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 통합’ 첫걸음 뗐지만…선결 과제 ‘산더미’

송진식 기자

정부조직법 개정안 국회 소위 통과…교육계 30년 숙원 실마리

서울 노원구의 한 직장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원구 제공

서울 노원구의 한 직장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원구 제공

[주간경향] 지난 11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건복지부가 관장하고 있는 영·유아 보육에 관한 사무를 교육부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개정안이 법사위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교육·보육계의 해묵은 과제인 ‘유보(영유아교육·보육) 통합’의 법적 근거가 처음 마련된다. 김교흥 행안위원장이 전체회의에서 “우리나라 영·유아 보육과 교육의 큰 흐름을 바꾸는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유보 통합 논의의 시작은 1995년 당시 김영삼 정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한 영·유아 보육은 보건복지부, 유치원부터 이후 교육은 교육부로 각각 나뉘어 있다 보니 취학 전 아동에 대한 통합적인 교육체계가 정립되지 못했다는 지적은 진작부터 있어왔다. 이원화된 행정으로 인한 예산·행정절차 등의 비효율성, 유치원과 어린이집 간 교육격차,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와 아동의 선택권 제한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유보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30년 가까이 끌어온 지난한 유보 통합 문제를 매듭지을 단초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행안위 통과를 “역사적”이라 평가할 수도 있다. 다만 오랜 세월 동안 분리 운영돼온 유보 운영을 통합하기까지 준비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유보 통합에 따른 교사들의 처우 논란, 재정 확보 및 전문인력 문제, 준비 미흡에 따른 교육 서비스의 질적 하락 우려 등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게 많아 이들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저출생·인구감소 “영·유아에게 투자해야”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취학 전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보육과 교육’이라는 공통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각각 다른 근거법, 관리기관을 통해 운영 중이다. 3~5세 유아가 다닐 수 있는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상 ‘학교’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운영과 관리·감독을 맡는다. 위탁 운영의 형태에 따라 국립·공립·사립 유치원으로 구분된다. 0~5세 영·유아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사회복지시설’로 규정돼 있다. 복지부와 각 지자체가 운영 및 관리·감독 주체다. 운영 형태도 다양해 국공립부터 법인·민간·가정·협동·직장 등 어린이집 종류만 7종에 달한다.

운영에 관한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예컨대 어린이집은 하루 12시간 동안 영·유아를 봐주지만 유치원은 교육시간(4시간)을 포함해 8시간가량으로 더 짧다. 시설을 설립하기 위한 조건이나 규정, 시설의 양도·양수·처분 관련 규정, 근무하는 교사들의 지위나 처우 역시 기관별로 다르다.

반면 재정과 교육과정은 동일하게 운영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모두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를 통해 예산을 지원받는다. 올해 기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지급되는 유아 1인당 교육비 지원금액은 28만원으로 동일하다. 유치원은 방과후 과정 지원비로 1인당 7만원을, 어린이집도 추가 보육시간을 위한 기관지원비·교사 처우 개선비 등으로 1인당 7만원을 지원받는다. 교육과정 역시 통합운영돼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3~5세 유아는 ‘누리과정’이라는 동일한 교육을 받는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 유보 통합 전면 철회를 위한 전국 교사대회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 유보 통합 전면 철회를 위한 전국 교사대회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유아가 3세가 되면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자유롭게 선택해서 다닐 수 있다. 동일한 재정과 교육과정에도 어린이집과 유치원 간 ‘교육격차’ 문제는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고, 이는 유보 통합 추진을 위한 가장 강력한 명분이자 동기로 작용했다. 유치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문제도 불거졌다. 교육부 유보 통합추진단의 집계를 보면 유치원은 유아 1인당 평균 월 16만8000원(2022년 교육통계)을, 어린이집은 1인당 평균 월 5만6000원(2021년 보육통계)을 학부모가 추가 부담하는 것으로 나온다.

한국유아교육대표자연대, 보육학계, 유보 통합범국민연대 등 64개 단체는 11월 28일 공동 성명을 내고 “교육재정의 투자 효과는 영·유아기가 가장 크지만 초유의 인구절벽 상황임에도 영·유아 재정투자 및 정책중요도는 매번 후순위로 밀려왔다”며 “법안이 통과돼 행정조직이 단일화되면 현장의 급변하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실효성 있는 영·유아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치원 반발 “졸속 추진, 재정은 확보됐나”

유보 통합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제시한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다. 유보 통합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행안위를 통과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복잡하지 않다. 현행 영·유아 보육 관련 행정을 관장하는 주체를 ‘복지부 장관’에서 ‘교육부 장관’으로 고치는 정도다.

법조문 개정은 이처럼 쉽지만 유보 통합이 현실화할 때까지 험난한 과정이 예고돼있다. 교육부는 올 1월 30일 유보 통합 계획을 공개하면서 올 하반기 중 유보 통합 선도교육청 선정, 2024년 유보 통합 선도운영 및 격차해소·통합기반 마련, 2025년 통합 시행이라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학계와 유치원, 어린이집 현장 관계자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유보 통합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로드맵을 마련 중이다.

유보 통합을 반대하는 측은 정부의 유보 통합 계획안이 다양한 의견수렴이나 소통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반발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정부가 유보 통합 내 직·간접적인 모든 관계자와 협의해 심사숙고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30년간 끌어온 문제를 2년 내 끝내려고 한다”며 정부의 계획안 철회 및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등은 지난 9월 공동성명을 내고 “성공적인 유보 통합을 위해서는 정부의 일방적·획일적 정책 성안이 아니라 유아 교육 여건과 교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공감과 합의를 통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시민단체인 행복한교육학부모회 관계자는 “교육 주체인 학부모들에게 유보 통합의 추진 과정을 제대로 알리고, 상세히 설명하고, 의견수렴도 해야 하는데 사회적 합의의 과정 없이 유보 통합이 졸속으로 강행되고 있다”며 “교육부에 약 3만개의 어린이집을 관리할 인력과 체계가 있는지, 모든 영·유아 교육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기 위한 예산은 확보돼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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