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회복의 조건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눈앞의 안개는 걷히면서 현재까지 어떤 전략이 옳았는지 드러났다. 방역에서 ‘통제(containment) 전략’은 ‘집단면역(herd immunity) 전략’보다 우월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방 국가들에 승리했고, 특히 바이러스 패닉이 경제위기로 전이된 미국은 대표적 실패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고작 4개월 지났고 갈 길은 멀다.

[정태인의 경제시평]경제회복의 조건

상대적으로 낮은 치사율(1~2%) 및 기본재생산지수(2.5, 한 명의 환자가 무감염 환경에서 몇 명이나 감염시키는가)를 믿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반 독감이나 별 다를 바 없다”고 호언했고, 존슨 영국 총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할 준비”를 당부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인구 60%가 면역이 되어야 사태가 끝날 테니 유증상자 중심으로 검사하여 중증환자만 치료함으로써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집단면역 전략하에서는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경제적 성과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집단면역이 생기기 전에 집단패닉이 발생했다. 감염자의 급증은 이들 국가의 의료자원을 붕괴시켰다. 놀란 국가들은 (반)강제 자가격리, 재택근무, 국경폐쇄, 나아가서 지역폐쇄로 경제의 흐름을 단절시켰다. 평소 30만명 수준이던 미국의 실업수당 신청자는 3월 둘째 주에 330만명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더니 셋째 주와 넷째 주에는 연속으로 660만명까지 치솟았다. 1929년의 대공황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사회적 신뢰와 강한 개인적 책임을 바탕으로 집단면역 전략을 고수하던 스웨덴도 이웃 노르웨이나 핀란드의 10배에 이르는 사망자 앞에서는 손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5년 전, 치사율 20%를 넘는 메르스의 공포를 겪었던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확진자가 나타나자마자 동선을 파악해서 대대적인 검사를 했다. 2월29일 하루 909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서 의료자원 붕괴 직전까지 갔으나 3월 중순부터 확진자가 100명대 수준으로 떨어지더니 4월10일부터는 30명 선에 머무르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총 사망자도 4월12일 0시 기준 214명에 그쳤다. 최근 초·중·고 개학, 외국인 노동자 밀집 지역의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 발생 등으로 싱가포르가 비상에 빠지고 대만도 입국자 때문에 비슷한 상황을 맞으면서 가히 한국은 방역 1위 국가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실로 불확실성 속에서 기존 지식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아 긴장을 늦추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손 씻기, 마스크 쓰기, 자가격리를 실행한 한국은 일상적·사회적 활동도 그리 위축되지 않았다(구글의 빅데이터에 의한 추정).

하지만 여전히 2차, 3차 감염 사이클이 발생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팬데믹은 글로벌 현상이다. 경제도 글로벌로 전개되었다. 글로벌 또는 지역 생산사슬의 단절,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 가능성, 선진국 전체의 위기 심화로 한국 경제 역시 침체로 빠져들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를 호되게 겪은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초유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또 이들 나라는 GDP의 10%가 넘는 돈을 국민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불하거나 실업 보조와 임대료 지원에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고 있다. 실업자와 노숙인은 경제위기를 다시 바이러스 위기로 옮길 것이다. 방역 실패국가의 오명을 쓴 서방 국가들이 경제 쪽에서는 강력한 초동 대응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방역에서 선전했기 때문일까? 현재 정부의 재정 지원은 GDP의 1% 수준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적고, 그나마 이번 위기의 성격에 맞춘 지원 기준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다르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대규모 정리해고 등으로 생산비용을 줄이면 원화의 평가절하에 따라 수출이 증가했고 자신감을 찾은 기업의 투자로 이어지면서 경제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구조조정으로 기업 비용을 줄인다 해도 수출할 데가 없고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실업자는 고사하던 바이러스를 부활시킬 뿐이다.

이것이 ‘전례 없는 경제위기’의 성격이다. 긴급재난수당을 지급하고 실업보험을 확대하며 실업부조로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강제퇴거는 대통령 명령으로라도 막아야 한다. 이런 정책을 내세운 후보는 경제회복의 최소 조건을 충족시킨다. 대규모 ‘그린뉴딜’ 투자로 단기 회복을 꾀하고, 머지 않아 닥칠 기후위기까지 대비하는 정당을 찍으면 우리의 미래도 보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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