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사이즈’, 여성을 재단하다

이수민 기자

한국 여성복 ‘프리’는 M사이즈보다 작다

여성복 39%가 ‘프리’, 남성복은 7%에 불과

한국에선 ‘프리’가 ‘단일한 작은 사이즈’로 변질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가게에서 시민들이 야외에 진열된 여성 의류를 둘러보고 있다. 여성복의 ‘프리사이즈’는 대체로 작은 크기여서 소비자의 선택 폭을 좁힐 때가 많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가게에서 시민들이 야외에 진열된 여성 의류를 둘러보고 있다. 여성복의 ‘프리사이즈’는 대체로 작은 크기여서 소비자의 선택 폭을 좁힐 때가 많다. 연합뉴스

20대 여성 박모씨(25)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고를 때마다 고민이다. 여성복은 단일 치수인 ‘프리사이즈’로만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옷 크기를 짐작하기 어렵고 대체로 작기 때문이다. 최근 몸무게를 감량한 20대 여성 송모씨는 “살 빼기 전에는 프리사이즈는 그냥 걸러야 했다”며 “살 빼고 이제는 맞겠지 싶어 프리사이즈를 샀는데 여전히 작아서 못 입고 있다”고 말했다.

8일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가 대표적인 의류 온라인 쇼핑몰인 무신사와 29CM에서 최근 올라온 여성복 4만5678개의 상품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전체의 39%(1만7835개)가 프리사이즈로 판매되고 있었다. 5개 중 2개가 프리사이즈인 셈이다. 남성복이 4만4939개 중 6.8%(3034개)만 프리사이즈인 것과 비교해 보면 여성복의 프리사이즈 판매가 두드러진 편이다. 여성복은 사이즈 숫자 자체도 적었다. 남성복은 의복 한 벌당 평균 3.3종의 사이즈를 갖고 있는 반면, 여성복은 사이즈가 한 벌당 평균 2종에 불과했다.

‘프리사이즈’, 여성을 재단하다

프리사이즈는 본래 품이 넉넉하거나 신축성이 있어서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 신체 치수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단일치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프리사이즈는 ‘프리’라는 이름과 달리 사실상 ‘단일한 작은’ 사이즈를 강요하는 도구가 돼 가고 있다. 특히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의류에서 프리사이즈가 두드러진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부인복 브랜드는 사이즈가 상대적으로 다양한 편이지만, 최근에는 젊고 날씬한 몸매를 강조하면서 프리사이즈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의 ‘프리사이즈’ 판매는 해외 쇼핑몰과 비교해도 유독 많은 편이다. 해외의 한 소셜미디어 이용자는 ‘한국에서 겪은 문화충격’ 중 하나로 “의류, 특히 여성복은 대개 한 가지 사이즈가 붙어 있다”고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다이브가 세계적 의류 브랜드인 자라(ZARA)와 에이치앤엠(H&M)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여성복 3378개 품목을 분석해 보니 프리사이즈가 0.09%(3개)로 거의 없었다.

‘마르고 날씬한’ 이미지에 갇히다

‘프리사이즈’, 여성을 재단하다

여성복의 프리사이즈는 얼마나 ‘작은’ 사이즈일까? 쇼핑몰에 올라온 의류에 기재된 치수를 수집해 보니 무신사의 여성복 상의 1만856개 중 프리사이즈의 평균 가슴단면은 49.1㎝로, 중간 사이즈라고 할 수 있는 M사이즈 평균 51.2㎝보다 작았다. 그보다 작은 S사이즈 평균 47.8㎝보다는 약간 큰 편이었다. 총장의 경우는 프리사이즈 평균이 55.8㎝로 S사이즈 평균 55.8㎝와 거의 똑같았다. 가장 작은 XS사이즈의 총장 평균 54.3㎝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무신사의 한 남녀공용 반팔 셔츠는 S, M, L 사이즈로 판매하는데 이 중 가장 작은 S사이즈를 ‘여성 전용 프리사이즈’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여성복에 상대적으로 작고 단일한 프리사이즈를 많이 내놓는 이유는 우선 ‘마르고 날씬한’ 이미지에 갇힌 획일적인 미의 기준 탓이 크다. 김진영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는 “한국 여성들은 미에 대한 기준이 비슷하고 몸무게나 사이즈에 대한 강박이 있다”며 “사이즈가 없으면 생산자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몸이 뚱뚱하다며 본인을 탓하면서 다이어트를 해서 기준을 맞추려고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인식을 확인하기 위해 무신사에서 여성 4만6469개, 남성 7만2979개의 리뷰(상품별 최대 10개)를 수집했다. 리뷰에 나타난 단어의 빈도수를 분석한 결과 여성이 작성한 리뷰에서는 ‘날씬’이 383차례나 등장한 반면 남성에게서는 44차례만 나왔다. ‘통통’의 경우에도 여성이 160회 등장한 반면 남성은 38회에 그쳤다. ‘뱃살’의 경우 여성이 101회 등장한 반면 남성은 41회였고, ‘팔뚝살’도 61회와 6회로 남녀 차이가 컸다.

‘프리사이즈’, 여성을 재단하다

‘팔뚝살’이 포함된 리뷰에는 “팔뚝살 다이어트 뽐뿌는 덤”, “m사이즈 품절이어서 s했는데 제 팔뚝살이 상당히 상당하네요” 등이 있었다. 각 리뷰를 남긴 여성 소비자가 밝힌 몸무게는 53㎏, 48㎏이었다. 2021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통계에 따르면 20대 여성 평균 몸무게는 58㎏, 30대 여성은 59.5㎏이다. 평균에 비해 살이 쪘다고 보기는 어려운 몸무게임에도 스스로가 ‘살이 쪘다’고 느끼고 있는 셈이다. 여성이 남긴 리뷰 중에서는 “세트로 샀는데 조금 작아서 살 더 빼서 입어야겠어요”처럼 옷에 자신의 신체를 맞추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글도 있었다.

