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희생 뒷전, ‘공산주의 반란’ 몰아가기…여순사건 조사과제 논란

강현석 기자

기획단, 반란·좌익 개입 등에 초점 맞춰 조사
단원 상당수 뉴라이트, 비대위 “학살 정당화”

여순사건 당시 한 여성이 사망한 희생자들 사이에서 남편을 찾고 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여순사건 당시 한 여성이 사망한 희생자들 사이에서 남편을 찾고 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진상보고서를 작성할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기획단)의 조사과제를 두고 지역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 기획단이 무고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서는 밝히려 하지 않고 공산주의 반란과 좌익 개입 등에 조사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여순사건진상조사기획단 역사 왜곡 날조 비상대책위원회는 5일 전남 순천시 전남도청 동부청사에서 유족과 관련 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전남도민 비상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기획단이 선정한 ‘진상조사 과제’가 여순사건을 공산주의 반란과 혁명으로 규정하고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12월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을 위해 구성된 기획단은 최근 20개의 조사 과제를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기획단은 보고서에 사용할 용어를 ‘14연대 무장봉기(반란)’에서 ‘14연대 반란’, ‘진압’을 ‘토벌’, ‘민간인협력자’를 ‘민간인가담자’로 바꾸기로 했다.

선정 과제 상당수는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공산주의와 좌익세력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4연대 반란의 발생과 확산 및 정부의 조치와 군의 토벌과정’ 과제는 공산주의 혁명전략, 행위자들의 소영웅주의를 포함해 조사하도록 명시했다. ‘14연대 반란과 외부행위자들의 개입 범위와 역할’ 과제에서도 남로당과 북한, 소련 및 중공의 역할을 규명토록 했다.

‘14연대 반란과 지역민 및 좌익단체의 개입범위와 역할’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또 ‘6·25전쟁 발발 이후 여순사건 관련자들의 활동과 토벌작전’ ‘여순사건 재소자들의 형무소 내 소요폭동 사건’ 도 조사 과제로 선정했다.

지난해 11월 전남 담양군 대덕면의 야산에서 확인된 여순사건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골. 1950년 7월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은 머리뒤로 손을 올리고 있다. 전남도여순사건지원단 제공

지난해 11월 전남 담양군 대덕면의 야산에서 확인된 여순사건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골. 1950년 7월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은 머리뒤로 손을 올리고 있다. 전남도여순사건지원단 제공

하지만 당시 적대적 세력들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조사는 ‘여순사건 당시 군경 및 민간이 희생자의 피해 규모’ ‘여순사건 이후 희생자 및 유족의 시기별 피해양상’ 2개 뿐이다. 기획단은 진상규명조사활동 종료 이후 6개월 이내인 2025년 4월 5일까지 종합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기획단은 또 20개의 과제 중 3건만 직접조사하고 나머지 17개는 외부 용역을 줄 방침이다. 이에따라 기획단이 제시한 과제는 용역과정에서 ‘조사 지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비대위 주장이다.

이같은 과제 선정은 기획단 구성에서부터 예견됐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위촉한 기획단원 중 상당수가 뉴라이트 계열로 알려졌다. ‘뉴라이트 한국현대사학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인사와 박근혜 정부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을 지지한 인물, 4·3사건 특별법을 비판해온 인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전·현직 연구원, 육사 교수 등이 포함돼 있다.

비대위는 “여순사건특별법은 ‘여순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된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을 목적으로 제정됐다”면서 “그런데 기획단은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반란으로 규정해 진압과 민간인 학살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12월 31일 마감된 여순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피해 신고에는 7465건이 접수됐다. 대부분 1948년에서 1954년까지 적대적 세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가족의 억울함을 밝혀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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