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명이 모였나 세어보자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

한 주제로 모인 군중의 수는 사안의 시급성이나 지지 세력의 위력을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렇기 때문에 각 진영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군중 수는 다르게 보이게 된다. 조금이라도 더 많았으면 하는 쪽과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쪽에서 내놓는 집계는 이 때문에 항상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일정 공간에 머물고 있는 사람의 수를 정확하게 계산해야 하는 이유에는 정치적 진영논리가 아닌 현실적인 요구도 있다.

[과학 오디세이]몇 명이 모였나 세어보자

저개발 국가의 낙후된 지역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번지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출생·사망 신고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정확히 알아내는 일은 사용할 백신의 양과 의료진 수, 나중에 주민을 따로 옮겨 거주하게 할 임시 숙소의 개수를 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초 작업이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샘플로 선택된 특정 지역을 수작업으로 꼼꼼하게 조사한 뒤, 다른 미조사 지역의 밀도를 샘플의 밀도와 같다고 가정하여 추정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상황이 심각하여 샘플에 접근조차 어려운 경우에는 쓸 수 없다. 아주 작은 샘플로부터 추정된 결과는 실제와 매우 동떨어지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방식은 반전 데모가 극심했던 1960년대 미국 대학가의 시위학생 수를 헤아리기 위하여 고안된 ‘제이콥 집계법’이다. 집회 장소를 특성별로 구분한 뒤, 구역의 단위 면적당 군중의 수로 추정하는 이 계산법은 움직임 없이 같은 장소에 머무르는 야외 콘서트나 종교집회에 모인 청중 수를 계산할 때 유용하다. 그러나 집회 공간이 특정되지 않는 열린 공간이나 움직이며 시위를 하는 유동적 집회에는 이 방법을 쓸 수 없다. 주최 측 추산 100만명, 경찰 추산 26만명이 모였다는 지난 12일 촛불집회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 차이는 집회를 바라보는 양쪽의 소망이 투영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가’에 대한 ‘기준’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이런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행진 집회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하는 적극 가담자도 있지만 주위에서 응원, 또는 사태를 관망하는 소극적 참가자도 많기 때문에 참가 범위에 따라서 집계 결과는 달라진다. 또한 행진 중에 대열에서 나오는 경우, 또는 관망하다 참가하는 참가자도 많아 경찰의 고정식 집계는 정확할 수가 없다. ‘경찰 추산’이 우스개 소재로 쓰이는 상황은 시민과 공권력 모두에게 손실이다.

부실하거나 의도적 여론조사의 발표를 규제하듯이, ‘믿거나 말거나’ 식의 군중 집계결과를 공표하는 것에도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 1995년 미국에서 흑인 인권 이슈로 시도된 ‘100만인 행진(Million Man March)’이 좋은 예이다. 경찰이 공식 발표한 참가자 수 40만명은 150만명을 주장한 주최 측의 분노와 법적 대응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미국 의회는 불확실한 근거의 집계 발표를 금지시키기에 이른다. 이후 당시 사진을 첨단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참가자는 87만명으로 판명되었다. 경찰 추산 40만명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현대식 군중 집계의 필수 자료는 특정 장소를 같은 시각, 다른 지점에서 촬영한 스테레오 사진이다. 한 카메라로 찍은 사진 한 장으로는 어떤 분석도 부정확하다. 움직이는 군중은 길목에 설치된 감지 장치로 측정된다. 군중 집계 기법의 핵심은 이미 확인된 ‘정답’을 확보해서 추정된 결과를 검증하고 보완하는 작업이다. 즉 확보된 참가자를 동원하여 가상의 집회를 열고 이 자료에서 추정한 결과를 정답과 비교하여 분석 프로그램을 수정해 나간다. 외국에서는 수작업으로 일일이 참가자를 헤아린 평가용 사진을 이용하여 군중집계 정확도 추정에 활용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경우 90만명으로 확인된 2014년 교황방문 때의 사진 자료가 유일하지 싶다.

개인의 작은 데이터를 종합하여 혼자는 해결 불가능한 큰 문제를 해결해주는 크라우드소싱 기법이 군중 집계의 신기술이 될 수 있다. 즉 집회에 참가한 개인이 찍어 올린 수십만 장의 사진과 동영상, 지리정보시스템(GPS) 정보를 종합하면 매우 생생한 시간별 집회 인원까지도 추정 가능하다. 사용자의 방문지점을 기록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포스퀘어’(FourSquare) 같은 위치정보 공유 앱이 그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참석한 사실을 사이버 공간에 기록하여 대대손손 물려주는 일도 꽤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문명의 역사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공간에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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