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 | 쌍용차 심리치유센터 ‘와락’ 기획팀장

박근혜 대통령이 4월16일을 중남미 4개국 순방 출국일로 삼은 행동은 비상식적이다. 대통령의 이번 해외 순방은 세월호 유가족은 물론 꼬박 1년을 세월호 참사 해결을 바랐던 이들에게 좌절과 낙담을 주기 위한 교묘한 정치와 통치 행위였다. 지겹도록 뻔뻔하고 기가 찰 만큼 대책 없는 정권이다.

[이창근의 두드림]미끼

4월16일, 침묵에 가까운 분노는 말의 힘을 뺏는 대신 무겁게 달궈졌다. 신의 한 수란 체념의 말들이 침묵을 비집고 뱉어지고 흩어져 웅웅거렸다. 반복되는 습관적 체념. 이 모든 정황을 계산 속에 밀어넣고 노골적으로 국내와 국외로 물리적 거리를 벌리고, 사건에서 떨어져 멀어지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결단이었다.

이것이 첫 번째 ‘체념의 미끼’다. 물어선 안된다. 물었다면 뱉어야 하고 보인다면 피해야 한다. 미끼로 던져진 ‘체념’을 무는 순간 박근혜 정권의 낚싯대에 끌어올려지는 일만 남게 된다. 물고기마냥 한두 번 펄떡거리고 아가미질 몇 번 하면 생명을 다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첫 번째 ‘체념의 미끼’를 절대 물면 안된다.

4월16일 서울 광화문 일대는 체념의 미끼를 물지 않은 이들로 가득했다. 눈앞에 버티고 선 박근혜 대통령의 아바타 경찰권력 앞에서 힘 빠지는 소리는 사치였다. 겹겹으로 늘어선 경찰 차벽 너머에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닿기 위해서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것만이 비정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세월호 특별법을 무기력에 빠트린 시행령을 폐기하고 선체를 인양하라는 한 섞인 외침은 박근혜의 고문에 가까운 통치 기술 앞에서 체념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쥐어짜 댔다.

경찰은 시위대를 자극하고 조롱했다. 이에 자극받은 시위대는 폭력의 양상을 띤다. 세월호 1주기 진상 규명을 외치는 목소리는 묻히고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과 시위대의 불법 폭력 시위만이 도드라진다. 이 반복되는 미끼는 누구를 위한, 그리고 누구를 대상으로 뿌려지고 던져지는가. 이것이 두 번째 ‘가이드라인 미끼’다. 경찰 차벽은 위헌이지만 위용을 자랑했고, 차벽 안과 밖은 구별됐고, 안전과 보호의 가이드라인이었다. 결국 가이드라인은 진상 규명을 외치는 발들을 멈춰 세웠다. 넘어야 할 두 번째 미끼에 다리가 걸린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성완종 리스트’로 궁지에 몰렸다.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가를 순 없다. 정치집단이나 인간은 누구나 부패하기 마련이고 썩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복원력’이 존재하는가이다.

단언컨대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복원력이 없다. 그럼에도 이상한 건 코너에 몰린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 정국을 이끌어가는 묘한 정치공학이 흐른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21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를 두고 ‘선장이 먼저 탈출한 것은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반응과 대응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대응과 꼭 빼닮았다. 발뺌, 책임전가, 모르쇠, 조작 그리고 그 어떤 음침한 기운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미끼는 사건이 사건을 덮는 이른바 ‘은폐와 조작의 미끼’다.

체념과 가이드라인이라는 두 가지 미끼를 물지 않고 대통령의 무능과 비겁 그리고 책임을 분명하게 물은 이들이 지난 4월18일 광화문과 경복궁 일대를 완전 뒤덮었다. 이들에게 겹겹이 쌓였던 경찰 차벽은 장난감 같은 작은 블록이었고, 물대포는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 정도로 느껴졌을 것이다.

주도권을 빼앗겼던 경찰은 지난 19일 브리핑을 통해 4·18 집회를 불법 폭력 집회로 규정하고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전원 사법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들고 있던 긴 쇠파이프는 사소해 보이지만 주목해볼 만한 장면이다. 안전 펜스 지지대로 사용한다는 경찰청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 쇠파이프는 어떤 상징처럼 느꼈고 실제 현장에 있던 다수의 집회 참가자들은 섬뜩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어떤 의도는 오해로 읽기도 하고 또 다른 시그널로 알아채는 수가 많다. 어떤 의도인가. 아니 어떤 신호인가.

대통령은 해외 순방길 위에 있고 대통령 권한대행 이완구 국무총리는 사표를 제출했고, 경찰만이 유일하고 굳건히 정국을 찍어 누르고 있다는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결국 경찰이 몽둥이를 들고 치안 유지라는 명분으로 요동치는 정국을 때려잡는 사명감이 국가를 대신하고 있다.

체념, 가이드라인, 은폐와 조작이라는 미끼로 이미 촘촘하게 조여오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 미끼를 물었다면 사력을 다해 낚싯줄을 끊어내는 집단적 힘, 이 집요함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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