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딜레마

박민영 | 문화평론가

당신이 정부 기관에 공적 정보의 열람을 요청했다 하자. 기관은 십중팔구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런 요구를 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왜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가?’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도, 당신이 보통 시민이라면 정보 열람은 대부분 거절될 것이다. 이유를 물으면 ‘상부의 허락이 내려진 바가 없다’ ‘그런 선례가 없다’ ‘법률이나 내규에 따라 알려줄 수 없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별별시선]기밀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딜레마

흔히 사람들은 정부가 정보를 보여주지 않는 것을 예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이다. 정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예외이다. 기관들은 외부에서 요청된 정보 공개는 일단 거절하고 보는 것이 원칙처럼 되어 있다. 기밀주의의 뿌리는 넓고 깊다. 정부 기관들은 업무 중 알게 된 정보의 공개를 금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서약을 받는 경우도 많다. 기밀주의는 정부의 주요 조직문화이다.

‘국민의 알 권리’는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문제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지도자들의 결정이나 행동에 대해 정보를 갖고 있는 국민을 필요로 한다. 정보가 있어야, 자기 견해를 갖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국민들은 투표할 권리, 의사를 표현할 권리에 대해서는 안다. 그러나 상층부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런 결정들은 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좀처럼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던 것을 누군가 빼앗아간다면 금방 눈치 채고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던 것을 인식하고 문제 삼기란 어렵다. 사람들이 기밀주의에 무관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를 지지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행위도 정보에 대한 권력의 통제와 재량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지하든 비판하든, 그 토대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통제된 정보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견해들이 얼마나 유효한지도 알 수 없다.

저널리즘은 사실 보도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사실 자체가 은폐되면, 그 원칙도 소용없다. 기밀주의가 심해지면 언론은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진다. 그 외에 정보를 얻을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일한 뉴스원이 되면 언론은 정부의 입장은 물론 비판적 견해까지도 공직자들의 발언에서 발견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 결과 정책에 대한 대국민 설득은 물론 비판적 의견까지도 권력 내부에서 관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권력은 기밀이 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시행하는 것을 국민이 모르는 것이 유익하다는 가설이다. 국민은 마땅히 국가가 자신들의 요망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가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국민은 정부가 하는 일을 그저 믿어야 할 뿐이다. 이러한 가설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나 전체주의에 어울리는 것이다.

기밀주의는 위험하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통킹 만 사건’(1964년 미 구축함이 통킹 만에서 작전 수행 중 북베트남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다고 알려진 사건) 조작이다. 이 사건은 1969년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원이었던 다니엘 엘스버그의 기밀문서 폭로로 조작되었음이 밝혀졌다. 엘스버그는 후에 자신을 포함해 “보좌관 이상의 관료들 중 현대 베트남사에 대해 대학 1학년 수준의 시험에도 패스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런 자들이 비밀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결정되었고, 백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권력은 자신의 안전과 이익, 실패와 부패를 숨기는 수단, 자기 조직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기밀주의를 이용한다. 정보가 통제되면 국민은 정부의 선택 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검토되지 않았던, 채택되지 않았던 방안 중에 더 좋은 것이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기밀은 민주적 논의와 판단의 범주 밖에 있다. 그러므로 그릇된 편견과 선입견을 반영하고 있다 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없다. 기밀이 오랫동안 유지된다면, 법적·도덕적 책임을 피하는 것도 가능하다.

공적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국민과 정부가 전달하는 정보를 전달받는 국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밀이 많아질수록 민주주의적 가치에 반하는 권력의 증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밀이 국민을 기만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기밀로 지정하는 특권’ 역시 민주적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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