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시럽급여’?···비자발적 퇴직자 절반은 “받지도 못했어요”

조해람 기자

직장인 64% “정부 실업급여 개편 부적절”

지난해 11월15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해 11월15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회사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된 A씨. 원치 않는 비자발적 퇴사였지만 회사는 지꾸 ‘위로금을 주겠다’며 퇴직사유를 ‘일반사직’으로 처리하려 했다. 일반사직으로 등록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A씨는 “정부지원금을 받는 데 지장이 생길까 봐 실업급여를 안 해주려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를 그만둔 B씨도 실업급여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퇴사 사유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적었더니 회사는 ‘퇴사 사유를 개인사유로 적었으면 실업급여를 해 주려 했는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적었으니 실업급여를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비자발적 퇴직자 절반 이상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자가 퇴사 사유를 ‘자발적 퇴직’으로 쓰라고 협박하거나, 퇴사 사유를 퇴직자 몰래 바꾸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업급여 수급을 막고 있었다.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정부가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삭감 등 제도 개편에 나서선 안 된다고 했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2월4일~11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지난해 직장인 12.3%가 실직을 경험했다. 비정규직(20.5%), 5인 미만 사업장(17.5%), 월 임금 150만원 미만(16.2%)에서 더 많이 실직했다.

실직자의 74.1%가 해고·권고사직·희망퇴직·계약만료 등으로 인한 ‘비자발적 실직’을 겪었다. 하지만 이들 중 54.9%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정규직은 61.3%가 실업급여를 받은 반면 비정규직은 36.7%만 실업급여를 받았다.

지난해 11월15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해 11월15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직장갑질119는 직장인들의 제보를 분석한 결과 사용자가 퇴사 사유를 사실대로 쓰지 못하도록 협박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실업급여를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잦았다고 했다. 퇴사 사유를 바꾸기 위해 협상·회유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개발자 C씨는 “상급자가 회의시간에 ‘사직서를 내라’며 사유를 ‘개발 미비에 따른 피해’라고 적으라고 했다”며 “제출을 거부하자 지하로 책상을 옮기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했다.

설문 결과 직장인 51.4%는 ‘실직 등 상황에서 한국의 사회보장제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정부가 실업급여 하한액을 폐지하거나 없애는 등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는 64.0%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는 ‘실업급여 수준이 너무 높아 구직자들의 구직의욕을 꺾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당시 정부와 국민의힘은 ‘시럽급여’ ‘샤넬’ 등 발언으로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한발 물러섰지만 제도 개편은 진행형이다.

조영훈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실업급여 하한액을 하향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취업과 실직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등 일터 약자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지금 정부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이들 일터 약자들의 잦은 비자발적 이직과 실업급여 미수급이란 사회적 위험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있다”라고 했다.

이 조사는 여론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수행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 더 알아보려면

작년 7월 갑자기 불어닥친 ‘시럽급여·샤넬 사태’, 많이 기억하실 겁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실업급여가 너무 많아 고용보험 재정이 위태롭고 구직자들의 취업 의욕도 꺾고 있다며 제도 개편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울의 한 고용센터 실업급여 담당자는 “여자분들, 젊은 청년들이 쉬겠다고 하면서 온다” “실업급여 받는 기간에 해외여행을 가고 샤넬 선글라스를 사거나 옷을 사며 즐긴다”고 하기도 했죠. 여론이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는 한 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제도 개편을 포기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실업급여는 정말 달달할까요? 경향신문은 구직 기간 실업급여를 받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실업급여를 둘러싼 논란에서 정부가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도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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