속 지어졌다.

급식실에는 온통 무거운 것 투성이다. 스테인리스로 된 용기 안에 밥, 반찬, 국이 하나둘씩 채워지면 카트를 옮길 때 온 힘이 필요하다. 성동훈 기자

급식실에는 온통 무거운 것 투성이다. 스테인리스로 된 용기 안에 밥, 반찬, 국이 하나둘씩 채워지면 카트를 옮길 때 온 힘이 필요하다. 성동훈 기자

지켜야 할 것은 밥만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보건진흥원이 만든 ‘학교 급식실 산업안전보건 매뉴얼’과 ‘급식실 안전보호구 사용 가이드’를 통해 밥 짓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규정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살펴봤다.

산업안전보건 매뉴얼은 급식실이 왜 위험한지, 안전하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하고 있다. 학교 급식 종사자들은 2020년부터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면 적용을 받고 있다. 이 법의 목적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 증진’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인데, 급식 종사자들이 이런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은 건 4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조차도 노동조합이 ‘투쟁’을 통해 겨우 얻어낸 것이다. 안전보호구 사용 가이드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산업안전보건 매뉴얼을 토대로 급식실에서 쓰는 장비의 선정과 착용방법, 주의사항 등을 더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지침은 다 있다. 문제는 현장과의 괴리다.

보호구를 착용하고도 다친다

위험한 급식실에 이론적 매뉴얼만···“현장에 답이 있어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④]

급식 조리사들이 일할 때 입는 앞치마와 고무장갑, 팔토시, 장화는 ‘보호구’다. 현실에서는 보호구란 보호구는 다 착용하고도 다친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유혜진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 급식분과장(50)은 2018년 솥단지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후드를 닦다 화상을 입었다. 그는 2015년부터 6년간 학교급식실에서 일했다. 지금은 노조 전임으로 나와 서울 지역 급식실의 노동환경을 살피고 있다.

“저희가 독한 세제를 많이 써요. ‘오븐 클리너’라고 하는 건데 피부에 닿으면 피부가 그대로 타요. 분명히 방수 앞치마로 무릎을 감싸고 후드를 닦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븐 클리너가 앞치마 갈라진 틈을 그대로 통과하고, 바지 속으로까지 스며든 거예요. 따끔따끔해서 보니 피부가 타고 있었어요. 1년 넘게 치료했어요.” 유씨의 무릎을 보호해주진 못했지만, 방수 앞치마는 보호구 중에서도 물이나 화학물질 사용 작업 시 착용하는 ‘보호복’으로 분류된다.

급식실 벽 곳곳에는 이런 경고문이 붙어있다. 물과 불을 동시에 쓰는 급식실에서는 언제나 크고 작은 부상 위험이 있다. 무거운 것을 나를 일이 많아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다. (사진 아래) 권도현 기자

급식실 벽 곳곳에는 이런 경고문이 붙어있다. 물과 불을 동시에 쓰는 급식실에서는 언제나 크고 작은 부상 위험이 있다. 무거운 것을 나를 일이 많아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다. (사진 아래) 권도현 기자

오븐 요리가 늘어나면서 오븐 클리너를 쓸 일도 많아지고 있다. 교육부도 조리흄(조리과정에서 발생한 증기가 냉각되면서 발생하는 초미세입자)을 방지하기 위해 튀김, 구이 등은 오븐 요리로 대체할 것을 권장한다. ‘치즈가 들어간 오븐 요리’를 한 날은 특히 세척이 힘들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에 치즈가 많이 들어가요. 치즈 붙은 건 그냥은 안 벗겨지고 솥단지에 오븐 판을 넣고 세제랑 같이 삶아요. 삶아서 닦아야 그나마 잘 닦이거든요.”

뜨거운 상태에서 독한 오븐 클리너로 세척을 하면 김이 난다. 김을 바로 쏘이지 않기 위해선 보안경을 써야 한다.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보안경까지 끼면 습기가 차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개인별로 보안경이 지급되는 학교도 있지만 보안경 하나를 여럿이 돌려쓰는 학교도 있다. 후처리 작업 때 다른 사람들이 보안경을 쓰고 있으면 기다리거나 없는 채로 작업을 한다.

