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죽음’ 대하는 교육부 방식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불편함을 넘어 죄스러운 일이다. 학생들의 죽음이지 않은가.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 저렇게 억울하게 죽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책임이 학교에 있지 않고, 그 잘못이 교사에게 있지 않다는 글을 쓰려 하다니…. (어떻게 또 전혀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은 최근 며칠 사이 전국의 교사들이 느낀 감정이기도 할 것 같다. 최근 며칠간 교사들은 학생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서로를 향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게 왜 학교 책임이지? 그게 왜 교사들 잘못이지?”

[학교의 안과 밖]‘학생 죽음’ 대하는 교육부 방식

그러나 이렇게 말해놓고 교사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이들이 저렇게 억울하게 죽어갔는데…, 겨우 교사로서 한다는 말이 그 죽음이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말이라니….

그런데 왜 교사들이 이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나? 비극적 사고 직후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한 발언과 그가 내린 조치들 때문이다. 그는 대성고 3학년 학생들이 당한 사고의 책임이 전적으로 학교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수능 이후에 학생을 방치한 학교…, 수능 이후의 고3 교실이 엉망이라는 팩트에 근거한 말이지만 완벽한 팩트에 근거한 말이기에 오히려 교묘하게 진실을 가릴 수 있다. 유은혜 장관의 발언으로 인해 갑자기 쟁점이 바뀌고 논점이 흐려져 버렸다. 안전관리 소홀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어디 갔는가?

유은혜 장관을 향한 교사들의 분노가 크지만 그것은 단순히 사고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했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교육부 장관의 해법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킬 거라는 판단에서도 비롯된 것이다. 유은혜 장관이 알고 있는 대로 수능 이후의 고3 교실은 엉망이다. 다른 무엇보다 빈자리가 상당수다. 학교에 등교조차 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교사의 잘못이라고 질책하면 교사들로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교사가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교육 프로그램의 좋고 나쁨을 넘어선 문제다. 그것은 학생들이 가진 열망의 문제다. 학교와 교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수능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특히 수능 이후에 급증하는 그런 열망의 문제인 것이다. 수능 이후, 학생들의 자유를 향한 열망은 정말 강렬하다. 그리고 그 열망은 정당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교사들이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것 중 그나마 반응이 좀 나은 것이 학교 밖의 교육활동과 체험학습이다. 평범한 교사인 나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 그 누구도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 취지가 아니라고 극구 변명했지만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내린 조치들은 바로 이런 교육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수능 이후의 교육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긴 하다. 그것을 부정할 교사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장관이라 해서 마음이 황망한(그가 실제로 한 말이다) 가운데 즉자적으로 말할 그런 사안이 아니다. 면피를 위한 정치성 발언이 아니라면 말이다.

학생들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도 학생들을 괴롭히는 대책을 떠올리는 교육부와 장관의 존재…. 학생들의 죽음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그 또한 적잖이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