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뭐 하지

최민영 경제부

40대인 모 선배가 10년 전 어느 날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당시 선배는 서쪽바다 안면도에서 가족과 함께 소박한 펜션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간간이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여가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괜찮은 ‘제2의 인생’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림에 빠진 그는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겠다며 어느 날 말도 통하지 않는 프랑스로 용감하게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고생 끝에 올가을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하얀 캔버스 위에 정연하면서도 변칙적으로 이어지는 검은 선들을 그린 한 작품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면서 생각했다. 10년은 어른도 멋지게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구나. 그의 용기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기자칼럼]나이 들면 뭐 하지

‘나이 들면 뭐 하지.’ 40~50대 직장인들을 만나면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주제다. 고민도, 사정도 제각각이지만 핵심적 질문은 두 가지 정도로 좁혀진다. ‘지금껏 나는 어떤 경험을 쌓았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생 달리기의 중간결산을 숨 돌리면서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재능을 따라 가보지 않은 길로 성큼 발을 내디딜 수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40대 취업자는 19분기 연속 감소 중이고, 재취업이 어렵자 나선 창업에서마저 하루 평균 609명이 문을 닫을 만큼 사정이 좋지 않다. 많은 중년들이 생계 책임 때문에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로 배를 띄웠다가 휘청이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자의든 타의든 노동시장에서 떠밀려 나올 때를 대비한 비상용 구명정을 옆구리에 낀다. 정년이 얼마 안 남은 한 대기업 남성 임원은 타고난 미각을 바탕으로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구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자격증을 취득해 시장을 선점한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세워놨다. 정년퇴직 이후 유튜버로 변신해 어려운 경제 이슈 해설에 나선 이도 있다.

그 이후도 공통의 근심거리다. 가난한 노인이 될 확률이 이 나라에선 매우 높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빈곤율이 높아진 게 인구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노인일자리 공공사업 확대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깔았지만 대부분 반찬값 벌이에 그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생계를 꾸릴 만한 민간부문 일자리는 지난해 기준 16%까지 되레 줄었다. 여기에다 소비자발 ‘고령화 쇼크’도 더해진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의 기대수명이 100세를 내다보게 됐고, 사람들은 언제 병원비가 더 들지, 언제 죽을지도 예상할 수 없으니 많은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정치·사회 역시 이 같은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로 전체적으로 활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얘기를 듣고 보니 100세 시대에 나 같은 월급쟁이는 최소 80세까지는 일해야 한다는 뜻이구나 싶었다. 요즘 같은 인공지능(AI) 중심의 기술혁신 시대에는 뭘 새로 배운다고 해도 그 일자리가 오래지 않아 사라질 리스크도 상당한데 정말 나이 들면 뭐 하지. 게다가 새로운 직업기술을 매번 다 제대로 배울 수는 있을까.

이렇듯 저성장·고령화·기술혁명의 삼각파도가 거센 노동시장에서 정말 걱정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걸까.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데밍 교수에 따르면 예상 밖으로 인문사회과학이라고 한다. 문제 해결 능력, 비판적 사고 및 적응력을 갖출 수 있어 40세를 기점으로는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STEM) 전공자의 연봉을 앞지르는 ‘이기는 거북이’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산업구조가 급변하는 불확실한 시대에는 ‘기본기’가 최선이라는 뜻일 테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차세대들이 나이 들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나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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