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인권이 없냐”···미등록 이주노동자 ‘헤드록’ 연행 영상 논란

전지현 기자    김경민 기자

법무부 측 “외국인 도주에 목 잠시 잡은 것”

활동가들 “비인도적 단속 확립 위한 변명”

7일 경북 경주의 한 공단에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직원이 한 미등록 여성노동자의 목을 조르듯 붙들고 있다. 틱톡 갈무리

7일 경북 경주의 한 공단에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직원이 한 미등록 여성노동자의 목을 조르듯 붙들고 있다. 틱톡 갈무리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에 나선 법무부 직원이 여성의 목을 팔로 조르며 작업장 밖으로 끌어내는 장면이 지난 8일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확산되며 인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영상을 본 동남아시아 등지의 누리꾼들은 “한국에는 인권이 없냐” “동물처럼 끌고갔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50초쯤 분량인 단속 현장 영상은 지난 7일 오전 경북 경주의 한 공단에서 촬영됐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 남성 직원이 외국인 여성 노동자 A씨의 목을 팔로 감아 5초쯤 조른 뒤 다른 직원에게 “잡아달라”며 인계하는 모습이 담겼다. 인계받아 두 팔을 잡고 끌던 직원은 A씨가 몸을 빼려 하자 “왜, 왜 이 앞에 가면 돼”라고 반말하며 그를 작업장 밖으로 끌어냈다.

해당 영상은 페이스북과 틱톡 등 SNS를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했다. 한 게시물에는 신할리어(스리랑카어)로 “고생해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을 개처럼 끌고 갔다” “우리도 13명이 저렇게 잡혔어. 이걸 보니 정말 슬프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경향신문이 12일 만나거나 통화한 이주노동자와 활동가들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주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생활 반경이 더 줄어들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13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온 사잘씨(가명·36)는 “이 여자는 살인자도 아니고, 우리 외국인은 테러리스트도 아니다”라며 “이렇게 인권 없이 사람을 대하는 영상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 알던 지인이 잡혀가는 현장에서도 “너무 아프다, 잡지말라”고 했는데도 끌고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했다.

한국에 27년째 거주 중인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 잔타씨(가명·54)는 “SNS에서 영상을 접하자마자 인권 침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밥 먹는 시간에 쳐들어가듯 단속하는 것을 숱하게 봤지만, 이 영상은 심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불법으로 있는 것은 물론 문제이지만 4대 보험이 없는 회사에는 미등록 노동자뿐이다. 그건 개선 안하면서 단속만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7일 경북 경주의 한 공단에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직원이 한 미등록 여성노동자를 작업장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틱톡 갈무리

7일 경북 경주의 한 공단에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직원이 한 미등록 여성노동자를 작업장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틱톡 갈무리

법무부 훈령인 ‘출입국사범 단속과정의 적법절차 및 인권보호 준칙’은 출입국관리공무원의 가혹행위와 차별적 언행을 금지한다. 여성 외국인 단속 시에는 원칙적으로 여직원이 현장에 투입돼야 한다. 현장에서 단속된 외국인노동자들은 특별한 인도적인 사정이 없다면 통상 절차대로 강제출국 조치된다.

법무부 측은 “해당 공단에 있는 업체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여럿 고용했다는 제보를 받고 단속에 나섰으며 외국인들이 도주하려 하자 불가피하게 목을 몇 초 동안 잡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여성 직원 6명도 단속에 참여했지만 수십명이 도망쳐 불가피하게 남성 직원이 A씨를 붙잡은 것”이라고 했다.

활동가들은 법무부의 해명이 핑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경기도 포천 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는 김달성 목사는 “이주노동자 단속은 이번 사건처럼 인간 사냥하듯 토끼몰이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도망쳐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비인도적 단속을 확립시키기 위한 변명일 뿐”이라고 했다.

현 정부 들어 강화된 단속 기조 아래 과잉 단속이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활동가는 “보통 1년에 상하반기 2번이던 합동단속이 올해는 3번째”라며 “많이 잡으려고 실적 중심의 단속을 하다보면 당연히 이런 불상사가 생긴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아무리 단속을 해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줄지 않고 40만명에 달하는 근본적 이유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정부가 고령 사회를 대비해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데려온다면서도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환경은 악화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했다. 정 활동가는 “미등록자가 생기는 건 사람들이 비자를 잃기 쉬운 구조라서”라며 “정책적 결함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개인을 때려잡아선 해결되지 않는다. 체류권 부여 정책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무리한 이주노동자 근절 기조가 외교적 리스크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달 초에는 출입국당국이 태국인 관광객에게 깐깐하게 입국심사를 한 사실이 태국 현지에서 알려져 논란이 됐다. 태국 누리꾼들 사이에서 ‘반한 감정’이 일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과 태국은 비자 면제 협정을 맺고 있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 3일 “태국인 불법체류자가 올 9월 기준 15만여명으로, 2016년 이래 출신국가 중 1위”라며 “전자여행허가를 받았더라도 입국심사 시 입국목적이 소명되지 않거나 입국목적과 다른 활동이 우려되는 경우에 한해 입국불허가 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입국 불허대상자 중에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 태국 공무원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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