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이라니

장은교 토요판팀

창간특집 인터뷰로 장혜영씨(32)를 만났습니다. 혜영씨는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씨(31)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시설에 격리돼 사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동생을 시설 밖 세상으로 이끌었죠. 초고를 혜영씨에게 보냈는데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비장애인 누구도 사회에서 홀로 살지 못한다. 보이는 장애와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을 뿐”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문장에서 차별이 보이나요?

[기자칼럼]선량한 차별이라니

혜영씨는 “ ‘장애’라는 표현 자체가 부정적으로 쓰인 듯한 오해가 생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오해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레 부정적인 것,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장애’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메시지를 받은 순간, 저는 뒤통수부터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혜영씨를 만나기 바로 얼마 전 김지혜 교수가 쓴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읽었거든요.

다문화학을 연구하는 김지혜 교수는 3년 전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에 갔다가,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습니다. 토론회에서 명확한 결정이 나오지 않은 상황을 두고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다가, 한 참석자로부터 “그런데 왜 결정장애란 말을 쓰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결정장애.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말이 어느 날 사고를 쳤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뭐가 문제지?’ 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보이는 장애와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을 뿐”이라거나 “결정장애”라는 말을 장애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장애인에게 장애는 고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를 당연히 열등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그것도 마치 재미있는 표현인 듯 말까지 만들어 쓴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10월26일자 커버스토리로 우리 사회의 선량한 차별과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다루게 된 것은 저의 이런 낯 뜨거운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열심히 읽고도, “보이는 장애와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을 뿐” 같은 표현을 쓰고 장애문제에 뭔가 좀 아는 사람인 양 은근히 우쭐해져 있었던 제 모습. 다시 생각해도 정말 ‘이불킥’입니다.

김연수 작가는 <소설가의 일>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내 책상은 지저분해지고 수염은 제멋대로 자라고 바닥에는 지우개 가루가 흩어지게 되는데, 이건 우리가 사는 우주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쓰고 고치고 또 쓰고 또 고치는 노력을 반복해야 한다는 뜻인데요.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지런히 제 머리와 마음의 방을 쓸고 닦고, 온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저도 어느 순간 차별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나쁜 의도는 없지만 무심코 차별을 저지르는 사람을 김 교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라 표현했고, 장혜영씨는 혜정씨와의 탈시설기를 담은 책 <어른이 되면>에서 ‘친절한 차별주의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선량한 차별, 친절한 차별이라는 프레임조차 실은 ‘가해자’의 입장을 배려해 쓴 표현입니다. 차별은 차별일 뿐이죠.

김지혜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누군가 말을 건네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3년 전 ‘결정장애’라는 말의 차별성을 누군가 지적해준 것처럼요. 말해봤자 소용없는 사람에겐 그런 조언조차 해주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오늘 제가 쓴 글에도 어쩌면 얼굴을 붉히며 이불을 밤새 걷어찰 만한 표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렵고 부끄럽지만, 부지런히 배우고 고치겠습니다. 그렇게 어제보다는 오늘, 차별주의자에서 한 뼘 더 멀어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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