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간데없고 ‘인재’만 남아

송진식 정책사회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가 2년 전 출범할 때 가장 많이 제기된 질문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다. 4차위가 내놓은 기본 정책방향 대부분이 창조경제의 바탕이 된 ‘지능정보사회 종합대책’과 겹쳤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부분이기도 했다. 벤처업계도 “창조경제나 혁신경제나 4차산업이나 다 개념은 같다”고 말한다.

[기자칼럼]‘사람’은 간데없고 ‘인재’만 남아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창조경제의 실패를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4차위가 내놓은 대답은 ‘사람’이었다. 기술과 산업의 변화를 따라가는 정책을 발굴하되, 그 논의의 중심에 사람을 둔다는 것이다. 참으로 그럴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인 “사람이 먼저”와도 어울렸고, 때마침 ‘우버’ 등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노동소외 현상을 불러온다는 비판이 한창 제기되던 시기였다. 4차위에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의 변화 등을 연구하는 별도의 분과를 두고 노동부 장관이 이를 맡기로 했다.

얼마 되지 않아 4차위는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해 여름부터 카풀앱(서비스)이 본격화되면서 기술 발전과 사람이 부딪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벤처업계는 카풀앱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적 사업 모델로 꼽은 반면에 택시 기사들은 극렬히 반발하고 나섰다. 4차위가 팔을 걷어붙였다. 끝장 토론 격인 ‘해커톤’을 통해 양측을 불러 해결책을 찾아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이 해커톤 참여를 거부하면서 4차위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들이 참여를 거부한 데도 이유가 있었다. 4차위 민간위원 상당수는 벤처·IT업계 전문가나 종사자들이었고, 정부는 카풀앱을 허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다녔다. 4차위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정부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문제를 방관했다. 4차위의 위상도 1년 만에 쪼그라들었다. “정책의 옥석을 가린다”던 4차위는 어느새 ‘자문기관’이 돼 있었다. 대통령 입에선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사라졌고, 4차위 회의에 참석하는 장관 숫자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연말이 되자 택시 기사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었다. ‘사람’이 죽어나가자 정부가 부랴부랴 움직여 올봄에 합의안 비슷한 것이 나왔다. 4차위 내부에선 정부 측 위원들의 무관심과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의 관심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경제 살리기’에 있었다. 미래의 문제를 고민하고 논의하기보다 당장 발등의 불부터 끄기로 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혁신성장’이 등장했고, 어느 한 공무원의 서랍 속에서는 낡디낡은 ‘수소경제’가 새것인 양 포장돼 나왔다.

그리고 4차위가 출범 2주년을 막 지난 시점인 지난 25일, 4차위는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이라는 발표 자료를 내놓았다. 권고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인재’라는 말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의 주체인 ‘인재’를 육성하고, 그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주 52시간제 등 노동제도 개선, 대학 자율화, 산업별 맞춤형 지원 등 정부가 충실한 지원자가 돼야 한다.”

출범 초기 4차위가 강조했던 ‘사람’이 어느새 ‘인재’로 둔갑했다. 인재도 물론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겠지만, 문 대통령이 말하는 ‘사람’이, 4차위가 중심에 둔다 했던 ‘사람’이 ‘인재’는 아닐 것이다. 4차위는 그리고 인재를 양성하는 데 주 52시간제와 같은 노동제도가 걸림돌이라고 적시했다.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만든 게 주 52시간제 아니었던가. 인재를 위해 사람을 포기하잔 말일까. 그러고보니 4차위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미래를 그린다고 했으면서 한번도 이에 대한 보고서나 권고안을 내놓은 적이 없다.

구태여 세어볼 생각은 아니었지만, 전체 19페이지의 이 권고안에서 ‘사람’이란 단어는 딱 한번, ‘혁신’이란 단어는 79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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