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어요. 하지만 기후행동으로 내 삶이 바뀌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때로는 아주 절박한 생계 문제와 이어지기도 해요.
최근 트랙터를 몰고 거리로 나온
유럽 농민들이 그랬습니다. 유럽연합의 환경규제를 이유로 독일·프랑스 정부가 농업용 연료 보조금을 삭감하자, 참다못한 농민들이 분노를 터뜨린 것이었죠.
뉴욕·런던의 '자동차 줄이기' 실험에도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반발이 나옵니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예요. 소득이 적을수록 '혼잡세' 비용은 더 부담스러울 겁니다. 친환경 차량으로 교체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거고요.
필요한 건 기후행동으로 인한 삶의 변화가 꼭 손실과 희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사회 구성원들이 고루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가 '차 없는 도시'에서 함께 누리게 될 긍정적 변화를 시민들에게 거듭 설명하고 경험하게 함으로써 '정의로운 전환'을 이뤄냈듯 말입니다.
차 없는 도시는 불편할 겁니다. 도시가 차를 억제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추가로 더 쓰게 될 비용이나 시간 등 수치화된 손실이 먼저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숫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삶의 변화들도 있습니다.
'차 없는 도시'를 앞서 실험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바르셀로나는 주택가에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고 녹지 광장을 만든 '슈퍼블록'을 도입했는데, 슈퍼블록 내 정신건강 치료와 항우울제 사용이 13% 감소했다고 해요. 자동차 통행 혹은 운전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만큼 심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손실에 비해 눈에 띄지도, 장부에 먼저 적히지도 않겠지만 기후행동으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는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있습니다. 류블랴나가 그랬듯이, 이런 개선을 더 발견하고 발명하여 시민들을 설득하는 시도가 더 필요합니다. 기후변화는 중요한 목표이니 힘들어도 그냥 따라오라는 강요가 아니라요.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차 있는 도시'의 지향이 오히려 뚜렷해지고 있어요.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가
칼럼에서 잘 설명했듯 대중교통비가 오르는 사이 유류세 인하는 연장되었고, 자동차에 부과되었던 건강보험료는 폐지되었으며, 남산 혼잡통행료는 한 방향에만 부과하는 것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대중교통전용지구였던 서울 신촌의 연세로엔 다시 차가 다니고 있죠.
정부는 유류세, 건강보험료, 혼잡통행료 등 시민이 지게 될 뚜렷한 손실에만 집중해 기후행동 자체를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아요. 기후행동이 희생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더 좋은 삶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설득 자체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설득과 대화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회피해서는 안 될 텐데요. 세계 125개국 시민 중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소득의 1%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10명 중 7명이나 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시민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변화의 의지를 깨우고 모으는 일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