틀린 말은 없는데 왜 공허하죠

급식 조리사의 장화 위로 쌀 씻은 물이 쏟아지고 있다. 쌀 씻기, 재료 세척 등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전처리실에서는 특히 많은 물이 쓰인다. 권도현 기자

급식 조리사의 장화 위로 쌀 씻은 물이 쏟아지고 있다. 쌀 씻기, 재료 세척 등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전처리실에서는 특히 많은 물이 쓰인다. 권도현 기자

가이드는 ‘안전장화 사용 시 주의사항’에서 “가능한 한 바닥에 물을 흘리지 않고, 흘린 물기는 그 즉시 제거하여 조리실 바닥을 건조한 상태로 유지”하라고 안내한다. 급식 종사자들이 보기엔 “있을 수가 없는 환경”(김 위원장)이다. “교육청에서 1년에 두 번 위생점검을 나오면 그걸 굉장히 중요하게 봐요. 전처리하다가 재료가 떨어져도 (물을 뿌리지 말고) 그냥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거예요. 그런데 위생 측면에서라도 저희가 물을 안 쓸 수는 없거든요. 위생점검날은 되도록 물을 안 쓰려고 해요.”

특히 튀김 요리를 하는 날은 바닥이 기름으로 금세 미끄러워진다. 일을 하다말고 세제를 풀어 바닥을 닦을 인력도, 그럴 만한 시간도 없다. 급식 조리사들은 급한 대로 ‘굵은 소금’을 바닥에 뿌려가며 일을 한다. 소금이 기름을 흡수해 조금 덜 미끄럽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현장을 알면 이런 매뉴얼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매뉴얼을 만든 사람들이 급식에 대해 너무 모르는 상황에서 이론적인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선반 위에 각 교실로 급식차를 올려보낼 때 쓰이는 스테인리스 용기들이 쌓여있다. 성동훈 기자

선반 위에 각 교실로 급식차를 올려보낼 때 쓰이는 스테인리스 용기들이 쌓여있다. 성동훈 기자

가이드에는 ‘20원 기법’이라는 다소 생소한 내용도 있다. 미끄럼 방지 안전장화의 교체주기에 대한 것인데, 장화 밑창의 닳은 부분 넓이가 ‘10원짜리 동전 2개 크기 이상’이 되면 미끄럼 방지 기능이 상실되기 때문에 장화를 교체하라는 것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과거 자료에 있던 내용이다.

신발은 같은 기간을 신었어도 신는 사람이 누구인지, 신발이 닿는 바닥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교체 주기가 달라진다. 한국신발피혁연구원의 이수경 시험인증실 수석연구원은 “고무의 배합 형태에 따라서 미끄럼 방지 기능의 마모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가 닳으면 교체해야 한다’고 일반화시키기 어렵다”며 “타이어의 경우 ‘앞면의 날이 없어지는 정도’로 해서 마모 여부를 확인할 텐데 신발은 그런 게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다. 한국신발피혁연구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문생산기술연구원이다. 신발과 피혁 소재 및 부품 개발 등을 하는 곳이다.

급식실의 대형 솥뚜겅 사이로 위생모, 두건, 마스크를 쓴 급식 조리사의 얼굴이 보인다. 성동훈 기자

급식실의 대형 솥뚜겅 사이로 위생모, 두건, 마스크를 쓴 급식 조리사의 얼굴이 보인다. 성동훈 기자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실제 미끄럼 방지 기능 상실 여부를 판별할 때는 넓이보다는 밑창의 ‘골’이 어느 정도 깊이로 파였는지를 정밀하게 따져보지만, 현장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에 10원짜리 동전 2개를 예로 들어 쉬운 방법을 안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서는 급식실 물품 구매를 담당하는 영양사, 영양교사에 따라 장화를 몇 번 지급받는지가 달라진다. 유 분과장은 “장화 소독고에 장화를 거꾸로 뒤집어 놓거든요. 그럼 관심 있는 영양사 선생님들은 장화 바닥을 봐요. 그렇게 보고 바꿔주기도 하고요. 아니면 일을 하다 누군가 넘어져요. 신발을 보면 꼭 마모가 되어있거든요. 그렇게 바꾸기도 해요.” ‘좋은 사람’을 만나야 적절한 시기에 장화가 교체된다.

