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상’ 입히는 다면평가, 최선입니까?

주영재 기자

동료의 부정적 평가 ‘팀워크 저해’ 부작용

‘인기투표’에 그치지 않으려면 평가 문항 정밀해야

Photo by Headwa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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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플랫폼 기업에서 팀장급으로 일하는 이수연씨(가명)는 최근 다면평가 결과를 받았다. 그와 함께 일했던 대부분의 동료가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임한다”, “연차의 공백을 느끼지 않게 한다”, “모범이 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적었다. 하지만 유독 한명만 줄곧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나와 별 상관 없이 지냈던 사람의 평가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가까이 일했던 동료 중의 한명이 비난에 가까운 평가를 한 것은 마음에 적잖은 상처가 됐다.

다면평가는 상사가 부하를 평가하는 전통적인 성과평가와 달리 상향식·수평적으로 이뤄진다. 이씨는 “다면평가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보는구나 알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그저 비난하기 위해서 익명으로 이야기하고, 그게 평가에 반영된다고 생각하니 위축된다”면서 “내 경우는 한명이지만 만약 대다수의 동료가 나에 대해 비판적이라면 회사를 못 다닐 것 같다”고 말했다. 다면평가가 의도치 않게 자발적 퇴사자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항 설계, 익명성 확보가 관건

연초 직장인 익명게시판에선 다면평가 결과가 적잖은 화제가 된다. 동료의 ‘악플’에 사이만 안 좋아지는데 왜 하냐는 말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주변 동료들이 잠재적 평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부담감을 느끼고, 누가 나에게 부정적 의견을 줬는지 의심하게 되면서 팀워크를 저해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거꾸로 이런 인식 탓에 좋은 말만 써주면서 덕담 나누기로 끝나는 사례도 있다. 인기투표에 불과하다며 깎아내리는 배경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다면평가도 장단점을 갖고 있다. 다면평가는 상사가 보지 못하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동료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오진욱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상사가 보는 시각과 동료 혹은 밑에 있는 사람이 보는 시각은 정말 다를 수 있다. 최대한 다양한 관점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명분은 명확한 제도”라고 말했다.

다면평가는 1940년대 처음 등장했다. 국내에선 1990년대 초 LG그룹이 최초로 도입했다. 현재 삼성그룹과 포스코, 네이버, 카카오 등의 기업에서 운영 중이다. 느리지만 조금씩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선 국내 기업의 20~30%가 다면평가를 시행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특히 최근엔 젊은 창업기업을 중심으로 다면평가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경영컨설팅 업체인 트리피의 엄명섭 대표는 “오래된 조직, 예를 들어 전통적인 대기업이나 중후장대(重厚長大) 기업들은 상명하복식의 군대문화가 있기 때문에 다면평가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반면 젊은 직원이 많은 기업일수록 다면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온정주의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따박따박 평가하는 걸 선호하는 성향이 강하다. MZ세대의 경우 기존 하향식 평가만으로는 조직에 대한 공감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면평가는 기업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대체로 평가를 받는 사람이 지난 한 해 자신과 일을 많이 했던 이들을 평가 대상자로 10명 내외로 선정한다. 여기에 상위 직책자가 업무 연관성을 고려해 사람을 추가하거나 빼는 형태로 평가풀을 만든다. 익명성은 다양하고 솔직한 평가를 이끌어내는 요소다. 다만 이런 익명성은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익명성에 기대 근거 없이 비난하거나 담합해 마녀사냥식으로 부정적 평가를 할 수도 있어서다.

결국 익명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려면 구체적 답변을 이끌어내는 문항 설계, 평가 결과 제공 시 극단적 표현 제외 등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평가를 관리하는 부서의 역할과 역량이 중요한 셈이다. 2021년 초 동료 리뷰 문항의 하나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묻고, 그 비율을 명시해 논란이 됐던 카카오의 경우 해당 문항을 삭제하고, 긍정적 피드백을 주는 방향으로 평가 방식을 개선했다.

박태윤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는 “개인의 발전을 위해 약간의 상처는 필요한 면이 있고 그게 피드백을 받는 중요한 이유다. 다만 너무 나쁘거나 좋다는 식의 극단적 의견은 제외하는 방식으로 평가의 정밀도를 조절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급적 상세하게 쓰도록 하면서도, 누가 썼는지 알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이 있다면 삭제하고, 감정을 상하게 할 만한 인신공격성 문항이나 표현은 걸러내는 형태로 익명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봉·승진 평가 활용보다 참고용 권장

평가자 교육도 중요하다. 평가자의 수가 늘어난 만큼 객관성이 높아질 수 있지만, 평가자의 평가 능력이 부족할 경우 오히려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엄명섭 대표는 “일반적인 평가가 직장 생활 경험이 쌓인 상사에 의해 이뤄지는 반면 다면평가는 경험과 경력이 짧은 젊은 직원들도 참여하기 때문에 평가자 교육이 일반 평가에 비해 훨씬 중요하다”면서 “평가자를 교육할 때 왜 해야 하는지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온정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다면평가를 연봉이나 승진에 활용하기보다 승진 심사의 참고자료나 리더십 개발 등 전통적 평가의 보완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적합하다고 조언한다. 박태윤 교수는 “다면평가는 피드백을 주는 용도로는 매우 유용한데 승진이나 연봉을 결정하는 용도로 쓰는 데는 주의해야 한다. 동료, 상사, 부하 등 업무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서 피드백을 받는데 그들이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다시 말해, 아랫 사람의 평가에 따라 내 연봉이 결정된다면 자칫 리더십과 성과를 발휘하기보다 인기에 영합하려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의 경우 동료 평가 결과 중 전문성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을 점수화해 지표로 제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정성적 기술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자신의 직책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주변의 구체적인 평가를 받아야 그 평가에 기반해 행동의 변화나 자기 계발을 이끌어낼 확률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등급이나 숫자로 평가하기보다 어떤 ‘이벤트’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이런 부분을 잘했고, 이런 부분은 보완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기술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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