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소설가 사이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장강명을 처음 본 것은 2003년 겨울이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그는 언론계 입사 선배였다. 이후 우리는 몇 차례 마주쳤다. 미소 지으며 안부를 묻고 곧 헤어지는 사이였다.

2011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표백>의 작가 이름이 장강명이라 했을 때, ‘그 장강명?’ 하는 생각이었다. 그가 소설 쓰기에 관심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신문기자는 취재 결과를 어떻게든 글로 표현해내는 직업이라, 많은 기자들이 소설 쓰기에 도전하곤 한다. 하지만 많은 직업 세계에서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릴만큼 성공한 이는 매우 드물다. ‘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은 예외적 사례다. 장강명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면서도, 그가 계속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의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강명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그는 다산의 작가가 됐다. 2015년에는 장편만 세 편을 펴냈다. 그중 많은 작품들이 여러 문학상을 받았고, 판매도 잘됐다. 이른바 ‘헬조선’ 담론과 맞물린 <한국이 싫어서>나 인터넷 여론 조작을 그린 <댓글부대>는 문학계를 넘어 사회적 관심까지 받았다.

장강명이 가장 최근에 낸 <산 자들>(민음사)은 ‘2010년대 한국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주제로 한 연작소설’이다.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매일 이야기하는 한낮의 노동과 경제 문제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장면들을 단순히 전시하기보다는 왜, 어떻게, 그런 현장이 빚어졌는지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집니다.”

<산 자들>에는 업무 태도를 두고 갈등을 겪는 아르바이트생과 중간 관리자, 철거 용역에 맞서 버티는 철거민들, 한 동네에 자리 잡고 경쟁하는 세 빵집, 급식비리가 벌어진 고등학교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들이 실렸다. 언론에서도 종종 다루는 소재들이다.

‘산 자들’이란 표제를 따온 ‘공장 밖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 사건을 암시한다. 잘 팔리지 않던 자동차를 만들던 회사가 세계경제의 침체와 함께 위기를 맞았다. 외국인이 회사를 샀다가 다시 내놓으면서 직원들의 고용 유지 방안을 두고 이해가 갈린다. 노조, 경영진, 법원은 각기 다른 숫자로 회생계획 혹은 해고계획을 짠다. 해고 위기에 놓인 노조원들은 공장 점거에 들어간다. ‘해고는 살인’이었으므로 해고자는 ‘죽은 자’, 해고되지 않은 자는 ‘산 자’였다.

장강명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를 두루 전한다. 회사를 살리라는 채권자와 직원의 요구에 포박된 ‘관리인 사장’, 총고용 보장이라는 구호에 붙잡힌 노조 위원장의 입장을 병치한다. 악에 받친 죽은 자들과 울부짖는 산 자들이 나란히 등장한다. ‘같이 살자’고 하는데, 같이 사는 방법은 저마다 다른 풍경을 30쪽 남짓한 단편 속에 그려낸다.

간결하고 명쾌한 언어는 많은 경우 저널리즘의 장점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들춰내고 권력의 부패를 드러내는 데는 단순하지만 강한 언어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언어들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담아내는 건 아니다. 직진하는 언론은 종종 산 자와 죽은 자의 모호한 경계를 담아내는 데 실패한다. 우리 삶과 사회의 많은 지대가 사실은 회색이다. 그곳에선 선과 악, 적과 아군이 뒤섞여 있다. 장강명은 기자가 아닌 소설가의 언어로, 단편적인 기사로는 알 수 없었던 사태의 내막을 더듬는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중 가장 마지막으로 복직한 김득중 노조지부장의 인터뷰에서 의외로 감성을 자극한 대목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모인 날의 묘사였다. 마지막 복직자들이 회사에 모여 근로계약서를 쓰고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기업노조 위원장과 간부들이 와서 밥값을 내줬다. 파업이 끝나고 구치소 독방에 있던 김득중은 ‘산 자들’의 이름을 적어내려가며 분노할 정도였으나, 이제 다시 그들과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동료가 됐다. 사측의 90도 인사와 함께 ‘을들의 승리’로 기억되는 남양유업 대리점주들 싸움의 끝은 씁쓸했다. 사측이 내놓은 30억원의 ‘상생 기금’을 점주들은 투쟁 기여도에 따라 나눠가졌다. 남양유업을 넘어 모든 을들의 투쟁기금에 ‘상생기금’을 쓰려던 이상적인 이들은 대리점주 모임에서 쫓겨났다.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 남양유업 갑질 사태가 한창일 때는 보이지 않던 이면들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개를 편다.

때로 좋은 기사는 문학의 영역을 넘본다. 때로 좋은 문학은 기사처럼 사회의 모순을 정확히 가격한다. 거짓을 말하는 이를 두고 ‘소설 쓴다’고 비난하곤 하지만, 지어낸 이야기라고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기자였다가 소설가가 된 장강명은 경직된 저널리즘이 가닿지 못한 사회의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뒤집어 보면 기자에게도 가끔은 소설가의 자질이 필요하다.

장강명 작가 /이상훈 선임기자

장강명 작가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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