여성이 작성한 리뷰에는 ‘허리’(3893회), ‘엉덩이’(1054회), ‘팔뚝’(174회)과 같은 신체와 관련된 단어도 남성보다 많았다. 남성이 작성한 리뷰에서는 같은 단어인 허리가 4034회, 엉덩이 376회, 팔뚝 25회에 그쳤다. 수집한 리뷰 중 남성이 작성한 것이 여성의 2배 가까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체 관련 언급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여성 대부분은 몸무게에 강박이 있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성인의 체질량지수 분류에 따른 체중감소 시도율 및 관련요인(2013~2021)’ 연구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15.1%는 저체중이다. 그런데도 20대 저체중 여성의 16.2%는 체중감소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 강박 위에 생산자의 편의 더해져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러 사이즈를 다양하게 내놔도 큰 옷은 잘 팔리지 않는다. 의류쇼핑몰 리즘의 류수민 대표는 “여성들은 모델처럼 마른, 날씬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서 수요를 따라가는 측면도 있다”며 “마르고 날씬한 여성이 옷을 더 많이 살 것이라고 가정해서 그에 맞춰 단일사이즈를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류쇼핑몰 ACBF를 운영하는 김수정 대표는 “S, M, L 사이즈를 만들어도 대부분의 소비자가 S나 M을 선택하고 나머지 사이즈는 수요가 거의 없다”며 “3년 전에도 밸런스가 안 맞았는데 지금은 격차가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판매자나 생산자 입장에서도 옷을 단일사이즈로 제작하면 유리하다. 의류 산업에서 재고 처리는 어려운 문제다. 다양한 사이즈로 제작하면 할수록 재고도 많이 발생한다. 어떤 사이즈는 많이 팔리고 어떤 사이즈는 남게 되는 것이다. 단일사이즈로 제작해 판매하면 이런 부담이 줄어든다. 옷을 제작할 때도 단일사이즈로 만들면 효율적인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의류브랜드 ‘66100’ 매장에서는 기성복의 표준 치수보다 큰 다양한 스타일의 플러스 사이즈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 백준서·양다영 PD

의류브랜드 ‘66100’ 매장에서는 기성복의 표준 치수보다 큰 다양한 스타일의 플러스 사이즈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 백준서·양다영 PD

여성복의 특성도 한몫한다. 여성복은 남성복보다 종류가 다양하고 시장규모도 더 큰 편이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키나 어깨 넓이 등 신체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기 때문에 종류보다는 사이즈가 더 다양하게 요구되기도 한다. 김수정 대표는 “여성복을 만드는 입장에는 옷의 종류를 다양하게 갖춰야 하는데 이걸 다시 사이즈별로 쪼개다 보면 관리해야 할 품목이 너무 많아진다”며 “그러다 보니 프리사이즈로 가되 제품 종류를 늘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류수민 대표는 “우리나라 브랜드의 사이즈가 전반적으로 작게 나오는 편인데 여성복은 더 작게 나오는 편”이라며 “여성복은 시장이 크고 소규모 브랜드들이 많은데 자본은 많이 없다보니까 작은 사이즈에 맞춰서 생산하게 되는 악순환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복의 유행도 단일 프리사이즈 제작에 영향을 끼친다. 최근에는 와이드핏(허리선부터 바지 끝단까지 넉넉한 옷)이 유행하고 신축성이 있는 편안한 캐주얼이나 조거팬츠, 후드, 니트 티셔츠를 많이 입기 때문에 프리사이즈 제작에 유리하기도 하다. 김수정 대표는 “크롭 기장 등 짧은 옷도 유행하고 있는데 이런 옷들은 신체 일부만 가리면 되기 때문에 더욱 사이즈를 나눌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사이즈가 필요하다

한국 여성복에 두드러진 ‘프리사이즈’ 문화는 소비자의 미에 대한 강박관념과 그에 편승한 생산자의 편의성이 결합돼 심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진영 교수는 “생산자 입장에서는 단일품목만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과,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준에 맞는 옷을 입는다는 미에 대한 강박이 만나서 여성복에 프리사이즈라는 개념이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소비자들은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20대 여성 윤모씨는 “여성복을 주로 파는 사이트에서 프리사이즈를 사면 작아서 못 입고 결국 환불하게 된다”며 “남녀공용으로 나오는 프리사이즈는 헐렁해서 입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대 여성 박모씨는 “다양한 사람들의 체형에 맞는 사이즈를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복의 프리사이즈 트렌드가 한순간에 변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몸에 맞는 옷을 찾는 소비자의 노력이 생산에 변화를 가져온 경우도 있다. 김수정 대표는 “(작은 사이즈 때문에) 여성복에 지친 소비자들이 남성복을 대거 구매하면서 남성복 매출이 늘었고 이에 따라 젠더리스(성별 경계가 없는) 브랜드도 이전보다 많이 보편화됐다”며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더 편안한 옷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공급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다소 먼 미래의 이야기 같지만 해외 브랜드 코페르니는 컬렉션 쇼에서 ‘스프레이 드레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스프레이를 몸에 뿌리면 원단으로 변하면서 자신의 신체에 꼭 맞는 옷이 되는 제품이다. 김진영 교수는 “의류산업은 다양한 사이즈를 구비해야 하기 때문에 과잉생산과 환경오염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시켜 줄 미래 대안으로 생각되는 실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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