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부족·증원에 공감하지만…의료 취약층 위한 논의는 없어”

전지현 기자

“휴학·사직에 반대”…집단행동에 ‘다른 생각’ 가진 의대생·전공의들의 목소리

“의사 부족·증원에 공감하지만…의료 취약층 위한 논의는 없어”

정부 ‘부족 → 증원’만 강조
‘왜·어떻게’ 논의는 빠져
사각지대 줄일 방법 등
‘공익’ 실현 고민해야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의과대학생 A씨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한다. 다만 의대 정원 증원이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 공공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공의 집단사직·의대생 동맹휴학 등 집단행동이 계속되고 있지만 의사 커뮤니티 내에는 그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존재한다. 지난달 인스타그램에 등장한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다생의)’ 계정이 대표적이다.

‘다생의’가 인스타그램에 소개한 모임 취지는 ‘2024년 의대생의 동맹휴학과 전공의 파업에 동의하지 않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구성원 신원을 철저히 감추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생의 구성원인 A씨와 지난 5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A씨는 사전에 질의를 받은 다음 다생의 구성원들과 토론을 거쳐 답변 내용을 정리했다고 했다.

A씨는 지난달 20일 시작돼 3주를 넘긴 정부와 의사 간의 강 대 강 대치에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들의 현실’이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A씨는 “공공성이란 소수에게 가닿을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의료 취약지역 주민과 장애인·이주민·성소수자 등 의료 시스템에서 소외된 환자를 얼마나 다양하게 상정하고 논의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취약지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나 교육이 미비해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며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의료 공백이나 사각지대 문제가 완화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생의 구성원들은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에만 쏠리는 이목에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사단체 간 힘겨루기에만 관심이 쏠리다 보니, ‘왜 증원이 필요한지’ ‘의료 공공성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못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의사가 부족하니 증원해야 한다’는 논리를 넘어 의료 사각지대를 줄일 방법을 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의사단체의 집단행동이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집단행동이 시민들의 건강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탓”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의사들이 앞으로 공익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이며 시민들이 가진 오해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생의 구성원들은 병원·학교로 돌아오는 전공의·의대생이 적은 이유 중엔 집단행동을 이탈하기 어려운 의료계 내부의 분위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A씨가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하면서도 휴학계를 내고 학교로 돌아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A씨는 “2020년 동맹휴학 때 복귀하자고 한 의대생은 그 이후 대학병원에 수련의로 가서도 ‘너 그때 반대했었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의료계는) 의대 동기가 동료가 되고, 대학병원은 직장이 되고, 교수님은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폐쇄적인 사회”라며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실존하는 두려움”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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