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산불과 한국판 뉴딜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동영상과 그래픽으로 보는 시베리아 산불은 공포스러웠다. 매일 계속된 산불은 115만㏊의 산림을 태웠다. ‘세계 기후 특성(World Weather Attribution)’ 네트워크의 국제 과학자 팀은 금년 1월에서 6월까지의 지속적 고온은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를 빼고는 “설명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6월20일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으로 알려진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 마을의 수은주는 38도를 가리켰다. 이 지역 1월에서 6월까지의 평균기온은 예년보다 5도 이상 높았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시베리아에 열풍이 불 가능성을 600배 높였다. 산업시대가 시작된 이래 지구의 평균기온은 1도 높아졌지만 북극 지역은 두배 더 올랐고 시베리아 일부 지방은 4배나 더 상승했다. 북극의 기온 상승은 빠른 속도로 빙하를 사라지게 만들고 메탄을 품고 있는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를 녹인다. 메탄가스는 온실가스의 4.8%에 불과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이산화탄소의 80배로 알려져 있다. 툰드라지역에서 대규모의 메탄가스가 방출된다면 현재의 기후위기는 예상보다도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 연구팀은 2019년에서 2020년에 걸쳐 일어난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의 산불도 인간이 유발한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인류세의 기후 변화는 가장 높은 주간 폭염지수(Fire Weather Index)를 적어도 30% 이상 높였다. 폭염지수는 1979년부터 위험을 키우는 방향으로 뚜렷하게 변화했는데 1900년의 기후와 비교할 때 2019/2020년의 폭염지수 가능성은 4배 이상 높아졌다. 자연은 자기파멸의 모습으로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7월14일 발표한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 전략으로 ‘한국판 뉴딜’을 제시했다. 이 전략의 토대는 고용사회안전망 강화이고 두 기둥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다. ‘글로벌 기후 변화 대응’이 시급해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해서(“그린 뉴딜은 우리가 갈 길이다”) 겨우 끼워 놓은 듯,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이후 발표된 세계의 그린 뉴딜(EU는 ‘그린 딜’)은 예외 없이 2050년 ‘넷제로 선언’으로 시작하지만 이 계획은 ‘탄소중립(Net-Zero)을 지향’할 뿐이다. 말만 다른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정의당과 녹색당의 그린 뉴딜은 2050년 넷제로, 2030년 탄소배출 50% 저감 목표를 향해 정책을 총동원하는 것으로 짜여 있다. 즉 자연과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세계적으로 합의한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그린 뉴딜은 지난 200년(한국은 100여년) 동안의 탄소기반경제를 물리적으로도 완전히 뒤바꿔야 하기 때문에 인프라 투자가 필수적이고, 모든 에너지원의 전기화, 그리고 재생가능발전에 의한 전기 생산이 그 시작이다. 그러나 정부의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은 다른 항목과 달리 목표가 없다. 다만 스마트 그리드를 확대하고 섬 지방의 디젤엔진 발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며, 대규모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하고 주민참여형 태양광발전을 늘리겠다는 방향만 제시되어 있다(반면 전기차·수소차는 자동차 대수와 충전기 숫자까지 밝혔다).

8월2일 유럽계 에너지 분야 컨설팅업체인 ‘에너데이터’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2019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4.8%로, 조사 대상 44개국 중 40위로 평균 26.6%에 훨씬 못 미친다(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세 나라는 중동 산유국이다). 아시아 8개국 평균도 23.7%일 뿐 아니라 증가 폭도 우리보다 크다(한국의 비중은 10년 동안 3.1%포인트 오른 반면 아시아 평균은 15%포인트 올랐다). 말 그대로 ‘기후악당’이요, 파렴치한 ‘무임승차자’다.

정부의 목표는 성장(과 고용)에, 4차 산업에 맞춰져 있고, 방법은 재벌과의 ‘협치’다. 수소차에 목매달고 비메모리 반도체에 초점을 맞추고 난데없는 원격의료, ‘비대면 산업’을 들먹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고용안전망 강화가 들어 있지만 노동계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한 것은 아니다.

그린 뉴딜에는 ‘그린’이 없고 한국판 뉴딜에는 ‘노딜(no deal)’만 있다. 한마디로 한국판 뉴딜은 신형 재벌주도 녹색성장, 또는 신형 재벌주도 창조경제이다. 세계의 자연은 여기저기서 머지않은 미래의 아마겟돈을 암시하는데 정부는 세계의 탈탄소 노력에 무임승차해서 재벌의 경쟁력만 높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서라, 고용안전망 강화의 첫발만 제대로 내디뎌도, 국토를 많이 파헤치지 않고 4대강 보만 철거해도 나는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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