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를 노려보지 않는 타자

손홍규 소설가
[문화와 삶]투수를 노려보지 않는 타자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 야구 경기를 즐겨 보았다. 야구를 보면서 문외한으로서 느낀 게 있는데 뛰어난 타자들에게는 적어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타자들은 스탠딩 삼진을 당하더라도 절대 투수를 노려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야구를 해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타석에 선 채로 삼진을 당하면 기분이 무척 복잡할 듯하다. 그래서인지 스탠딩 삼진을 당한 타자들은 보통 선수 대기석으로 돌아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투수 쪽을 한 번 본다. 물론 그들이 삼진을 당했다는 이유로 투수에게 원한을 품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본능적인 일별이라고나 할까. 사람이니까 두고 보자 식의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몇몇 타자들, 특히 뛰어난 타자들은 그런 일을 겪어도 투수 쪽을 바라보거나 투수를 노려보지는 않는다. 또한 그런 타자들은 공에 맞았을 경우에도 아파서 인상을 쓰고 입모양으로 보아 욕설도 하는 게 분명하지만 투수를 노려보지는 않는다. 물론 스탠딩 삼진을 당하거나 공에 맞았을 때 투수를 노려보는 타자들 중에도 타율이 높은 수위타자들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타율과 같은 성적에 대해서가 아니다. 나는 결코 투수를 노려보지 않는 타자에게서 자신에게 몰두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낀다. 그런 타자들은 야구란 상대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투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자신이 던진 공이 타자에게 얻어맞아 홈런이 되었다고 해서 타자를 노려보는 선수는 거의 없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하면서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거나 잠시 주저앉기는 한다. 아마도 투수라는 직책 자체가 그들로 하여금 어떤 공을 던져야 하는지에만 몰두하게 하는 듯하다. 투수는 자신이 어떤 공을 던지든 타자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상대하는 것임을 어쩔 수 없이 잘 아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가장 서글픈 직책은 포수인 것 같다. 포수는 자신이 받아야 할 공이 상대편 타자에게 얻어맞아 홈런이나 안타가 되었을 때 거의 예외 없이 공만 바라본다. 실투를 했다고 해서 투수를 노려보지도 않고 그 공을 때려 홈런을 만들었다고 해서 혹은 안타를 만들었다고 해서 타자를 노려보지도 않는다. 포수는 서글픈 눈길로 날아가는 공을 뒤쫓을 뿐이다. 포수의 그런 태도에는 저 날아가는 공을 집 나간 자식처럼, 할 수만 있다면 뒤쫓아서 안전하게 자신의 미트에 넣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게 엿보인다. 특히 타자가 때린 공이 포수 머리 위쪽으로 솟아오르는 파울공이 되었을 때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공의 낙하지점을 찾아 포구할 때의 표정에는 타자를 아웃시켰다는 희열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집 나간 자식을 자기 품에 안았다는 안도감이 역력하다. 포수란 직책은 아예 야구 자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상징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니까. 어쨌든 포수는 다른 무엇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오로지 공에만, 자신의 일에만 몰두한다.

야구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의 본질에는 서글픈 무언가가 있다. 글쓰기에도 그런 구석이 있다. 한 편의 글은 글쓴이의 손을 떠나는 순간 결코 회수할 수 없는 영역으로 달아나버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좋으나 싫으나 공만 보는 포수처럼 글의 운명을 지켜보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 글의 운명이 글쓴이의 마음에 흡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떠나버린 글은 여간해서는 되찾을 수가 없다. 그런 경우에 맞닥뜨리게 되는 뒤늦은 후회란 대부분 이런 것이리라. 왜 나는 글을 쓰는 순간 글 자체에만 몰두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이 사랑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도 당신을 아프게 했을까. 왜 나는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당신을 떠나야 했을까. 결코 투수를 노려보지 않는 타자. 다른 누구도 탓하지 않고 스스로를 아프게 돌아볼 수 있으려면 얼마나 당신에게 몰두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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