안전과 편의 사이…현장 의견을 들어주세요

한 급식 조리사가 방수 앞치마에 장화를 신고 걷고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치마가 바닥에 닿을듯 말듯하다. 권도현 기자

한 급식 조리사가 방수 앞치마에 장화를 신고 걷고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치마가 바닥에 닿을듯 말듯하다. 권도현 기자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를 보호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도 안전 규정을 지킬 의무를 부여한다. 문제는 안전과 편의가 부딪힐 때다. 어떤 안전한 장비는 착용자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보통은 안전을 위해 잠깐의 불편을 감내한다. 하지만 하루 종일 착용해야 하는 것이 계속 불편하다면 어떨까. 걸을 때마다 걸리적거린다면 어떨까. 어떤 보호구는 불편함을 넘어 예상치 못하게 안전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 안전과 편의 중간선은 누가, 어떻게 정해야 할까.

가이드는 ‘방수 앞치마 제품 선정 시 고려 사항’에서 “물을 많이 쓰는 환경에서도 외부 오염물질을 차단할 수 있도록 몸 전체를 감싸고 안전장화를 발목까지 덮는 사이즈(과하게 짧거나 길지 않도록 함)로 선정한다”고 되어있다. 앞치마가 발목을 가릴 정도로 길어야 장화 안으로 뜨거운 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 긴 것을 선택하라는 안내이다.

방수 앞치마와 장화를 착용한 모습. 앞치마를 키에 맞게 접어서 입었는데도 여전히 너무 길다. 앞치마에 가려 앞에선 장화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성동훈 기자

방수 앞치마와 장화를 착용한 모습. 앞치마를 키에 맞게 접어서 입었는데도 여전히 너무 길다. 앞치마에 가려 앞에선 장화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성동훈 기자

완벽한 방수를 위해서는 장화 입구를 덮을 수 있을 만큼 긴 앞치마를 착용하는 게 맞아 보인다. 실제 대부분 그렇게 착용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긴 앞치마’ 때문에 오히려 안전에 위협을 받는 경우도 있다. 급식 조리사 곽미란씨는 “장화가 고무 재질이잖은가. 그런데 앞치마도 비슷한 재질이니까 물에 젖으면 둘이 붙는다. 걸을 때 넘어질 것 같아 습관적으로 앞치마를 들고 다닌다”고 했다. 긴 앞치마 때문에 걷다 발이 꼬여 넘어지는 경우도 있다.

앞치마 길이가 짧으면 장화 안으로 물이 들어오고, 길이가 길면 걷기가 불편하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일일까. 곽씨는 “장화와 앞치마가 닿는 부분만 고무가 아닌 다른 재질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로 닿는 부분만 재질이 다르면 붙지 않아서 걷는 데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매일 불편함을 느껴본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다. 기능과 작업자의 안전을 동시에 보장하는 작업복은 입는 사람의 의견을 반영해야 만들어질 수 있다. 현장의 고충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배식이 시작되기 30분 전. 급식 조리사들이 다같이 모여 체리토마토의 꼭지를 따고 있다. 성동훈 기자

배식이 시작되기 30분 전. 급식 조리사들이 다같이 모여 체리토마토의 꼭지를 따고 있다. 성동훈 기자

급식 종사자들은 ‘현장을 직접 보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한 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 인력으로는 얼마나 단시간에 압축적인 노동을 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지급된 작업복과 장비가 제 기능을 하는지 직접 와서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교육청하고 협의를 할 때 ‘제발 현장에 한 번쯤 나와봐달라’고 얘기해요.” 유 분과장이 말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 과정을 봐야만 저 마스크를 쓰고 일할 수 있는지, 이 장갑만 써도 되는지 같은 걸 알 수가 있어요. 그런 게 없으니 그때그때의 대책만 나오는 거죠. 근본적인 대책이 없어요. 정책적으로 나라에서 뽑아놓은 사람들이잖아요. 교육부가 총괄해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작업복 기획팀
김한솔·김정화·박하얀(스포트라이트부), 성동훈· 권도현(사진부), 최유진· 모진수(뉴콘텐츠팀), 박채움·이수민(데이터저널리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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