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 울리는 무상보육

문주영 전국부 기자

둘째 아이가 올해 세 살, 법정 나이로는 만 1세다. 큰아이도 우리나라 나이로 4살 되던 만 2세 때 어린이집에 보냈던 터라 몇 달 전부터 주변 어린이집을 기웃거렸다. 하루 종일 베이비시터에 의존해 아이를 맡기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구립 어린이집 두어 군데에는 이미 재작년에 대기 신청을 해놨다. 그러나 국공립 어린이집은 아기의 주민번호가 나오기 무섭게 신청해야 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맞벌이 1순위인데도 순위가 한참 처져 있어 민간 어린이집이라도 알아봐야 하던 참이었다.

[기자 칼럼]직장맘 울리는 무상보육

그런데 큰아이가 다녔던 민간 어린이집에서 이상한 말을 들었다. 큰아이가 그곳에 재밌게 다녔고 또 유치원으로 옮길 때 “둘째도 언제라도 키워줄 테니 오라”며 살갑게 작별 인사를 했던 원장의 말이 기억에 남아 이곳에라도 둘째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참 달라져 있었다. 언제쯤이면 들어갈 수 있는지 묻자 어린이집 측은 대뜸 “순위에 상관없이 아파트 해당 단지 주민의 자녀가 더 앞선다. 협회를 통해서 질의해 그렇게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돼 “그럼 1순위인 맞벌이보다 3순위 전업주부라도 단지 주민이면 우선권을 갖는다는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서울시 보육과에 여러 차례 물어봐도 공무원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만 했다. 무상보육으로 인해 민간 어린이집에 대해서도 정부 지원금이 100% 나가기 때문에 국공립 어린이집과 동일한 기준으로 아이들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무상보육 실시 이후 어린이집에서 저녁 늦게까지 돌봐줘야 하는 직장맘 자녀들을 회피한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설마 했는데 내가 직접 그런 일을 겪으니 당황스러웠다. 해당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어린이집 운영비를 지원해주는 것도 아닌데 법정 순위를 무시하고 주민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말은 어린이집이 원하는 아이들을 골라 받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이 안됐다.

무상보육, 취지 좋고 기꺼이 환영한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높이기냐, 아니면 출산 장려냐에 따라서 정책의 세부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중심의 무상보육 정책은 결과적으로 직장 다니던 여성들도 직장을 그만둬야 어린이집에 애를 맡길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무상보육의 목적이 저출산 탈출을 위해서라면 지금처럼 직장맘 자녀를 위한 종일반 체제의 어린이집들이 일반 가정에서도 양육이 가능한 자녀들을 함께 돌보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주부들이 장보기, 병원 가기, 운동하기 등 일이 있을 때마다 잠깐씩 또는 반나절씩 맡길 수 있는 시간제 보육시설을 만들든지, 아니면 베이비시터 인력을 제대로 양성해 필요한 가정에 무상 파견해주는 형식으로 다변화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지금처럼 ‘무상보육’할 것이라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제 돈 내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이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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