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지지 않았다” 20년 전 이주노동 권리 외친 이들이 본 2023년 한국

김송이 기자    배시은 기자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만난 섹 알 마문(49)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이 20년 전 투쟁하던 본인의 사진을 들고 있다. 배시은 기자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만난 섹 알 마문(49)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이 20년 전 투쟁하던 본인의 사진을 들고 있다. 배시은 기자

“20년 전이랑 지금이랑 얼굴이 똑같네.”

지난 14일 찾은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 1층 곳곳에는 20년 전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명동성당 투쟁 20주년을 맞아 ‘존재 선언’이란 이름의 전시를 준비하던 섹 알 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49)은 빨간색 노조 조끼를 입고 있는 청년 시절 본인의 사진을 찾아들었다.

2003년 11월 15일. 마문을 비롯한 이주노동자 100여명은 이날부터 꼬박 380일 동안 농성했다. 그들 중에는 마문처럼 아직까지 한국에 남아 있는 이도 있고, 투쟁 도중 고국인 네팔로 추방된 투쟁단 대표 서머르 타파(50)와 같은 이들도 있다. 이들은 왜 20년 전 명동성당 앞에 모였을까. ‘2023년 한국’은 그들이 그리던 미래와 얼마나 가까울까. 방글라데시 출신의 귀화 한국인인 마문은 대면으로, 네팔에 있는 타파는 온라인 화상회의 서비스 줌을 통해 만났다.

2003년 명동성당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투쟁단 대표를 맡았던 서머르 타파. 본인 제공

2003년 명동성당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투쟁단 대표를 맡았던 서머르 타파. 본인 제공

두 사람은 1990년대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연수생’ 신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존중받지도,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도 못했다. 휴일이 없어 과로에 시달린 것은 물론 임금체불도 횡행했다. 그런데도 비자를 포기하고서라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길 선택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타파는 “연수생 월급이 40만원이었는데 미등록이 되면 60만원을 받았다”며 “대신 비자가 없으니 경찰만 보면 무서워 숨어다녔다”고 했다.

산업연수생 제도가 더 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자 정부는 2004년부터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러고선 도입 전까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강제 출국시키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주변 동료들이 이주노동자란 이유로 다쳐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월급을 받지 못하던 모습을 지켜본 두 사람은 무차별 단속을 참을 수 없었다. 마문은 “당시 이주노동자 3명이 자살하거나 병원을 못 가서 죽었다”며 “그때 할 수 있는 일은 농성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380일간의 투쟁으로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렸다. 마문은 이 투쟁의 가장 큰 성과로 이주노조의 탄생을 꼽았다. 그는 “2005년 노조가 만들어지고 2015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노조 설립 필증을 받았다”며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 누구나 노조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타파는 “그때 우리보다 젊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좀 더 당당하게 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배로서 열심히 투쟁했었다”며 “‘우리도 한국의 노동자로서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 준비돼있는 2003년 농성투쟁 당시 사진. 배시은 기자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 준비돼있는 2003년 농성투쟁 당시 사진. 배시은 기자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현재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20년 전보다 후퇴했다”고 입을 모았다. 20년 전 그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제발 바꿔달라’고 외쳤던 때와 비교해 이주노동자 정책이 뒷걸음질 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마문은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기계’ 취급하는 것은 여전하다”며 “정책을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그는 20년 전부터 요구해 온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먼저 꼽았다. 고용허가제상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동의를 얻어야만 직장을 이전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9월부터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는 그마저도 사업장을 ‘권역 내’에서만 변경할 수 있게 됐다. 마문은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노동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기보다 차라리 미등록을 택할 것”이라며 “차별적인 지역 제한으로 인해 오히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최저임금 미만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움직임은 20년 전 노동자 인정을 못 받던 ‘연수생 제도’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타파는 한국에서 추방된 이후 네팔로 돌아가 중동 등지로 일하러 가는 고국 노동자들을 지원하며 ‘그래도 한국이 중동보다 일하기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다 올해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듣고는 한탄했다. “가사노동자 노동조건을 두고 중동의 여러 국가에서 우리가 많이 싸웠었는데 한국이 중동과 거의 비슷하게 돼 버렸다. 그러면 그동안 내가 얘기해 온 것들은 뭐가 되겠나.”

20년 전 농성투쟁의 계기가 됐던 ‘토끼몰이식 단속’도 다시 등장했다. 지난 7일 단속을 나온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목을 조르며 끌고 나가 논란이 됐다. 지난 3월 필리핀 미등록 이주민들은 교회 예배를 보던 중 연행됐고, 태국 이주민 수십 명은 공연장에서 체포됐다. 타파는 “20년 전에도 자다가 잡히고, 전철에서 잡혔었다”며 “그때랑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한국 정부와 이주노동자 모두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문은 “정부의 태도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진다”며 “2018년 제주도에 난민들이 들어왔을 땐 범죄집단이라느니 하는 여론도 일부 있었지만, 2021년 탈레반을 피해 한국에 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정부가 ‘특별기여자’라고 하니 시민들도 환영했었다”고 했다. 타파는 “이주노동자 개개인도 스스로 노동자라는 인식을 키워야 한다”며 “한국에 와서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돈을 벌어야 하니 괜찮다고 생각하기보다 노동자로서 지켜야 하는 권리와 책임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의 명동성당 투쟁기와 지금의 이주노동자들이 여전히 같은 권리를 외치고 있는 이유를 담은 전시 ‘존재 선언’은 내달 17일까지 열린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 준비돼있는 2003년 농성투쟁 당시 사진. 배시은 기자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 준비돼있는 2003년 농성투쟁 당시 사진. 배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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