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과 ‘창조경제’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10월18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제94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진행자는 “조국근대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경북도선수단이 입장하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했고, 경상북도 선수단(다시 반복하지만, 체육을 하는 선수들이다. 새마을운동 경북지부 이런 분들이 아니고)은 새마을 상징이 찍힌 초록색 스카프를 흔들며 경기장에 들어섰다. 전국체육대회와 새마을운동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체육인들은 선명한 초록색 스카프를 흔들었다.

경상북도의 두 지자체, 포항시와 청도군, 청도군과 포항시는 각각 새마을운동 발상지라 주장하고 있다. 마치 원조집을 주장하는 유명 음식거리의 식당처럼, 원조 간판을 수성하기 위해 각자 연구소에 연구도 시키고, 기념관도 만들었다.

[별별시선]새마을운동과 ‘창조경제’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에 보면 어떻게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는가를 설명한다. 1971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문성리를 방문하여 비교행정회의에서 “전국의 시장 군수는 문성동과 같은 새마을을 만들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흔히 자발적 마을 가꾸기 운동이라 널리 칭송되는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다.

새마을운동의 가치와 의미를 논하자는 건 아니다. 옳고 그름이나 공과도 평가하고 싶지 않고, 그럴 만한 공부도 하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은 대통령의 현지 시찰 이후 내려진 지시에 의해서 시작된 운동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1970년대에 초등학교에 다녔다. 새마을운동하면 떠오르는 건 초록색, 노란색의 강렬한 대비와 궁서체 글씨의 로고와 새마을노래다. 고건 전 총리의 회고에 의하면 새마을운동 로고는 ‘새마을 담당관실의 이봉섭 사무관’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씩씩한 행진곡(혹은 군가)풍의 노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나는 새마을 로고를 지금도 정확히 그릴 수 있고, 새마을노래를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부를 수 있다. 그 시절 배웠던 동요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도 새마을노래만은.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벽에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차도 이 노래를 틀었고, 교과서에도 빠짐없이 이 노래가 실렸고, 학교 행사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다. 애국가 다음 순번쯤 되는 노래였다고 생각한다.

글쎄, 난 내 아이들이 동요보다 국가동원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를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나라에 동의하기 어렵다. 적어도 내가 살았던 시대는 그랬다 하더라도, 내 아이들이 사는 시대가 그렇게 되는 걸 원치는 않는다.

더 나아가 새마을운동이 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창조경제와 영 어울리지 않는다. 창조경제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를 내려주는 이들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는 자율에서 나온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진짜 창조경제를 하기 위해서 국가동원에 대한 미련은 접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리 창조적이지 못하다. 느닷없이 마약과 친구가 되어 뭇매를 맞고 있는 게임이 처한 상황만 봐도 그러하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한국에서 게임뿐 아니라 노래 등 글로벌 문화 콘텐츠를 많이 생산하려면 정부는 콘텐츠를 검열하지 않고 창의력이 발휘되도록 자유롭게 놔둬야 한다”고 말했다. 구글 회장님의 말이니까 좀 새겨들었으면 한다.

옛 기억으로 끝내자. 1970년대 나온 앨범에는 ‘건전가요’라는 이름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 작곡한 새마을노래가 수록되어 있었다. 노래를 건전한 노래와 그렇지 않은 노래로 나누는 것도 웃기고, 모든 앨범마다 건전한 노래를 넣으라는 지시도 웃기다. 그게 새마을 시대다. LP를 재생시키다가 마지막에 새마을노래가 나오는 건 어린이의 미감으로도 정말 기분 잡치는 일이었다. 앨범에 건전가요를 넣어야 하는 전통은 1980년대까지도 지속되었다. 1984년에 나온 <둘국화1집>에서는 건전가요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선택해 전인권 특유의 목소리로 읊조리듯, 카랑카랑하게 부른다. 건전가요를 이렇게도 부를 수 있다는 건, 대중문화가 부조리한 군사정권에 날리는 멋진 카운터펀치 같았다. 이런 게 창조다. 뭔가 자꾸 통제하고, 검열하고 싶은 생각으로는 절대로 창조경제 못한다. 진짜 창조경제를 하려면, 제발 냅둬라.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글로벌 콘텐츠로 키우려면, 냅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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